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으로 세상읽기] 8월 21일

“항일전쟁은 중국 인민이 일본 제국주의 침략에 맞선 정의의 전쟁이다. 신중국 건설의 중요한 기초가 됐고 세계인들의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에도 큰 공헌을 했다. 전인대가 입법 형식으로 항일전쟁승리 기념일을 제정키로 한 것은 인민의 의지를 반영해 역사를 기록하고 과거를 잊지 않음으로써 평화를 소중히 여기고 미래를 열어나가려는 뜻이 담겨 있다.”(리스스(李适時) 중국 전인대 법제업무위 주임)

중국이 항일전쟁 승리를 기념해 지난해 전승기념일을 지정하고 9월 3일 첫 기념식을 갖는다. 전후 70주년에 맞춰 주요국 정상을 초청해 열병식까지 갖는다. 박근혜 대통령도 초대 받아 손님으로 참석하기로 했다.

2차 대전에 연합국으로 손 잡았던 여러 나라들은 저마다 전승일을 기린다. 그런데 유럽에서는 독일의 항복이 5월 8일(시차 때문에 러시아의 경우 5월 9일)이었기 때문에 일제히 이 날을 전승일로 정해 기념행사를 열었다. 아시아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일본의 항복은 이보다 늦었다. 히로히토 천황이 방송으로 항복을 공표한 것은 8월 15일 정오였고, 중국이 일본의 항복 문서를 받은 것은 9월 2일이었다. 중국이 9월 3일을 전승기념일로 정한 것은 이 항복 문서 접수일을 기준으로 삼은 것이다.

9월 3일 전승절 70주년 열병식을 앞두고 톈안먼 광장에 각종 조형물이 설치중인 가운데 20일 톈안먼 고아장을 찾은 관광객들이 조형물 앞을 지나가고 있다. UPI 연합뉴스

그런데 중국이 뒤늦게 전승절을 정해 국제행사화하는 것이 왠지 껄끄럽다. 경제 성장과 군사력 확대를 배경으로 아시아 패권을 노골화하는 상황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과거 일본 제국주의와 지금 아베의 재무장화 움직임은 중국이 아시아 강대국으로 발돋움하는 좋은 핑계거리가 되고 있다. 일본의 재무장은 문제이지만, 사실 더 큰 문제는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중국이 영토분쟁을 불사하며 지역 패권국 지위를 굳히려고 애쓰는 것이다. 중국의 전승기념일 열병식은 세계 평화와 안전을 위한 의지를 다지는 자리라기보다 자칫 약소국을 힘으로 억압할 수 있는 군사력 과시장으로 비친다.

한국은 경제도, 외교안보도 샌드위치 신세라고들 한다. 그런데 중국이 전승기념일을 정해 이것을 국제행사로 진행하는 것을 보면서, 지난 세계 대전이 한국에게 명분으로도, 실질로도 좋은 외교의 기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한중일만 놓고 보면, 일본은 전쟁 도발국이어서 이런 날을 기념할 주체가 될 수가 없고, 중국은 과거 일본을 연상하게 하는 패권욕을 의심 받고 있어 국제사회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기 어렵다. 결국 전쟁과 식민지 지배를 종식한 이 날을 대대적으로 기념하기 적합한 나라는 한국이다.

그런데 우리가 기념일로 삼는 8월 15일은 ‘광복절’이다. 이 용어는 문학적이긴 하지만 주체가 분명하지 않아 힘이 없고, 국제적인 호소력도 없다. 식민지배 아래서 임시정부를, 광복군을 조직해 싸워놓고 왜 이겼다는 의미를 담지 못하는 걸까. 한 발 더 나아가 제국주의 세력을 물리쳐 정의와 평화를 되찾았다는 메시지를 이야기하지 못하는 걸까. 이 날을 우리의 독립을 기리는 국내행사로 축하하고 말 일이 아니라 힘으로 약소국을 굴복시킨 패권국가를 물리친 승리의 날로, 앞으로도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다짐하는 날로 삼아 미국을, 일본을, 중국을, 그리고 동남아 각국 정상을 서울로 초대하면 어떨까. 그런 발상의 전환으로 강소국 한국 외교의 새로운 지평을 개척해나갈 수 있지 않을까. 8월 15일은 그냥 광복절이 아니다. 건국절은 더더욱 아니다. 전쟁을 그치고 세계가 평화를 되찾은 날이다.

“한국 대통령이 일제와 싸워 이긴 전승절 행사에 손님으로 참석해야 하나? 독일이 ‘독소 불가침조약’을 깨고 러시아를 침공한 것은 1941년 6월 22일이었다. 러시아는 나치 독일과 불과 4년 정도 싸웠다. 중국은 어떤가? 본격적인 중일전쟁은 1937년 7월 7일이니 중국은 일제와 8년 동안 싸웠다. ‘9·18 사변’, 즉 일제가 만주를 도발한 1931년 9월 18일의 만주사변을 기점으로 잡으면 14년 동안 싸웠다.

한국은 어떤가? 일제의 정규군과 한국민들이 처음 싸운 것은 1894년 갑오년이었다. 동학농민혁명군과 일제 정규군이 맞붙었는데, 아무리 적게 잡아도 수만 명 이상이 전사하거나 학살당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 이듬해인 1895년 을미년에는 의병들이 일제 정규군과 맞서 싸웠다. 이때도 정확한 통계가 없지만 역시 적게 잡아도 수만 명 이상이 전사한 것으로 추정한다. 그러니 갑오전쟁부터 계산하면 우리는 일제와 51년간 전쟁을 치렀다. 일제가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강탈한 1905년부터 따지면 40년, 군사적으로 완전히 점령당한 1910년부터는 만 35년을 싸웠다. 러시아의 4년이나 중국의 8년, 혹은 14년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장구한 세월이었다.…

사실 미국은 한국과 중국을 비롯한 여러 참전국을 대표해 일제의 항복서명을 받았던 것이다. 그런데 일제와 가장 오랫동안 가장 치열하게 싸웠던 대한민국은 남의 나라 승전절 행사에 초대 받고 참석 여부를 고민해야 하는 ‘손님’으로 전락했다. “나는 적성(赤誠)으로 조국의 독립과 자유를 회복하기 위하야…적국의 수괴를 도륙하기로 맹서하나이다”라는 선서문과 함께 적국의 수괴인 일왕 히로히토에게 폭탄을 던졌다가 사형당한 이봉창 의사의 항전 정신을 생각해도 대한민국은 전승절 행사의 주인이지 객(客)일 수 없다.”(한국일보 8월 14일자 이덕일의 천고사설 ‘전승절은 남들의 잔치인가?’▶전문 보기)

박근혜 대통령. 연합뉴스

“박근혜 대통령도 남북 관계를 개선할 의지가 있다고 하면서도 남북 관계 개선을 방해할 발언을 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통일준비위원회 회의에서 내년에라도 북한이 붕괴될 사태에 대비하라는, 대통령으로선 해서는 안 될 말을 했다. 2012년 이명박 대통령이 아랍의 봄을 보고 북한체제의 붕괴는 시간문제라는 말을 공개적으로 하고 다닌 오류의 반복이다. 개탄스럽다. 1870~1871년 비스마르크 아래서 프러시아-프랑스 전쟁을 탁월한 전략으로 지휘해 독일 통일에 절대적인 기여를 한 전설적인 전략가 헬무트 몰트케는 “정치가가 하는 말은 모두 진실이어야 하지만 모든 진실을 다 말해서는 안 된다”는 유명한 경구(Maxim)를 남겼다. 패러디 하면 “정치가가 하는 말은 모두 사실이어야 하지만, 모든 사실을 다 말해서는 안 된다”가 된다. 몰트케의 충고와 상관없이 북한 붕괴 임박이 사실인지도 확실치 않다.

동북아 정세가 한국을 딜레마에 빠트리고 외교적으로 고립시키고 있다는 것은 말 안 해도 다 안다. 문제는 어떻게 할 것인가다. 어떻게 이 고립에서 벗어나 위기를 기회로 만들 것인가다. 결국 답은 대미·대일·대중 실용주의 자주외교로 환원된다.…한미 동맹이 한국 안보의 근간이지만 미국 눈치를 너무 본다. 9월 3일 중국 전승절에 가는데 미국의 암묵적 양해를 구하는 것은 시대착오적 굴종외교다. 북한 견제에 중국의 역할은 필수적이다. 언젠가 있을 통일외교에도 마찬가지다. 박 대통령은 전승절에 가서 군사 퍼레이드까지 참관하는 걸 주저할 필요 없다. 한국은 견실한 중견국가로 주변 강대국 파워게임의 균형추다. 이제 넓은 동북아를 시야에 두고 이 지역 유일한 중견국가로 ‘균형추의 힘’을 이용해 동북아 평화를 견인하면서 남북 문제에 접근할 수 있다. 미국은 한국을 중국 포위망에 편입시키려고 한·미·일 3각 안보체제에 들어오라, 사드를 받으라, 미사일 방어(MD)망에 참가하라고 압박하지만 판단은 철두철미 ‘한국 것’이어야 한다.”(중앙일보 8월 21일자 김영희 칼럼 ‘한국의 외교적 결정은 “한국 것”이어야’▶전문 보기)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安美經中)’이라는 이중 플레이가 현실적으로 어려운 시점에 우리는 이 둘 중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조셉 나이 하버드대 교수가 최근 출간한 ‘미국의 세기는 끝났는가?’는 중요한 단서를 담고 있다. 나이 교수는 41년 이후 지금까지 ‘미국의 세기’는 지속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중국·일본·인도·유럽을 포함해 어느 누구도 향후 수십 년간 미국을 능가할 수 없으리라는 것이다. 이는 군사력과 경제력은 물론 소프트파워 역시 마찬가지지만 결코 패권적 우위는 아니라고 그는 말한다. 미국은 그간 세계 수준의 세력균형과 공공재를 창출하는 과정에서 중심적 역할을 수행했지만 세계질서를 좌지우지하는 ‘팍스 아메리카나’의 위상을 누린 적은 없었다는 견해다. 심지어 세계경제의 50%를 차지했던 50년대에도 반쪽 헤게모니만을 누렸을 뿐이라는 것이다.

나이 교수는 또한 21세기 들어 미국의 영향력 행사에는 기본적 한계가 있다고 판단한다. 중국을 포함한 여러 나라들의 국력이 크게 신장했을 뿐 아니라 국제사회의 작동원리가 복잡다단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정파성에 휘둘리는 워싱턴 국내 정치의 난맥상 역시 미국의 국력 전환(power conversion) 능력을 현저히 저해하고 있다고 그는 우려한다. 안과 밖의 여러 한계를 따져보면 미국 홀로 국제 현안들을 좌우할 수는 없으리라는 것이다. 다른 나라들과 함께 지혜를 모아 가며 지구촌의 주요 문제를 공동으로 해결해 나가야 한다는 결론이다.

나이 교수가 주는 교훈은 명료하다. 중국 편승을 논하기에는 미국의 국력이 아직 건재하고, 거꾸로 미국이라는 바구니에 모든 것을 담기에는 그들의 스마트 파워에 한계가 있다. 결국 우리의 길을 가야 한다. 국익과 보편적 이익의 조화 속에서 ‘의연하게’ 미중 양국과의 관계를 설정하고 이들과 더불어 문제 해결의 창의적 지혜를 주도적으로 찾아야 할 것이다.”(중앙일보 4월 6일자 중앙시평 ‘미ㆍ중 ‘샌드위치’ 딜레마에서 벗어나려면’▶전문 보기)

김범수기자 bs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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