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연의 다시 읽고 싶은 그림책] 5.준치가시

● ‘준치가시’ 백석 시, 김세현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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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선조들은 출세한 친지에게 맛이 으뜸이라 진어(眞魚)로 불리던 준치를 선물했다고 한다. 준치는 가시가 온 몸에 박혀있어 먹기가 퍽 불편하다. 권력이나 재력이 맛있다고 넘치게 탐하면 목에 ‘가시’가 걸려 낭패를 본다는 메시지를 담은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머리로는 알지만 이를 유념치 못해 사달을 내고 마니, 생선에라도 그 의미를 담아 먹을 때마다 자신을 경계하라는 조상들의 지혜다.

이 준치가시에 얽힌 전설이 있다. 먼 옛날, 준치는 맛있고 가시가 적었다. 사람들이 준치를 너무 많이 잡아 멸종 위기에 처하자 용왕님이 물고기들을 모아 회의를 했다. 용왕님은 “준치에게 가시를 많이 만들어 주자”며 모든 물고기에게 자신의 가시를 하나씩 빼 준치에게 꽂아주라고 명령했다. 몸에 가시가 꽂힐 때마다 아픈 나머지 준치가 달아났다. 그러자 물고기들이 뒤쫓아 가며 가시를 꽂아주느라 준치의 꼬리에 유난히 가시가 많아졌다고 한다.

시인 백석이 준치가시 전설을 1957년에 동화시로 갱신했다. (동화시는 동시의 한 갈래로 백석이 한국에서 처음 시도했다. 백석은 어린이에게는 산문보다 시가 더 적당하다고 생각해 시 형식에 이야기를 담았다.) 가시 없던 물고기 준치는 가시가 부러워 물고기가 모인 곳으로 찾아갔다. 물고기들은 준치의 부탁에 흔쾌히 가시를 꽂아주었다. 가시가 많아진 준치가 기뻐하며 떠나려 했으나, 물고기들이 가시를 더 준다며 만류한다. 염치 있는 준치가 더 준다는 가시를 마다하며 달아나자 물고기들이 뒤쫓아 오며 가시를 꽂아 준다. 그래서 준치는 꼬리에 더욱이 가시가 많은 고기가 되었다. 마지막 연에서 백석은 덧붙인다. 준치를 먹을 땐 가시가 많다고 나무라지 말라고. 물고기들의 아름다운 마음이니 나무라지 말라고.

전설은 준치 가시의 유래를 설명했다. 세상 만물의 못나고 불편한 부분도 다 그리 생긴 까닭이 있다는 조상들의 웅숭깊은 마음이 담겨있다. 백석은 조상들의 그러한 마음을 보듬어(준치 가시를 나무라지 말라는 말은 전설의 핵심을 전달한다) 그 바탕 위에 근대성을 접목한다.

물고기들이 준치에게 가시를 꽂아주게 된 계기를 전설은 ‘용왕의 명령’이라고 했다. 동시는 그와 다르게 ‘준치의 부탁과 물고기들의 화답’ 때문이라고 이야기한다. 준치가 도망가는 이유도 다르다. 전설은 “아파서”라고 했지만 동시는 준치가 “염치 있는 고기”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물고기들이 준치를 뒤쫓아 가며 가시를 꽂아주는 모습도 다르게 그려진다. 전설에서는 용왕의 명령을 완수하려는 물고기들의 ‘의무감’이 느껴지고 동시에서는 가시를 더 주려는 물고기들의 ‘아름다운 마음’을 강조한다. 전설 속 준치는 수동적으로 가시를 얻었다. 그에게는 고유한 개별적인 주체로서의 성격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가시에 찔릴 때 아픔을 느끼고 그 때문에 도망가는 것 외에 다른 모습은 없다. 그와 달리 동시 속 준치는 스스로 가시를 가지기를 욕망하고 행동해 얻어낸다. 백석은 준치에게 주체성과 생기발랄한 개성을 입혀 근대적인 캐릭터로 다시 빚어냈다.

준치는 '가시 동냥' 소동을 겪으며 가시를 얻고 준수하게 성장한다.

그런데 근대적인 백석의 준치가 지닌 윤리는 전통적이다. 준치의 흥미로운 개성은 욕망하고 행동하면서도 염치를 안다는 데에 있다. 염치란 부끄러움과 분수를 아는 마음이다. 부끄러움과 분수를 알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경계해야 한다. 출세한 이에게 준치를 선물하던 조상들의 마음이, 근대적인 준치 캐릭터의 피와 살에 스며들어 있다. 물고기들의 ‘아름다운 마음’에도 눈길이 간다. 준치의 ‘염치’와 물고기들의 ‘아름다운 마음’은 공존과 베풂을 어여삐 여기는 공동체의 덕목이다.

전통과 소통하며 근대성을 표현한 백석의 동시 ‘준치가시’에 그림책 작가 김세현이 2006년에 그림을 입혔다. (시 그림책은 ‘잘 만들어야 본전’이라고들 한다. 그림책이란 글과 그림이 서로 대등하게 기능하는 장르인데, 그림이 시에 밀릴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김세현이 이 그림책을 시작해서 끝내기까지 7년이 걸렸다고 한다.) 김세현이 백석의 준치를 데려오며 얹은 것은 한 움큼의 해학과 익살이다. 바다의 푸른색을 대담하게 생략한 채 간략한 선으로 캐릭터의 개성을 살렸다. 옛 민화의 멋을 닮았다.

순진하지만 당찬, 큰 눈망울을 지닌 모습으로 처음 등장하는 아기 준치는 인생이라는 모험을 떠나는 어린이의 모습 같다.

김세현은 준치의 ‘염치’에 자기가 벌인 판이 커지자 쩔쩔매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덧칠한다. 준치가 가시를 마다하는 이유가 ‘염치’ 때문만은 아니다. 아파서 도망친다고 하면 모양 빠질까봐 염치 운운하며 내빼는 준치의 우스운 모습이 생생하게 살아났다. 물고기들의 ‘아름다운 마음’엔 장난기를 덧칠한다. 준치의 마음을 간파하고 “아이고, 가시가 그걸로 되겠어? 이 정도는 꽂아줘야지”라는 물고기들의 능글맞은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어린이들은 웃음 속에서 민족의 지혜를 배워야 한다는 백석의 지론을, 김세현은 그림으로 구현했다. ‘염치’와 ‘아름다운 마음’의 훈훈함에 살짝 가려졌던 해학과 익살을 풀어놓고 한바탕 난장을 펼친다. “그러나 고기들의 아름다운 마음!” “그러나 준치는 염치 있는 고기” 같은 시구가 김세현의 그림 덕에 웃음 한 모금을 더 머금게 되었다. 중독성 있게 입에 쫙쫙 붙는다.

달아나는 준치를 뒤쫓아가며 가시를 꽂아주는 물고기들.
달아나는 준치를 뒤쫓아가며 가시를 꽂아주는 물고기들의 표정이 장난스럽고 능글맞다.

딸아이는 ‘준치가시’를 보며 자주 킥킥댔다. 며칠 동안 밥상머리에서 “그러나 고기들의 아름다운 마음!” “그러나 준치는 염치 있는 고기”를 흥얼거렸다. 어린이들이 동시 ‘준치가시’를 그림책이 아닌 동시집에서 처음 접했다면 그렇게 재미있어 하지 않았을 것이다. 동시 ‘준치가시’가 원래 품고 있던 해학의 맛을 어린이들이 소화할 수 있도록 요리한 김세현의 공이다.

그림책에 처음 매혹되었을 때 서양의 명작이라고 하는 그림책을 주로 보았다. 윌리엄 스타이그의 ‘멋진 뼈다귀’나 크리스 반 알스버그의 ‘빗자루의 보은’ 같은 그림책을 보면서 서양의 그림책이 부러웠다. 일제의 식민지를 오래 겪은 탓에 본래의 문화와 단절한 채로 근대화한 한국과 달리, 서양의 근·현대 문화에는 옛 문화가 자연스럽게 녹아있다. ‘멋진 뼈다귀’에서는 ‘헨젤과 그레텔’이 산들바람처럼 속삭이고, ‘빗자루의 보은’에서는 마녀 민담이 생생하게 새로워진다. 한국의 그림책에서 전통은 박제된 채 기능하는 경우가 많았다. 전통을 차용했으나 어깨에 힘이 들어가 겉도는 작품들을 보면 안타까웠다. 전설에서 동시로, 동시에서 그림책으로, 긴 세월을 넘어 막힘없이 흐르는 대화를 품은 ‘준치가시’를 보면 체증이 좀 풀린다. ‘준치가시’, 서양 그림책 안 부럽다.

김소연기자 aur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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