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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개발 단지 길고양이 가족, 살아 나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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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개발 단지 길고양이 가족, 살아 나올 수 있을까

입력
2015.09.04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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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빈 건물 속 고양이 7마리, 철거 땐 꼼짝없이 죽을 처지

"중성화수술로 번식 막아 공생"

서울의 한 재개발 지역에서 치료를 위해 포획된 새끼 길고양이. 카라 제공
서울의 한 재개발 지역에서 치료를 위해 포획된 새끼 길고양이. 카라 제공

지난달 31일 밤 재개발이 한창인 서울의 한 아파트. 가설 방음벽으로 단단히 둘러싸인 가운데 텅 빈 아파트 안에서 나올 수 있는 통로는 파란색 천으로 임시로 막아놓은 곳밖에 없다. 캣맘(길고양이에게 먹이를 주고 돌보는 사람) 장모(48)씨와 한모(43)씨가 “라임아~ 밥 먹자~”부르니 4개월 된 노란색 새끼 고양이 5마리가 차례로 빼꼼히 머리를 내민다.

라임이네는 지난 7월 중순 방음벽이 설치되기 전 장씨에게 발견됐다. 몸이 왜소해 보이는 엄마 라임이와 작은 새끼 5마리, 그리고 라임이가 없을 때 새끼들을 돌보러 오는 다른 암컷 고양이까지 총 7마리가 이곳을 보금자리로 삼았다. 사람이 없으니 오히려 살기 좋다고 판단했나 보다. 하지만 곧 철거가 시작되면 라임이네는 꼼짝없이 아파트 지하에 갇혀 죽게 된다. 이때문에 시작된 ‘라임이네 이주 프로젝트’. 장씨는 수년간 캣맘으로 활동한 한씨와 동물보호단체 카라에 도움을 요청했고, 이들은 암컷 고양이들에게 중성화 수술(TNR)을 해주고 먹이를 주며 나올 수 있는 길을 알려주기 시작했다. 아직 라임이는 잡히지 않았지만 다른 암컷 고양이는 TNR을 마쳤다. 눈이 아픈 새끼 고양이 1마리의 치료를 마친 후 두 마리는 4일 오후 방사된다.

우리 주변에 흔히 볼 수 있는 길고양이들. 하지만 재개발 지역에서의 길고양이들의 삶은 더욱 척박하다. 철거 등으로 위급 상황이 발생할 때 허둥대다 빠져나갈 통로를 확보하지 못하면 그 자리에서 죽게 된다. 주인이 이사를 가면서 버려진 이른바 ‘품종묘’들도 문제다. 길에서 살아온 경험도 없는 데다 어렵게 살아남았다고 해도 새끼를 낳게 되면 또다른 길고양이들이 늘어나는 것이다. 실제 라임이네 옆에는 TVN의 예능프로그램 ‘삼시세끼’에 등장하는 고양이 ‘벌이’로 유명해진 터키시앙고라 흰둥이네와 희귀한 고양이에 속하는 봄베이블랙까지 살고 있다.

길고양이들의 삶은 고단하다. 서울 시내에 사는 길고양이 수는 25만마리, 평균 수명은 2,3년, 생존율도 30%도 채 되지 않는다. 전진경 카라 이사는 “밥만 잘 주는 것은 고양이의 또 다른 임신과 출산으로 이어지고 오히려 고양이의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가져 온다”고 했다. 그는 이어 “TNR을 하게 되면 더 이상 고통 받는 생명이 늘어나는 것을 막고 기존 고양이들도 먹이 경쟁을 덜 할 수 있게 된다”며 “특히 발정기에 내는 아기 울음소리도 나지 않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과의 마찰도 줄어들게 된다”고 덧붙였다.

TNR의 효과는 캣맘들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4년간 70마리의 고양이를 중성화한 한씨는 “고양이들을 중성화 수술 시킨 이후 어느 순간부터 새끼들이 안 나타났다”며 “3㎏이상 다 큰 건강한 고양이를 대상으로 실시하고, 같은 장소에 방사하는 방식을 취했기 때문에 개체 수 조절 효과를 얻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개인이 TNR을 하는 것은 쉽지 않다. 따라서 주변에 중성화할 길고양이가 있다면 다산콜센터나 해당구청(생활경제과)에 길고양이 TNR을 요청하거나 동물보호단체들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다. 구청에 길고양이 중성화를 신청하게 되면 포획을 위탁 받은 단체 관계자가 길고양이를 포획하고, 연계된 동물병원으로 인계해 중성화 수술을 해준다. 이 때 신고자가 길고양이 상태가 어떤지, 또 같은 곳에 제대로 방사되는지 확인해주면 좋다. 포획부터 방사까지 직접 관여하고 싶다면 동물보호단체에 연락을 하면 된다. 포획틀을 받은 후 먹이로 길고양이를 잡은 다음 연계된 병원에서 수술을 하고 같은 자리에 풀어주면 된다. 이 때 포획틀 보증금이나 수술비용은 신고자가 부담한다.

전 이사는 “길고양이와 친숙해진 캣맘이 TNR에 참여하면 TNR과정에서 길고양이들의 스트레스도 덜할뿐더러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통해 길고양이가 다시 정착해 살아가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고은경기자 scoopk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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