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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는다, 고로 존재한다] 은밀하게 위대하게, 스니커즈의 역사

입력
2015.09.03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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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니커즈 한 켤레를 샀다. 품이 조금은 넉넉해진 바지와 니트 상의에 코디하기 위해서다. 예전 같으면 구두를 신었는데 스니커즈로 갈아탔다. 요즘 스니커즈는 한 마디로 대세다. 사무직 여성의 오피스 룩에 스니커즈가 합류했다는 소식에서, 키 높이에 상관없이 당당하게 신을 수 있는 패션 품목이라며 추켜세운다.

스니커즈는 언제 태어났을까? 현재의 스니커즈의 원형이 된 아이디어를 낸 이는 16세기 영국의 헨리 8세다. 몸집이 비대해진 왕은 테니스로 살을 빼려고 했는데 문제는 스포츠에 적합한 신발이 없었던 것. 이에 신발 장인에게 펠트 천으로 밑창을 댄 6족의 신발을 만들 것을 명령한다. 이 신발은 오늘날 스니커즈의 원형과 개념적으로 일치한다. 스니커란 캔버스 천으로 만든 갑피와 열과 추위에 강한 경화고무창으로 만든 신발을 일컫는 이름이다. 스니커란 이름은 이 신발이 태어나고 난 후 훨씬 시간이 지난 후 미국에서 마케팅 캠페인의 광고카피로 사용되었다. 땅에 바닥창이 닿아도 소리가 나지 않는다며 붙인 이름이다.

패션의 역사에서 스니커즈는 이름값을 했다. 은밀하고 위대하게 세상을 변화시킨 것. 최초의 스니커즈는 1830년대 리버풀 고무회사(이후 던롭이 됨)가 만들었다. 1870년 더 튼튼하고 편안한 스포츠화, 플림솔(Plimsol)이 태어난다. 캔버스 갑피와 경화고무창을 붙인 지점이 마치 화물선의 적재 데드라인인 플림솔 라인을 연상시킨다 해서 붙여진 애칭이었다. 플림솔은 영국의 정치가이자 사회개혁자였다. 그는 석탄사업에 실패한 후 인생의 밑바닥을 경험하며 가난한 자들의 곤궁한 삶을 자신의 힘으로 바꾸고 싶었다. 당시 과다 적재된 화물선은 무덤이라 불릴 만큼 침몰이 잦았다. 그는 침몰 문제를 해결하고자 플림솔 마크를 고안해낸다. 충격을 잘 흡수하고 잔디에서도 착화감이 좋은 플림솔은 급속도로 대중의 사랑을 받는 스포츠화가 됐다. 스니커즈는 정말 한 사회의 정치적 미감과 계층, 인종의식이 침몰하지 않고 정교하게 어울릴 수 있는 정신의 플림솔 라인을 만들어낸다.

이후 1908년 메사추세츠 출신의 고무덧신 생산업자인 밀즈 컨버스는 1917년 프로 농구선수들을 위해 특별히 설계한 하이 탑 컨버스 올스타를 출시한다. 동시에 당시 에크런 파이어스톤의 농구선수였던 찰스 테일러가 컨버스의 매력에 빠져 1921년 스스로 판매원이 되어 미국 전역에 자신의 이름을 딴 농구교실을 열면서 올 스타 스니커즈를 팔았다. 이 과정에서 스니커즈 디자인에 중요한 혁신을 이뤄냈다. 1923년 자신의 사인이 담긴 Chuck Taylor를 발목패치에 나타나게끔 한 것. 오늘날에도 척 테일러 디자인의 컨버스는 여전히 인기다. 1930년대 테일러의 사인은 디자인 요소로 굳어졌다. 첫 출시 때 컨버스는 세 가지 스타일을 갖고 있었다. 검정색 캔버스 갑피와 고무창을 가진 단색 슈즈, 청색과 빨강으로 트리밍을 한 올 화이트 슈즈, 올 블랙 가죽과 고무창으로 된 컨버스였다. 1949년이 되어서야 컨버스는 발가락 보호대와 끈을 흰색으로 디자인해서 오늘날의 대표적인 흑백 컨버스 올스타즈가 나온다. 이후 스니커즈는 사회 내부의 다양한 계층에게 매력을 어필하는 품목이 된다. 운동선수에서 중2병에 걸린 아이들, 전문직 컨설턴트 모두 스니커즈를 신고 도보를 걷는다. 1970년대 농구장과 힙합 공동체의 뉴요커는 스포츠 용품인 스니커즈를 문화적 표현의 도구로서 인식을 바꾸었다.

최근 사회 전반의 드레스 코드가 허물어지고 있다. 옷을 둘러싼 격식의 데드라인이 약화되고 있다는 말이다. 남성 수트는 디컨스트럭티드 재킷(안감 심지 패드 등을 생략 또는 배제해 만든 재킷)이 도입되면서 한층 부드러워졌고, 스니커즈는 이런 재킷에 잘 어울리는 품목이 되었다. 오랜 시간 동안 굳어진 옷의 스타일링 방식은 그 자체로 한 사회의 견고한 보수적 태도를 반영한다. 모두가 함께하는 스타일이란 없었다. 서로들 차별화의 욕망에 빠져 그저 고급스런 소재나 기술을 특정 계층이 독점하려고 했던 이전시대를 보면 그렇다. 계층의 경계를 허물고 패션의 민주화를 은밀하게 이뤄낸 스니커즈가 그저 만만한 발명품이 아니란 건, 이 정도면 자명하지 않을까.

김홍기ㆍ패션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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