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으로 세상읽기] 8월 25일

남북 정전 이후 일촉즉발의 한반도 위기상황을 불렀던 첫 사건은 1976년 8월 18일 판문점 도끼 만행이다. 이날 유엔사령부 소속 미군 대위가 지휘하는 유엔사 작업반이 열흘 남짓 전 북한의 경고를 무시하고 초계 시야를 막는 미루나무 가지치기 작업을 하자 몰려든 북한군이 집단 구타에다 도끼를 휘두르며 덤벼들어 난투극이 벌어졌다. 결국 머리를 다친 미군 장교 2명이 후송 중 숨지고 한국군과 미군 장병 9명이 부상했다.

“원수 미제”를 겨냥한 도끼 만행에 깜짝 놀란 미군은 바로 주한미군의 전투태세를 강화했다. 오키나와의 미군 전투기를 한국으로 재배치했고 미 본토의 전폭기를 한반도로 이동시켰다. 군에는 탄약지급 전단계로 전군의 휴가와 외출을 금지하는 ‘데프콘-3’를 발령했다. 북한도 가만 있지 않았다. 인민군 최고사령관 김일성 명의로 모든 정규군과 예비군 병력에 전투태세 돌입을 하달했다.

그런데 사태는 긴박한 분위기에 비해서는 다소 싱겁게 끝났다. 사흘 뒤 연합사는 문제가 된 미루나무 제거 군사작전을 실시했고(이때 박정희 대통령은 무장을 하지 말고 참여해달라는 연합사의 주문을 무시하고 크레모어와 M16 소총을 든 보복팀을 꾸려 근처 북한 초소를 때려부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일성은 인민군 최고사령관 이름으로 사과문을 보내왔다. 양측이 아예 만나지도 않았고 나흘 낮밤 회담을 하지도 않았다.

1976년 한반도를 위기상황에 몰아넣었던 북한의 판문점 만행을 그린 영화 '판문점 도끼살인 (Murder With Ax In Pan Moon Jeom)'의 한 장면. 한국일보 자료사진

지뢰사건으로 촉발된 남북 충돌 위기가 다행히 수습되고 있다. 8ㆍ18 도끼만행사건을 끄집어낸 건 남북이 이미 40년 가까이 이런 충돌과 화해를 반복하고 있다는 것을 상기하기 위해서다. 중요한 것은 이번 위기를 넘겼다고 안도하는 것이 아니다. 다시 이런 위기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 것이다.

“이번 사태의 전개과정을 지켜보면서 개인적으로는 김정은이 만만치 않은 상대라는 느낌을 받았다. 북측이 지뢰도발에 대한 우리군의 보복 조치인 대북 확성기 방송을 중단하지 않으면 군사행동을 개시하겠다는 최후통첩을 보내왔을 때만 해도 변덕스럽고 물불 안 가린다는 김정은이 무슨 짓을 감행할지 우려가 앞섰다. 하지만 결과는 남북간에 일찍이 없었던‘2+2 고위급 접촉’이다. 군사적 위기를 최고조로 끌어올린 다음 협상 테이블을 이끌어 낸 셈이다. 여기까지만 보면 일단 김정은의 승부수가 통한 게 아닌가 싶다.

문제는 여기서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느냐다. 이번 사태 배경을 놓고 북한이 내달 3일의 전승절 잔치를 앞두고 있는 중국을 겨냥했다거나, 결국 중국의 압력으로 남한과의 대화에 응했느니 하는 분석들이 구구하다. 하지만 이번 사태의 핵심은 이른바 북한의‘최고존엄’문제라고 생각한다.

그 동안 탈북자 단체의 대북전단 살포나 북한주민 인권문제, 공포통치 등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언급이 있을 때마다 북한은 최고존엄을 모독했다며 격렬하게 반발해왔다. 갖은 수단을 동원한 보복도 다짐했는데 말대로라면 최고존엄을 모독한 청와대와 관련 단체, 언론사는 벌써 초토화되고도 남았다. 이번 사태 발단이 된 비무장지대 지뢰도발도 북측이 무수히 공언해온 보복과 무관하지 않다고 봐야 한다. 결과적으로는 우리군의 대대적인 대북 심리전 방송 재개를 초래함으로써 되로 주고 말로 되돌려 받은 꼴이 됐지만. 김정은 체제에 대한 분명한 인정, 즉 최고존엄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이번 2+2고위급 접촉에서 어떤 합의가 이뤄진다 해도 잠정적인 봉합에 그칠 수밖에 없다. 북 도발의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는 도발의 근본 배경인 최고존엄 문제를 해결하고 가야 한다는 얘기다.”(한국일보 8월 25일자 이계성 칼럼 ‘미쳤거나 천재거나’▶전문 보기)

“역대 보수정권이 북한 붕괴론에 매달린 결과는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그대로다. 휴전선과 서해상에서는 군사적 긴장이 계속되면서 크고 작은 충돌이 끊이지 않고, 남북관계는 한 치도 나아가지 못한 채 소모적인 공방만 거듭하고 있다. 물론 북한이란 상대방이 있는 문제이긴 하지만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와 비교해보면 남북관계 악화의 근본 원인이 무엇인지 드러난다. 경색된 남북관계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북한 붕괴론부터 포기해야 한다. 북한은 결코 동독이나 소련처럼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남북한과 동서독은 역사적 경험이나 국제정치학적 조건이 전혀 다르다. 북한의 경제 사정도 최악을 벗어나고 있고, 북한 주민들의 일상생활 수준도 나아지고 있다는 게 대체적인 평이다.

군사력을 동원해 북한을 붕괴시킨다는 건 더욱 불가능하다. 우리는 이미 6·25전쟁을 통해 어느 한 체제가 다른 체제를 무력으로 굴복시킨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걸 경험했다. 남북한 합쳐 100만명이 넘는 희생을 치르고서야 얻은 교훈이다. 우리가 아무리 군사력이 북한보다 우세하다고 해도 전쟁을 통한 통일은 불가능할 뿐 아니라 두 나라 모두에 재앙이다. 현재 북한의 경제 수준은 국민총소득(GNI) 기준으로 남한의 40분의 1도 안 될 정도로 아주 열악한 상태다. 이런 상태에서 통일이 된다면 우리 경제가 북한을 감당할 수가 없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보면 현재 상태로의 북한 붕괴는 결코 바람직하지도 않다.”(한겨레신문 8월 25일자 정석구 칼럼 ‘북한 붕괴론을 넘어 더 큰 진전 이루길’▶전문 보기)

북한의 포격도발로 인한 대치상황과 관련해 남북 고위급 접촉에서 역사적인 타결을 한 25일 새벽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우리측 대표 김관진(오른쪽)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홍용표 통일부 장관과 북측 대표 황병서(왼쪽) 조선인민군 총정치국장, 김양건 노동당 대남비서가 악수를 하고 있다. 통일부 제공

“지난달, 쿠바 아바나에 미국 성조기가 게양됨으로써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의 시대는 끝났다. 정부 청사에 게양된 미국 국기를 바라보는 늙은 혁명가 카스트로의 마음엔 만감이 교차되었을 것이다. 미국 사회학자 대니얼 벨이 50년대 말에 이미 선언한 ‘이데올로기 종언’이 쿠바에서조차 조용히 실행되는 이 ‘화해의 시대’에 고사포와 자주포의 위협 발사, 연평도 포격, 천안함 폭침에다 삐라 살포와 확성기 시비 같은 구시대의 낡은 필름이 돌아가는 한반도는 도대체 ‘야만의 시대’로 귀환하고 싶어 안달하는 듯 보인다. 우리 국방장관이 확성기를 계속 틀겠다는 것이나, 저쪽 장성이 총력전 엄포를 놓는 것이나 다 우스꽝스러운 무기놀이인데 인류 역사에 최첨단 정보화시대를 개척하는 한국의 위상을 생각하면 마치 고구려 고적 답사를 하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 남한이든, 북한이든 재래식 통일 마인드를 전면 구조조정해야 한다. 구조조정이 어찌 대학과 기업에만 적용되랴. 기싸움의 구조조정, 남북 주민을 위한다면 좀 더 세련된 방식으로, 좀 더 고차원의 마인드로 바꿀 수는 없을까? 부자와 빈자의 싸움, 열린 자와 닫힌 자의 싸움엔 이데올로기가 소용없다. 부자가 양보하고, 열린 자가 포용하는 게 제일이다. ‘더 당할 수 없다’는 게 남한 주민의 일반적 정서이겠지만, 강성대국에 무력전에만 매진하는 저 돌연변이 북한 정권을 살살 구슬리는 일에 우리가 얼마나 인내심을 보였는지를 이 시점에서 돌아볼 필요는 있다.”(중앙일보 8월 25일자 송호근 칼럼 ‘기싸움의 구조조정’▶전문 보기)

김범수기자 bs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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