[경상도 촌기자 앞치마 두르다] 18

“자, 모두 나가세요. 오늘 저녁 여기는 여성 출입 금지입니데이.” “잘 만들고 있는 지 한번 봐야 되는데….”

9월 4일 저녁 경북 예천의 한 주택. 이날은 나와 요리스쿨 동기인 ‘깍두기’ 김재산 형님이 정식으로 출장요리사로 초청된 날이다. (관련 기사보기☞깍두기 성님과의 '한식대첩') 3월 초 요리에 입문했으니 6개월 만에 강호무림에 명함을 내밀게 된 셈이다.

그동안 “요리 한번 해 봐라, 얼마나 잘 하는지 한번 보자.” “말로만 요리하지 말고 맛 좀 보여주소.” “소문난 잔치 먹을 것 없다고, 니 요리솜씨 나이롱 뻥이지?” 등 온갖 인사치레와 시시비비를 들어오면서도 정작 가족의 울타리를 넘어서 요리를 하기에는 계면쩍기도 하고 분위기나 환경도 만들어지지 않았다.

한데 이날 6쌍의 부부, 12명으로 구성된 ‘차사모’의 한 회원 부부로부터 집들이 출장요리사로 정식 초청된 것이다. 차사모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남달리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의 모임인데, 동생들을 지극정성으로 챙겨주는 큰형님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 그러니까 차사모는 ‘차OO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을 말한다. 마침 깍두기 형님과 내가 모두 회원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둘 다 앞치마를 두르게 됐다.

대구에서 중앙고속도로를 타고 1시간30분쯤 달려 저녁 7시쯤 예천의 새 집에 도착했다. 주방에는 깍두기 형님과 새 집 안방마님, 한 무리의 여성 회원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여성들을 주방에서 쫓아내는 일부터 시작했다. “앉아서 TV나 보고 놀고 계세요. 그래도 손에 물 묻히고 싶으면 주방에 들어오시든지.” 반협박조로 주방을 정리했다. 주방에는 깍두기 형님과 나, 그리고 그릇과 양념 위치를 알려줄 안방마님, 이렇게 3명이 터를 잡았다.

이날 메뉴는 잡채와 동인동 찜갈비였다. 깍두기 형님은 잡채, 난 대구의 명물 동인동 찜갈비로 정했다. 사실 둘 다 요리학원에서 배운 음식은 아니다. 깍두기 형님은 옛날부터 집에서 자주 잡채를 만들었다고 했고, 난 학원에서 배운 돼지갈비찜에서 재료를 소갈비로 바꾸고 고춧가루와 마늘을 추가로 듬뿍 쳐야 했다. 그래도 요리의 기본은 학원에서 배웠고 강사로부터 두 가지 요리에 대한 조언도 들었으니, 결국 요리를 배우지 않았더라면 출장요리도 없을 터였다.

한 회원이 장만한 소갈비를 다른 회원이 물에 담가 핏물을 모두 빼놨다. 난 요리만 하면 됐다. 물 8, 양조간장 2, 설탕 1의 비율로 양념을 만들었다. 그리고는 감자와 당근을 먹기 좋은 크기의 직사각형으로 잘라 테두리의 날카로운 부분을 깎아냈다. 청양고추와 홍고추는 어슷하게 썰고, 마늘은 손에 잡히는 대로 양껏 빻았다. 양파도 썰고 고춧가루도 준비됐다. 이제 불만 올리면 됐다.

영광스럽게도 집들이 출장요리사로 간택된 날, 깍두기 형님과 2인1조로 잡채와 동인동 찜갈비를 상에 올리고 있다. 다음날 아침까지 찜갈비로 배를 채웠다.

찜통에 이용하기가 번거로워 큰 냄비 2개로 나눠 동시에 요리하기로 했다. 하지만 주방이 좁았다. 그래서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는 잡채에 우선권을 넘겼다. 깍두기 형님은 익숙한 솜씨로 불린 당면과 오뎅, 버섯 등을 볶아 금방 먹음직스런 잡채를 만들어냈다. 한 무리의 여성들이 달려와 품평회를 연다. 식탁에 올릴 틈을 주지 않는다.

이제 내 차례다. 미리 칼집을 낸 소갈비를 10분 정도 끓였다. 냄비 두 개에 소갈비를 나눠 담고 간장양념을 절반 정도 부었다. 밥주걱으로 계속 뒤집어 끓이면서 소갈비에 양념이 골고루 배도록 했다. 감자와 당근은 먼저 넣었다. 중간쯤 익었을 즈음 다시 나머지 간장양념을 넣고 양파와 마늘, 고춧가루를 뿌렸다. 마늘과 고춧가루의 정량은 순전히 내 맘대로였다. 어쨌든 듬뿍 뿌렸다. 거의 마지막이다 싶을 때 청양고추와 홍고추를 넣었다.

그동안 회원들은 나무로 된 테라스 바닥에 돗자리를 깔고 참숯으로 고기를 구워먹고 있었다. 찜갈비 익는 시간이 길었기 때문에 중간중간 나도 나와서 고기와 안방마님이 차린 문어, 중국 시안(西安)의 명주인 서봉주를 홀짝 마시곤 했다.

내 눈에는 분명 요리가 다 됐다. 찜갈비 색깔도 발그스름한 것이 침샘을 마구 자극했다. 상에 올리기 전에 아내더러 맛 좀 봐달라고 했다. 여성 회원들이 돌아가면서 맛보러 왔다. 상에 내놓기도 전에 음식 맛이 공개된 것이다. 다행히도 맛은 괜찮다고 한다. 그런데 한결같이 지적하는 문제가 하나 있었다. “찜갈비는 뼈와 살이 분리될 정도로 푹 익혀야 하는데 아직 좀 질기다”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어버이날 우리 부모님께 찜갈비를 차려 드렸을 때 “맛있다”고 한 것은 하자가 조금 있어도 일부러 눈 감아 준 것이었다. (관련 기사보기☞ 어버이날 밥상) 그렇게 우쭐대다 이날 음식판정단에 걸려서 내가 뼈도 못 추리게 된 것이다. 물을 조금 더 넣고 중불에 찜갈비를 푹 고았다. 마침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뿌리기 시작했다. 음식상도 거실로 옮겨왔다. 3층짜리 주택 주변은 온통 풀밭에다 드문드문 집이 있었다. “시골에서 살려면 벌레들과 친해져야 한다”는 안방마님의 말씀이다.

인내력이 바닥났다. 밤 아홉 시가 훌쩍 넘었는데 아직 냄비에서는 찜갈비가 냄새만 풍기고 있다. 남성들이 내 맘을 알아줬다. “그냥 먹어도 된다. 이제 맛 좀 보자.” 일단 공식 출장요리인만큼 쟁반에 곱게 담았다. 한식의 화룡점정은 고명을 얹는 일이다. 찜갈비 위에 고추 고명을 얹어서 상에 올리려는데 작은 문제가 생겼다. 공동 요리사인 깍두기 형님의 잡채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진 것이다. 같이 상에 올려야 할 텐데 이미 뱃속에 들어가 버렸다. 냄비에 남은 잡채를 긁어서 쟁반에 담았다. 두 명의 아마추어 경상도 아저씨 요리사가 요리를 쟁반에 담아 올렸고 회원들은 박수와 환호로 화답했다. 요리 배운 덕분에 한 가정의 집들이를 거들 수 있어 즐거웠던 날이다.

올해 봄과 여름은 요리와 함께 살았다. 요리는 사랑이라는 사실도 알게 됐고, 우리 어머니들이 자식들의 한 끼 밥에 애간장을 태우는 이유를 깨닫게 됐다. 가을의 문턱에서 내 요리는 다시 담금질에 들어간다. 소문과 음식솜씨가 차이나면 민망하니까. jhj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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