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 위부터 시계 반대방향으로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오피스', '베테랑', '위로공단'.

부하직원이 집안 제사를 입에 올리자 부장이 바로 면박을 준다. “제사? 네 밥줄부터 챙겨. 추석 오기 전에 모가지 달아난다!” 일에 치인 한 인턴 사원은 이런 하소연을 한다. “내가 죽으려고 일하는지 살려고 일하는지 모르겠어요.” 3일 개봉한 영화 ‘오피스’의 장면들이다. ‘오피스’는 한국의 정글과도 같은 직장이 언제든 공포의 도가니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지옥도 같은 한국사회의 단면을 스크린에 펼치며 지금 이곳의 고통을 반영한다.

‘헬조선’(지옥과도 같은 한국)이라 불리는 시대상을 담은 한국영화가 극장가를 채우고 있다. 소설 ‘한국이 싫어서’(장강명)를 필두로 험난한 한국사회에서의 삶을 그린 문학 작품이 대두된 이후 영화계 역시 처절한 현실 묘사로 대중의 공감을 끌어내고 있다.

지난달 개봉한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는 아무리 노력해도 기본적인 생계조차 유지하기 힘든 각박한 한국사회를 비판한다. 여주인공 수남(이정현)은 자격증을 14개나 가지고 있으나 직장에서 쫓겨나고 아르바이트 수준의 일자리를 전전한다. 결혼을 해 어렵게 집 한 칸을 장만하나 실질적인 주인은 은행이다. 일을 해도 빚은 늘어가는 현실 앞에 수남은 좌절하고 극단적인 행동을 하게 된다. 집도 연애도 취업도 출산도 인간관계도 포기해야 하는 ‘5포 세대’의 아픈 현실이 담긴 이 영화의 포스터 문구는 ‘열심히 살아도 행복해질 수 없는 세상’이다.

최근 1,000만 관객 고지를 넘어선 ‘베테랑’도 한국사회의 어둠을 에너지 삼아 이야기를 전진시킨다. 하청업체의 부도로 돈을 받지 못한 화물트럭 기사가 체불임금을 수령하기는커녕 재벌3세 조태오(유아인)에게 폭행을 당하면서 영화는 갈등 속으로 들어간다. 류승완 감독은 “조태오의 손에 수갑이 채워지는 순간 ‘아 쟤는 이제 끝났구나’라고 사람들이 생각해야 정상인데 한국사회는 그렇지 못하다”며 “일하는 사람이 정당하게 대우 받고 살 수 있는 세상을 생각하며 영화를 만들었다”고 밝혔다.

법은 안중에도 없는 재벌들의 행태는 대중문화의 낡은 소재가 됐음에도 ‘베테랑’에서 관객들의 눈을 유독 끄는 장면이 있다. 조태오 등 임원들이 회장이 주재하는 회의에 앞서 화장실도 마음대로 갈 수 없어 미리 기저귀를 입는 모습은 목숨 걸고 일해야만 자기 자리를 지킬 수 있는 한국 대기업 문화를 스크린에 투영한다.

영화로는 이례적으로 올해 베니스비엔날레에 초청돼 은사자상까지 수상한 다큐멘터리 ‘위로공단’은 서정적으로 노동자들의 어두운 현실을 그린다. 1970~80년대 수출전진기지 노릇을 했던 구로공단의 여성노동자, 서울 평화시장 피복 공장 노동자, 삼성반도체공장에서 근무한 암환자 등의 인터뷰가 여러 상징적인 연출 화면과 섞이며 경제가 발전해도 변치 않는 노동자들의 고단한 삶을 보여준다. 영화 속 구로공단 출신 한 중년여성은 분기 어린 목소리로 말한다. “대통령은 성실하게 일하면 다 잘 살 수 있다는데 성실하지 않은 노동자가 어디 있냐”고. ‘위로공단’의 임홍순 감독은 “봉제공장에서 40년 동안 일한 어머니 등의 삶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한국)여성의 삶과 그들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 등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라제기기자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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