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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종일 놀아주고 영어책도 술술 "이모보다 언니 오빠" 애들이 더 찾아요

입력
2015.09.03 04:40
수정
2019.08.06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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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종일 놀아주고 영어책도 술술 "이모보다 언니 오빠" 애들이 더 찾아요

대하기 편하고 전문교육도 받아… 유치원 입학 전 아이 돌보미로 딱

시급 1만~2만원 수준 짭짤… 현장경험 쌓기 좋아 지원자 늘어

대학생 정민영(22ㆍ가명)씨는 베이비시터다. 일주일에 2~3번 아이들 집으로 찾아가 놀아주는 일을 아르바이트로 하고 있다.

지금은 세 살, 여섯 살 형제를 돌봐주고 있다. 특별히 준비물은 없다. 총 싸움, 칼 싸움, 술래잡기를 한다. 로보트 장난감을 가지고 놀거나 잡기놀이, 숨바꼭질을 하다 보면 근무시간인 3~4시간이 깜짝할새 지나간다. 집 안에 있는 아이들의 장난감 물감 크레파스 찰흙 만으로도 몇 시간 놀이가 가능하다.

아동복지학부에 재학 중인 정씨는 친구의 소개로 2012년 처음 이 일을 시작했다. 대학생 아르바이트 중 시급이 높고, 관련 지식을 실전에 써볼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런데 무심코 시작한 일이 천직이 되어가고 있다. 몸은 고되지만 아이들이 커 가는 모습을 보는 기쁨과 보람이 컸다. 자신이 오기를 오매불망 기다리는 아이들을 보면 아들이 둘 생긴 느낌도 들었다. 정씨는 “다른 아르바이트는 정말 험하고 속상한 일도 많았는데 시터를 하면서는 마음고생이 적다”며 “시간이 지나면서 돈을 받고 하는 일이라는 생각 보다는 그 가족의 일부가 되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젊어지는 베이비시터

중년 여성 그 중에서도 ‘조선족 이모’들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베이비시터가 갈수록 젊어지고 있다. 아이를 맡기는 부모들은 단순히 아이를 돌봐주는 그 이상을 원하고 있고, 시터에 지원하는 2030들은 이 일이 다른 아르바이트보다 대우가 좋은 일자리라는 인식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만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해외에선 이미 ‘오페어’(Aupair)라는 일자리가 젊은 이들 사이에서 큰 인기인데, 해당 국가의 가정에서 아이를 봐주고 약간의 집안일을 도와주는 대신 숙식과 급여를 제공 받는 일종의 문화교류 프로그램이다.

베이비시터 알선업체인 유아월드시터의 박미숙 대표는 “부모들이 이전에는 ‘안전’하게 아이를 돌봐주고 데리고 있어주길 바랐지만 요즘은 책 하나를 읽어주더라도 재미있게 읽어주고 놀아줄 수 있는 관련 학과 학생들을 찾는다”고 말했다. 주로 전문시터를 소개하는 이 업체의 등록 선생님 중 90%가 20~30대다.

젊은 부모들 입장에서는 나이 많은 시터 보다 어린 시터가 편하기도 하다. 박 대표는 “아무래도 20~30대 부모회원들은 나이 많으신 분들에게 아이를 이렇게 해달라, 저렇게 해달라 요구를 전달하기 불편해 한다”며 “아무래도 시터가 대학생이나 본인 또래면 이런 점에서 편하게 느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육아카페에는 20~30대들이 40~50대 시터들과 양육철학이나 양육방식이 맞지 않는다고 고민을 호소하는 글을 쉽게 찾을 수 있다.

20~30대 시터의 구인구직 경로는 크게 세 가지다. ‘시터넷’ ‘이모넷’처럼 중개플랫폼을 통하는 게 일반적인 방법이다. 또 직접 인력을 소개하는 알선업체를 통하는 방법도 있다. 관련 학과 학생들이 학교 과사무실, 혹은 지인이 소개해 주는 식으로 아이들의 선생님이 되기도 한다.

이런 시터 시장은 갈수록 세분화되는 추세다. 구체적인 역할에 따라 학습시터, 놀이시터, 영어시터, 북시터, 등ㆍ하원시터 등 분야도 각양각색이다. 정씨도 정확한 명칭대로라면 ‘놀이시터’로 채용됐다. 부모들은 어린 영아들은 여전히 노련한 40~50대 아주머니들께 맡기려고 하지만, 의사소통이 원활해지는 유치원 다니기 직전 아이들은 대학생이거나 유아교육과를 나온 고학력 전문 시터를 원하는 경우가 많다.

시터가 전문화 세분화하면서 이들을 찾는 수요들도 다양해졌다. 시터들의 손을 빌리는 건 비단 아이를 두고 출근을 해야 하는‘워킹맘’뿐만은 아니다. 전업주부라도 하루 종일 아이와 놀아주면서 집안일을 병행하기 힘들기 때문에 시터 수요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정씨도 “아이 어머님이 집에 계시는 가정주부였지만 형제가 둘 다 엄마랑 놀고 싶어하는 데다 첫째 유치원을 보내는 동안 둘째는 심심해해서 둘째 아이와 놀아달라는 게 어머님의 요구였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조부모가 아이를 봐주면서도 할머니, 할아버지 양육에 한계를 느껴 일명 북시터나 학습시터 같은 일명 ‘에듀시터’로 따로 젊은 학생들을 찾는경향도 있다.

높은 시급, 보람은 덤

2030들은 베이비시터 아르바이트의 장점이 높은 시급이라고 입을 모았다. 다른 서비스업 파트타임 일자리보다 비싼 1만~2만원에 달하는 시급은 확실히 매력적인 유인요소다. 관련 학과라면 실제 유치원 교사나 관계된 업무 현장에 나가기 전에 조금이나마 실습해 볼 수 있어 좋았다는 의견도 많았다. 꼭 관련 학과가 아니더라도 아이를 좋아한다면 정씨처럼 아이들을 돌보는 일이 다른 아르바이트보다 확실히 보람이 있고 스트레스가 덜하다는 평가도 많았다.

오누리(23ㆍ숙명여대 영어영문학4)씨도 최근까지 9개월 남짓 ‘영어시터’로 일했다. 맞벌이로 바쁜 부모를 대신해 여섯 살 난 쌍둥이에게 영어책을 읽어주거나 영어로 게임을 하는 등 영어를 이용해 아이들과 놀아주는 일이었다. 오씨는 “순수하고 에너지가 넘치는 아이들을 보는 일이다 보니 일하러 간 사람까지 그 기운을 받아 좋았다”며 “시급이 높다는 점도 확실히 장점”이라고 말했다.

남학생 시터도 적지 않다. 특히 남자 아이를 가진 부모들 사이에서 특히 인기가 높다. 중앙대 유아교육과에 재학 중인 남동윤(24)씨는 대학생 시터라는 소수 시장에서도 소수인 남학생 시터다. 남씨는 유아교육과에 입학한 2010년부터 올해까지 세 차례 시터 아르바이트를 했다. 같은 학과 동기 30명 중 남씨만이 유일한 남자다. 남씨는 “남자 아이를 둔 부모님들은 남자 선생님을 선호하신다”며 “아이랑 놀이터에서 활발하게 놀아달라고 요구하신다”고 말했다.

남씨는 수업에서 배운 지식을 최대한 동원해 아이들과 놀아준다고 했다. 북시터를 할 때는 본인이 양서로 판단하는 책들을 학교 도서관에서 직접 골라 들고 가 읽어준다. 읽어주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상상력을 키워주기 위해서 가운데 이야기를 건너뛴 다음에 아이들에게 상상해서 지어보도록 한다거나, 아이들이 직접 그림을 그려 동화책을 만들어보도록 한다든가 늘 새로운 방법을 시도한다.

남씨는 “다른 아르바이트처럼 을의 입장이 아닌 게 크다”며 “아무래도 선생님 입장에서 일을 하고 또 앞으로 교사를 준비하고 있는 입장에서 아이들과 보호자를 많이 상대하면서 배우는 게 많다”고 말했다.

안영진 한양여대 유아교육과 교수는 “유아교육과 학생들 입장에서는 패스트푸드점이나 영화관에서 최저임금을 받고 일하는 것보다 시급도 세고 아이들을 좋아하면 더 없이 좋은 자리라 구하고 싶어도 못 구하는 학생들이 많다”며 “4년 내내 휴대전화에 아이들 사진 넣어놓고 다니면서 자기 애처럼 생각하고 키우는 학생들도 있다”고 말했다.

막중한 책임감 요구하는 일

시터가 되려면 기본적으로 아이들을 좋아하고 사랑으로 보듬을 수 있는 자세가 있어야 한다. ‘돈벌이’만으론 결코 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다 보니 애로사항이 한둘이 아니다. 우선 아무리 관련 전공자라고 해도 육아경험이 없다면 관련 서적, 영상을 통해 간접적으로 터득한 지식에는 한계가 있다. 오씨도 “그 동안 주로 중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영어를 가르치다가 어린 아이들을 가르치려고 하니 어느 정도 수준과 눈높이에 맞춰야 할 지 감이 오지 않았다”며 “지금 그만둔 이유도 아이들 가르치는 일은 좋지만 교수법에 회의를 느껴서다”라고 말했다.

부모와 아이가 원하는 게 현저히 다를 때 그 사이에서 중심 잡기도 젊은 시터들의 고충 중 하나다. 지난해까지 네 차례의 시터 경험이 있는 대학생 김영인(23ㆍ가명)씨는 “아이는 책 읽기를 몹시 거부하는데 아이 엄마가 계속해서 강요해 난감한 적이 있었다”며 “처음에는 일이 쉬울 거라고 예상하지만 아이 돌보는 일이 생각보다 육체적으로 힘이 많이 들고 업무강도가 세서 나중엔 돈을 많이 받는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아이를 돌보는 일인만큼 일반 파트타임 일자리 보다는 더 막중한 책임을 안고 일을 시작해야 하는 건 기본 자세다.

과거 1년 동안 일주일에 3일, 4세 아이의 시터를 했다는 조아람(23)씨는 “아이 엄마가 말하기를 제 앞에 아이를 보던 대학생들이 자주 바뀌자 아이가 ‘이제 그 누나 안 와?’라고 하면서 슬퍼했다고 하더라”며 “먼저 자신이 책임감을 갖고 할 수 있는 지 생각해 보고 시작하면 최소 1년은 지속하는 게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김낙흥 중앙대 유아교육과 교수는 “베이비시터는 부모 다음으로 아이와 시간을 많이 보내다 보니 애착을 형성하는 제2의 양육자인 경우가 많다”며 “사람이 자꾸 바뀌면 아이가 정서적으로 불안해 할 수 있어 책임감과 사명감을 가지고 일을 시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송옥진기자 click@hankookilbo.com

여선애 인턴기자(서강대 프랑스문화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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