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전후 70년 담화(아베 담화)를 발표한 아베 신조 내각의 지지율이 여러 조사에서 40%대를 웃돌고 있는 가운데, 아베 총리의 총리직 연장이 걸린 자민당 총재 선거 결과에 관심이 모인다. 사진은 지난 7월 집단 자위권 법안 강행 처리를 위해 자민당 의원들이 중의원 본회의에서 찬성 표시로 기립한 모습. 연합뉴스

안보법안 강행처리로 지지율이 급락하지 않았다면 ‘아베(安倍) 담화’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무라야마(村山) 담화의 4대 키워드(식민지배, 침략, 사죄, 반성)는 언급했을까. 아베 총리가 담화에서 예상보다‘비교적’ 몸을 낮춘 데는 국내외 여론이란 제약이 작동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야당시절에도 무라야마ㆍ고노(河野) 담화를 “국익을 해치는 행위”로 공격했던 당사자가 역대내각의 입장이 흔들림 없다고 못박고 전시 여성의 명예를 거론한 것은 일정부분 평가할만하다. 이유야 어떻든 담화는 내각의 결정을 거친 공식 정치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베 담화는 역사관부터 대폭 후퇴했다. 식민지배의 영원한 결별을 주장하면서 서양제국도 하던 일이고, 오히려 러일전쟁에서 이긴 일본은 서구의 식민주의에 맞선 비서구 진영의 영웅이란 뉘앙스를 집어넣었다. 한일병합 100주년에 발표된 간 나오토(菅直人) 총리 담화(2010년)가 식민지배를 “한국인의 뜻에 반한”것이었다며 일본의 책임을 실질적으로 인정한 것과 대비된다.

만주 침략과 관련 기술도 세계 공황이 일어나고 구미제국이 경제블록화를 추진해 일본경제가 타격을 입었다며 당위성을 강조하고 있다. 일본은 만주 침략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고 책임은 ‘ABCD 포위망’(1941년 미ㆍ영ㆍ중ㆍ네덜란드의 대일무역봉쇄)에 있다는 식이다. 진실이 두려워 역사를 조작하고 미화하는 일본 극우집단의 궤변을 답습했다.

이런 담화가 일본의 장기적 국익과 주변국 외교에 적절했는지 의문이다. 한반도 강제병합을 빼놓고 한국에 냉담한 담화가 한중 밀착을 경계하는 일본으로서 제대로 된 처방일까. 또 다음 세대까지 사죄의 숙명을 짊어지게 해선 안된다고 했다. 침략도발을 부인하고 식민지배를 정당화하는 한, 일본의 미래세대는 계속해서 아시아인에게 과거를 사과해야 하는 운명을 모르는 걸까.

이런 모순이 지적되는데도 담화 후 집권당 분위기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아베 총리의 입지는 탄탄대로다. 오는 20일 자민당 총재선거에서 무투표 재선이 유력해졌다. 주목할 점은 역대 일본 총리의 장기집권엔 공통된 특징이 있다는 것이다. 후계자군 경쟁을 유도해 정권기반을 다지는 방식이다.

최장 7년 남짓 유지된 사토 에이사쿠(佐藤榮作) 정권에선 ‘삼각대복중’(三角大福中ㆍ미키, 다나카, 오히라, 후쿠다, 나카소네)으로 불리는 5명의 차세대그룹이 있었다. 1980년대 초 5년간 집권한 나카소네 총리땐 ‘안죽궁’(安竹宮ㆍ아베 신타로, 다케시타, 미야자와)이란 뉴리더들이 유명했고, 고이즈미 총리는 ‘아사가키코조’(麻垣康三ㆍ아소 다로, 다니가키, 후쿠다 야스오, 아베 신조) 4명을 등용해 이중 3명이 총리가 됐다.

그러나 장기집권을 노리는 아베 총리는 후계자를 키우지 않고 있다. 2012년 총재경선 때 지방표에서 아베를 눌렀던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지방창생담당장관조차 이번엔 도전은커녕 추후 당과 내각인사에서 배제될까 몸을 사리는데 급급하다. 그간 진행된 일본정치의 제도 변화도 이런 상황의 원인이다. 소선거구제로 상징되는 일련의 정치개혁이 결과적으로 여당 내 온건파를 축소시키고 주류 보수만 크게 살찌웠다. 당대당 대결이 중요해지면서 총재에게 정당교부금과 공천권이 집중됐고 일본 특유의 파벌 영향력은 쇠퇴했다. 역설적으로 파벌이 분담하던 내부경쟁과 견제, 지도자 육성기능마저 약해지고 말았다.

하지만 지금이 거대여당 내부가 이토록 평온하고 침묵할 때인가. 아베에게 대항하는 의미 있는 계파나 투지 넘치는 정치인, 역동적인 논쟁을 도무지 볼 수 없다. 후보간 공개경쟁으로 국민관심도가 치솟고 집권당 이념과 정책을 재검증할 기회가 사라졌다. “정치인이 샐러리맨화하면 끝이다”는 나카소네 전 총리 어록이 새삼 와 닿는 자민당의 풍경이다.

도쿄=박석원특파원 s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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