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으로 세상 읽기] 8월 26일

한명숙 전 총리가 불법정치자금 수수죄로 대법원에서 징역 2년형을 확정 선고 받고 24일 서울 구치소에 수감됐다. 알려진 대로 한 전 총리는 이 판결이 부당하다고 거듭 주장하고 있다.

“지난 6년 동안, 검찰의 표적 기획수사와 정치적 기소로 죄 없는 피고인으로 살아야만 했습니다. 검찰은 2010년 서울시장 선거를 앞두고 저를 기소했습니다. 그러나 검찰의 정치적 기소가 거짓으로 판명되고 대법원에서 최종 무죄판결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결국 저들은 성공했고 저는 서울시장에서 낙선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검찰은 1차 사건의 1심 무죄판결이 선고되기 하루 전날, 또다시 별건을 조작해 2차 정치적 기소를 자행했습니다. 백주대낮 도로 한 복판에서 거액의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얼토당토않은 혐의를 덮어씌웠습니다. 하지만 검찰에서 제게 돈을 줬다는 증인이 재판장에서 돈을 준 사실이 없다는 양심고백을 했습니다. 검찰의 기획수사임이 드러났습니다. 결과적으로 돈을 준 사람이 없는데 돈을 받은 사람만 있는 범죄의 구성요건도 갖추지 못한 날조된 사건이 되고 말았습니다.

2차 사건의 1심 재판부는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그 이후 항소심이 시작됐지만 새롭게 드러난 사실과 증거는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나 저에게 돈을 줬다는 증인을 재판정에 한 번도 부르지 않은 채 2심 재판부는 무죄를 뒤집고 검찰의 손을 들어 유죄를 선고했습니다. 1심에서 입증된 모든 무죄 취지는 2심에서 채택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대법원은 2심 재판부의 판결만을 인용하여 유죄를 선고했습니다. 역사는 2015년 8월 20일을 결백한 사람에게 유죄를 선고한 날로 기록할 것입니다. 국민 앞에서 저는 떳떳하고 당당하게 선언합니다. 역사와 양심의 법정에서 저는 ‘무죄’입니다. 비록 제 인신을 구속한다 해도 저의 양심과 진실마저 투옥할 수는 없습니다.”

한명숙 전 총리가 지난 24일 오후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로 들어가기 앞서 지지자들과 기자들에게 입장을 밝히고 있다. 홍인기기자 hongik@hankookilbo.com

한 전 총리의 ‘무죄’ 주장에도 불구하고 3심 재판 끝에 내려진 유죄 확정이 결코 가볍다고 할 수 없다. 그러나 이 판결을 누구라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는 ‘사법 체계’의 권위를 인정한다는 의미에 한정된다. 그 체계 안에서 검찰과 법원의 사법 처리가 잘못 작동할 가능성까지 의심 없이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우리는 특정한 정권 아래에서 사법의 이름으로 저질러진 많은 불의를 봐왔고, 훗날 그 부당한 판결을 바로 잡은 사례 역시 숱하게 경험했다.

물론 이 사건이 그런 경우인지 아닌지 한눈에 수긍할만한 증거는 없다. 하지만 그것을 의심해볼 만한 정황은 있다. 한명숙을 향한 검찰의 집요한 수사 행태, 이번 판결이 1심에서 무죄였다가 2심에서 번복돼 결국 유죄로 확정된 과정, 대법원에서도 8대 5로 결코 적지 않은 소수의견이 나왔다는 점 등이다. 한 전 총리와 그가 속한 야당의 ‘정치 탄압’ 무죄 주장은 반성을 모르는 파렴치한 변명이고 법치주의를 거부하는 망동인가.

이번 판결을 우리의 후진적 정치문화를 쇄신할 기회로 삼아야 한다(한겨레신문 8월 21일자 사설 ‘무겁게 받아들여야 할 한명숙 전 총리의 유죄 확정’▶전문 보기)거나, 청렴결백해야 할 한 여성운동가며 정치인의 타락(중앙일보 8월 26일자 양선희의 시시각각 ‘한명숙 선배, 사죄하십시오’▶전문 보기)으로 보는 것은 틀린 말은 아니나 초점을 빗나간 것이다. 이번 판결에 대한 언론의 대체적인 반응은 대법원 8대 5의 결정에도 한참 따라가지 못하는 수준으로 치우쳐 있다. 우리는 정치적인 역학이 작용하고 있는 이 사건의 진실을 알기 어렵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대법원’이라는 권위에 굴복해 진실이 무엇인지 따져보기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

“전직 총리라도 불법한 돈을 받으면 죄값을 치르는 건 당연한 일이다. “법리에 따른 판결이 아닌 정치권력이 개입된 불공정한 판결”이라는 그의 말에 100% 공감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이해가 가는 측면이 없지는 않다. 기자는 한 전 총리를 개인적으로 알지 못하고 친분도 없지만 한명숙 사건을 현장에서 지켜본 인연은 있다. 1차 수사가 시작된 2009년 11월부터 2차 수사로 두 번째 기소된 2010년 7월에 법조 현장에 있던 기자가 보기에 이 사건은 수사착수부터가 유감이다.…

이를 악문 검찰은 9억원 중 수표 1억원이 한 전 총리 동생의 전세금으로 사용된 증거를 찾아내며 상황을 반전시키는데 성공한다. 이번에 대법원이 유죄 판단에 결정적인 직접 증거라고 평가한 부분이다. 그 해 6월 16일 이 사실이 본보에 보도되자 검찰 최고 수뇌부는 기자에게 비공개 면담을 요구했다. 취재원을 알려달라는 부탁이었는데, 당시 비주류에 속한 그가 수사와 지휘라인을 믿기 힘들어 하는 모습이 그대로 전해져 왔다. 검찰 내부에서 정치적 계산을 달리하는 이들이 수사정보를 쥐고 흔들던, 정치 검찰의 단면이기도 했다. 그는 몰랐겠지만 사실 1억원 수표의 피의사실은 이미 보수 언론에 흘러가 있었다. 이렇게 진행된 2차 수사는 기소까지 4개월이 걸렸고, 사법부의 최종 판단은 5년을 기다려야 했다.

사건에는 그 시대 텍스트가 투영되어 있다. 한명숙 사건에도 이 시대 검찰수사, 정치인 금품수수, 사법부 판단 같은 텍스트가 담겨 있다. 한 전 총리가 돈을 받았을 지에 초점을 둔다면 그도 돈이 없는 정치인인 이상 어떤 돈을 받았을 것으로 보는 게 타당하다. 하지만 어떤 돈을 받았다고 해서 그가 유죄이냐는 별개 문제다. 유죄는 법정에서 위법 사실이 적법한 절차로 확인되고 법리적으로 인정되어야만 하는 사안인 때문이다. 한 전 총리의 유죄가 대법원에서 최종 선고되고도 뒤가 개운치 않은 것은 그런 데에, 특히 수사과정에 문제가 있는 탓이다.”(한국일보 8월 24일자 편집국에서 ‘한명숙 사건에 유감 있다’▶전문 보기)

구치소로 들어가고 있는 한명숙 전 총리. 홍인기기자 hongik@hankookilbo.com

“대여금반환소송을 보면, 소를 제기한 원고 측은 빌려준 돈이라고 하고 소송을 당한 피고 측은 그냥 증여로 받은 돈이라고 주장하곤 한다. 법률적으로는 특별한 경우가 아닌 한 금원이 건네진 경우 대여관계가 있었던 것으로 본다. 고용주와 노동자의 관계도 아니고, 부부 사이도 아니고, 용돈을 주는 관계도 아닌데 성인끼리 돈이 오갔다. 그렇다면 그냥 줄 리는 없고 빌려준 것이라 보는 것이 상식에 맞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치인들은 반대다. 그들은 반대로 기업가들로부터 돈을 받아도 “(대여관계에 따라) 빌린 돈”이라고 주장한다. 반환 의식이 유독 투철해서일까? 그런데 그렇게 급전이 필요했다면 금융권에서 빌리면 되지 왜 굳이 기업가들로부터 돈을 빌려 의심을 사는지 참으로 알 수가 없다.

답은 간단하다. 첫째 정말 빌린 것일 수 있다. 둘째 받았는데, 양형을 줄이고 싶다. 대체로 둘째의 경우일 것이다. 오해해서는 안될 게 있다. 대여라고 해서 모두 죄가 없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대여라고 하더라도 이자를 받지 않은 무상대여의 경우, 이자 상당의 금전적 이익을 제공한 것으로 보아 역시 뇌물죄든 정치자금법위반이든 죄는 성립한다. 다만 증여(뇌물에서는 공여라는 표현이 더 맞다)보다 형이 훨씬 더 가벼울 뿐이다.…

한명숙 전 의원 사례에서는 “줬다”라는 진술이 있었다. 비록 법원에서 그 진술이 바뀌기는 했지만 줬다는 사람이 검찰에서 또렷한 기억력으로 구체적인 진술을 했다는 것이 이병선 시장 사건과의 가장 큰 차이였다. 반면 이병선 시장 사건은 준 사람이 빌려준 것이라 진술하니 명백한 증거가 없었다. 두 사건 모두 변호사들이 무척이나 힘들었을 듯하다. 내 의뢰인들의 말을 믿고는 싶은데 그 흔한 차용증도 없고 이자도 갚은 적 없으니 이 얼마나 막막한가. 하여 정치인들께 조언을 드린다. 정말 돈이 필요하면 금융권을 통해 대출 받는 게 좋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정말 어쩔 수 없이 사업가한테 돈을 받았고 이를 “대여”라고 주장하고 싶다면 꼭 차용증을 써라. 그 후 원금까지는 아니라도 이자라도 틈틈이 갚아라. 그래야 변호사도 양심에 반하지 않고 변호해 줄 수 있다.”(한국일보닷컴 브런치N스토리 칼럼 임윤선의 누드로(Law) ‘대여인가 증여인가 그것이 문제로다’▶전문 보기)

김범수기자 bs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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