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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노동개혁의 형식에 대한 고민

입력
2015.08.27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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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노총이 노동시장 구조 개혁에 관한 노사정위원회에 참여하기로 결정하면서 약 4개월간 중단되었던 노사정 대화가 재개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향후 협상에서 다양한 사안들이 논의되겠지만, 특히 노동계는 정부가 취업규칙과 일반해고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정하는 것에 반대하고 있다. 언론 보도에 의하면, 한국노총은 이를 중장기 과제로 취급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반해 정부는 원칙적으로 이들도 협상의 내용에 포함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와 관련하여 가이드라인에 담길 내용의 적합성은 차치하더라도, “가이드라인”이라는 형식 자체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있다. 노동개혁에 관한 협상 결과는 최종적으로는 법률 등 법규의 개정을 통해 효력을 발휘한다. 따라서 개혁의 내용에 합당한 수단을 마련해야만, 힘든 과정을 거쳐 합의한 결과가 노동시장에서 제 역할을 발휘할 수 있다. 그런데 정부가 노동개혁의 결과를 이행할 수단으로 선택한 가이드라인이란 것이 그런 역할을 하기는 쉽지 않을 듯 하다. 이는 특히 취업규칙 관련 가이드라인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정부는 개별 기업이 근로자측의 반대가 있더라도 정년 연장과 연동해 임금피크제를 도입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정부는 그 방법으로써 가이드라인의 제정을 통해 취업규칙의 불이익 변경 기준을 완화하려고 한다. 현행 근로기준법에 의하면 기업이 취업규칙을 불리하게 변경하기 위해서는 근로자측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다만, 변경하려는 내용이 사회적 합리성을 갖춘 경우에 기업은 근로자측의 동의가 없더라도 취업규칙을 불리하게 변경할 수 있다. 즉 정부는 가이드라인에서 임금피크제가 사회적 합리성을 갖춘 것이라고 인정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하고, 이를 통해 근로자측의 반대가 있더라도 기업이 취업규칙 변경 절차를 이용하여 임금피크제를 도입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정부의 계획은 가이드라인이 노사관계나 재판에서 실제로 효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하지만 성문법 국가인 우리나라에서는 법원이 정부의 가이드라인에 맞춰 재판을 해야 할 의무가 없으므로, 실제 소송에서 법관이 이 가이드라인에 따라 임금피크제에 관한 취업규칙 규정의 유ㆍ무효를 판단할 가능성은 낮다. 나아가 최근 법원은 강행법규인 근로기준법을 무력화시키는 사회적 합리성론의 적용을 자제해야 한다고 판시한 바 있다. 만약 가이드라인에 따른 임금피크제로 인해 임금이 삭감된 근로자들이 소송을 제기하고 그 재판에서 법원이 가이드라인과는 다른 잣대로(예컨대 근로기준법과 판례 법리로써) 임금피크제에 관한 취업규칙 규정의 효력 유무를 판단한다면, 패소한 기업은 예상하지 못한 재정적 손실을 입을 수 있다. 이 경우 정부의 노동정책에 대한 신뢰 역시 타격을 입게 된다.

또한 노사정 합의로 가이드라인이 만들어지더라도 강한 노조가 있는 대기업에서는 무용지물이 될 가능성이 높다. 단체협약은 취업규칙보다 강한 효력을 발휘한다. 따라서 설령 기업이 가이드라인에 따라 취업규칙을 변경해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더라도, 노동조합이 단체협약을 같은 내용으로 변경하는 데 합의하지 않으면 임금피크제는 효력을 발휘할 수 없다. 결국 정부의 가이드라인은 노조의 조직률과 교섭력이 낮은 중소기업에서만 효력을 발휘하고, 중소기업 근로자의 임금 수준만 낮추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이런 결과는 임금피크제를 통해 청년들에게 대기업의 좋은 일자리를 제공하겠다는 정부의 당초 의도와는 배치되는 것이다.

어려운 과정을 거쳐 재개된 노사정의 대화가 노동시장의 새로운 틀을 마련하는 좋은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서는 그 내용뿐만 아니라 형식의 적합성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취업규칙 등 몇몇 사항의 경우 노동개혁의 수단으로써 가이드라인을 이용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 아닐 수 있다. 이에 대한 노사정의 숙고가 필요하다.

도재형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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