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냉전 이후 한국 외교의 새로운 도전은 강대국 관리 외교일 것이다. 19세기 말까지 오랜 전통적 관계를 맺어 왔으나 한국전쟁 이후 적국이었던 중국이 새로운 세계 초강국으로 등장하면서 전통적 동맹국인 미국과의 경쟁과 갈등이 예상되는 가운데 한국이 이들 사이에서 취해야 할 전략은 그리 쉬운 선택이 아니다. 특히 한국은 역사적으로 복수의 강대국을 상대해 본 경험이 없어 그 어려움이 배가 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많은 사람들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한국이 취할 전략으로 균형외교를 말하고 있다. 그러나 실상은 훨씬 복잡하다. 한국의 대중 무역의존도는 이제 미국의 그것을 훨씬 상회하여 전체 무역의 25%에 이르고 있다. 다른 한편 군사ㆍ안보적으로는 아직도 미국과의 동맹이 필수적인 상황이다. 이런 상황은 한국의 선택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조선왕조 시대 외교는 그 대상이 중국이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고 식민지 시기는 외교권이 박탈당했으며 해방 이후는 거의 전적으로 미국 의존적 외교였다.

일본군 병사가 자신의 얼굴을 노인의 얼굴 앞에 바짝 들이민 채 히죽 웃고 있다. 이 사진은 북한 영문잡지 'KOREA'(8월호)의 'Crime-ridden History Can Never Be Hidden'(범죄로 뒤덮인 역사는 결코 숨길 수 없다) 는 제목의 8·15 특집면에 게재됐다. 연합뉴스

한말과 대한제국 시기 세계 제국주의 열강들과의 관계 경험은 주권의 상실로 귀결되었다. 당시 강대국 외교의 실패 원인은 대외 정세 파악의 미숙, 군사력 증강의 실패 등 여러 가지가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 실패의 주범은 당시 만연한 수구파와 개혁파의 분열, 그리고 그 국내 분열을 외국 세력과 연계하려던 것이었다는 데 큰 이의가 없을 것이다. 국내 세력의 단합이 국가 존망에 얼마나 큰 기초인가를 한국의 역사가 생경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역사적 경험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한국의 현실은 과거에 비해 크게 달라진 것이 없는 것 같다. 민주주의라는 이름 하에 한국의 생존에 관련된 주요 외교 사안에 대한 합의가 존재하지 않는다. 정권이 바뀜에 따라 주요 강대국 외교의 기조가 달라지고 이를 두고 끊임없는 논란이 이어진다. 주요 정당들은 국내 주요 정책에서 차별성이 없어지자 대신 외교정책에서 이를 찾으려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

강국 외교는 여야를 막론하고 민주주의의 대외 전략적 가치를 깊이 인식하는 일에서 시작된다. 지정학적으로 상대적 약소국인 한국이 생존을 보장하는 길은 민주적 토론을 통하되 기본적인 전략적 목표에 대해서는 굳건한 초당적 합의와 국민적 지지를 확보하는 것이다. 미국이든 중국이든, 우리 국민 전체의 합의로 단합된 외교 전략 목표에 대한 의지를 표명할 경우 그 어떤 압력도 효용이 없다는 것을 인식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약소국 민주주의가 갖는 전략적 가치이다.

민주주의 전략적 가치는 여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공고한 민주주의는 중국이 따라 올 수 없는 이상이며 서구 사회와는 동질성을 공유할 수 있는 중요한 가치이다. 명분과 실리의 갈등에서 성숙된 민주주의는 한국 외교의 명분을 충분히 감당해 줄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4일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대한민국 임시정부청사 재개관식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상하이=홍인기기자 hongik@hankookilbo.com

그러나 한국 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양상은 민주주의 전략적 가치를 극대화하기는커녕 그 약점을 들춰내고 있다. 토론에 기초한 합의보다 분열과 혼란상을 보이고 있고 근거 없는 정권 간의 차별화 경쟁은 오히려 안보를 해치고 있다. 민주주의의 전략적 가치의 활용 이전에 외교의 전략적 전술적 고려에만 열중하고 있다.

균형 외교나 등거리 외교 등을 얘기하기 전에 한국의 이익이 무엇인가에 대한 기본적 합의가 중요하다. 사드 배치 문제든 AIIB 가입 문제든 강대국들의 눈치를 보기 전에 한국의 이익이 무엇인가에 대한 국내의 일치된 견해를 수립하고 이를 대외적으로 알려야 된다. 그런 국내적 합의가 존재할 때 한국 외교는 힘을 받게 된다.

초당 외교는 민주주의 전략적 가치를 극대화하는 기초이며 한국 외교 성공의 필요조건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한국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미국과 중국의 경쟁과 갈등이 더욱 가시화되기 전에 허비하지 말아야 할 한국 외교의 황금 시간을 흘려 보내고 있다. 아직 초당적 외교를 조성하기 위한 시민단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한국 사회가 외교 문제를 그리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방증이 아닐까.

하용출 미국 워싱턴대 잭슨스쿨 한국학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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