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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칼럼] 남북한 대화의 최대 승자는

입력
2015.08.28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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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남북한 고위급 회담의 손익 계산서를 따져 보면 누가 가장 큰 이득을 본 것일까. 처음으로 북측의 ‘사과’를 받아냈다는 점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승리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더 남는 장사를 했다는 분석도 적잖다.

먼저 김 제1위원장은 이번 남북한 고위급 회담을 통해 외교의 돌파구를 마련했다. 2013년2월 제3차 핵실험 이후 북한은 유엔과 국제 사회의 강력한 제재를 받으며 고립됐다. 혈맹이나 다름없던 중국마저 북한에 등을 돌린 지 오래다. 북한은 이러한 경색 국면을 탈피하기 위해 일본과 러시아에 접근해 봤지만 별 성과는 없었다. 각각 미국과 중국의 의중을 감안할 수 밖에 없는 두 나라는 북한과의 관계 개선에서 한계를 보였다. 당초 러시아의 열병식에 갈 것으로 알려졌던 김 제1위원장이 막판에 이를 번복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북한은 이번 남북한 고위급 회담을 통해 이러한 국면을 타개하는 데 성공했다. 앞으로 남북한 화해 분위기가 이어질 경우 자연스레 북한이 국제 무대에 복귀할 수 있는 여건은 더욱 성숙될 것이다.

특히 목함 지뢰부터 회담 타결까지의 과정을 돌아보면 이번 사태는 치밀하게 준비된 것으로 보인다는 게 중국의 북한 전문가들 시각이다. 물론 남한의 확성기 방송에 깜짝 놀란 북한이 다급하게 협상에 나선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북한은 곧 전쟁이 날 것 같은 위기감을 조성한 뒤 기다렸다는 듯이 협상 카드를 전격적으로 내밀었다. 남한이 협상장으로 나올 수 밖에 없도록 만든 셈이다. 더구나 북한은 ‘유감’이란 애매한 말 한마디를 건넨 대신 확성기 방송 중단이란 실질적 성과를 챙겼다. 북한 입장에서 보면 잃은 것보다는 얻은 것이 훨씬 크다. 일각에선 북한이 지난해 인천아시안게임 폐막식에 황병서 인민군 총정치국장과 최룡해 노동당 비서,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을 보낸 것은 일종의 탐색전이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런 관점들을 감안하면 이번 남북한 협상은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이겼다기 보다 남북한 모두가 승자였다고 보는 게 타당할 것이다. 특히 남북한이 스스로 한반도 긴장을 직접 해소했다는 데 큰 의의가 있다. 이는 비슷한 상황이 벌어진 5년 전과 확연하게 구별되는 대목이다. 2010년11월 북한의 연평도 포격 직후 서해에서 사상 최대 한미연합훈련이 시작되자 중국은 곧 바로 한반도에 직접 개입했다. 미국 항공모함 조지워싱턴호의 작전 반경은 1,000㎞에 달해 서해 진입 시 상하이(上海)는 물론 베이징(北京)까지 사정권에 둘 수 있다. 당시 중국 외교 사령탑인 다이빙궈(戴秉國) 외교담당 국무위원은 먼저 남한을 찾았다. 그는 충분한 사전 협의도 없이 불쑥 우리나라를 방문, 대통령 면담을 요구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자서전 ‘대통령의 시간 2008-2013’에 따르면 당시 이 대통령은 다이 국무위원에게 “우리는 강력하게 응징할 준비가 돼 있다, 우리의 뜻을 북한에 분명히 전달해 달라”고 말했다. 다이 국무위원은 이후 북한을 방문,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면담했다. 북한도 당시 중국의 개입이 못마땅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은 지방 순시를 이유로 며칠이 지난 후에야 다이 국무위원을 만났다. 남북한이 직접 대화하지 못하자 중국은 이 틈을 이용, 한반도 중재자 역할을 자임하며 직접 개입했다. 그러나 이번엔 남북한이 곧 바로 고위급 회담에 돌입, 중국이 끼어 들 틈이 없었다.

올해는 광복 70주년이다. 그러나 진정한 광복은 남북한이 통일될 때 비로소 온다. 그리고 그 과정은 남북한 스스로 이뤄내야 한다. 이번 회담이 이러한 여정의 중요한 이정표가 되길 기대한다. 이는 박 대통령의 아버지와 김 제1위원장의 할아버지가 못다 이룬 꿈을 받드는 일이기도 하다.

박일근 베이징특파원 ik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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