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으로 세상읽기] 8월 20일

“질투하는 대신 선망하라. 타인의 성취를 인정하라. 설령 그의 성공에 문제가 많아 보일지라도 그대는 오히려 그에게서 존중할 만한 점을 애써 찾아, 그것을 배워라. 한껏 부러워해라. 그래야 이길 수 있다. 다른 사람의 성취를 보고도 부러워하지 않는다면, 그게 오히려 지는 것이다.”(‘아프니까 청춘이다’ 중에서)

그럴듯해 보인다. ‘성공에 문제가 많아 보일지라도’가 걸리긴 하지만 300만부 넘게 팔린 책이니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의 메시지에서 용기를 얻고 희망을 내다보려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아무리 책을 읽고 마음 다잡고 헤쳐가려 해도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고 많은 청년들이 말한다. 현실이 바뀌지 않는 한 이런 미사여구는 공염불에 불과하다. 아파도 그냥 견디라는 희생에 대한 강요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청년들은 어떤 현실을, 어떤 미래를 원할까. 당장 취직 좀 잘 됐으면 한다. 어쨌든 경제가 잘 돼야 한다. 하지만 이들의 가슴에 더 깊고 예리한 상처를 남기는 건 ‘문제 있는 성공’이 반복되는 사회다. 경제 살리기보다 기회 균등한 사회 만들기가 먼저다.

신상순 선임기자 ssshin@hk.co.kr

““딸이 대학 내내 A학점을 받았는데 취업이 쉽게 되지 않았다.”한 야당의원의 ‘취업청탁 전화’가 논란이 됐습니다. 로스쿨을 졸업한 딸의 취업을 위해 대기업에 청탁을 넣었다지요. 의원은 사과했고. 채용은 없던 일이 됐습니다. 다른 여당의원 아들의 취업도 문제가 됐습니다. 정부기관이 채용기준까지 바꿔가면서 국회의원 자녀를 경력변호사로 채용했다는 의혹입니다…한국사회에서 힘깨나 쓰는 부모들은 그 위세가 생각보다 대단합니다. 특히 자식들의 학력과 취업 앞에서는 말입니다. 이름난 법무법인들이 이른바 ‘고관대작’의 자녀들을 우선적으로 영입하고 있다는 이야기. 들어보셨는지요. 얼마 전 한 국내 최대 로펌은 유능한 자원이라며 서둘러 채용했던 한 로스쿨 학생이 변호사 시험에 통과하지 못해 뉴스가 되기도 했습니다. 논란의 당사자는 한 국립대학 총장의 딸이었습니다. 서울대 입학생 중 특목고 출신은 40%가 넘고 강남 3구 출신은 넷 중 하나…. 여기에 서울대 로스쿨 입학생의 88%는 이른바 스카이라고 불리우는 소위 명문대 출신이라는 자료들은 이제는 듣기에도 지겨운 얘기가 돼버렸습니다.

“돈도 없고 빽도 없고 악다구니도 못 쓰는 사람은 그러면 어떻게 해야 돼?” 장강명의 소설 ‘한국이 싫어서’에 등장하는 젊은이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들은 도통 답이 나오지 않는 이 땅. 한국을 떠나고자 하지요. 부모의 지위에 따라 어쩌면 태어나기도 전부터 격차가 존재하는 것이라면…. 과거 신분의 벽을 넘지 못해 산으로 갔던 홍길동의 시대와 일상의 소소한 행복조차 찾지 못해 조국을 떠나겠다는 지금의 젊은이들의 시대가 무엇이 다른가…. 그리고 지금도 누군가에게 “잘 부탁드린다”는 청탁조차 할 곳 없이 그저 속만 끓이고 있을 이 땅의 성실한 부모들은…. 현관문 열리는 소리에 부스스한 얼굴… 아들, 밥은 먹었느냐(이설아 ‘엄마로 산다는 것은’) 그저 미안한 눈으로 자식들을 바라볼 뿐입니다.”(JTBC 뉴스룸 8월 17일 앵커브리핑 ‘‘아들, 밥은 먹었느냐’…힘 없는 아버지의 심정’▶동영상 보기)

“아들 녀석은 수술을 받고 일주일 뒤 부대로 돌아갈 것이다. 석 달 동안 인대 파열을 모른 채 물파스와 진통제만 준 군대를 원망할 생각은 없다. 사비(私費)로 댄 수백만원의 MRI와 수술 비용도 전혀 아깝지 않다. 무조건 “참아라”고 윽박지른 못난 아빠가 미안할 따름이다. 부디 병역을 마치고 무사히 돌아오길 바랄 뿐이다. 어쩌면 이 땅의 평범한 가정은 똑같은 심정일 것이다. 군에서 고장 난 아들을 다시 고쳐서라도 국가에 갖다 바치는 게 당연한 일이라 믿는다. 높은 나라 분들이 이 정도의 AS는 이 땅의 ‘의무’라고 하니까….  솔직히 나는 이완구 총리 후보자(이하 경칭 생략)가 부럽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다. 부러운 건 ‘신(神)의 가족’이기 때문이다. 본인은 ‘부주상골’로 입영 1년 만에 육군 일병으로 소집 해제됐다. 차남은 유학 중 축구를 하다 무릎전방십자인대가 파열돼 병역이 면제됐다. 둘 다 무시무시한 질병이었을 것으로 믿고 싶다. 또한 부끄러운 이유는 이 땅에 그만큼 인재가 없기 때문이다. 대통령 수첩에는 하자(瑕疵) 있는 인물만 넘쳐난다. 1년1개월 만에 소집해제된 인사는 이완구뿐 아니다. 최경환·문형표·윤병세·김진태·안종범 등 수두룩하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도 마찬가지다. 현 정부 각료의 병역면제와 대체복무 비율은 무려 50%다. 그 아들들 또한 만성 폐쇄성, 수핵탈출증, 사구체신염 등으로 병역면제가 흔하디 흔하다. 하기야 정신병으로 군대 안 간 인사가 검찰 핵심간부로 수사를 총지휘한 웃기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야당에는 ‘학생운동-병역면제’를 훈장처럼 여기는 의원이 숱하다.…‘책임 총리’에 앞서 ‘(병역) 책임을 다한 총리’부터 보고 싶다. 얼마 전 해안 초소 병사가 숨졌고 어제는 한 병사가 어머니를 살해했다. 눈물 나게 슬픈 나날들이다.”(중앙일보 1월 27일자 이철호의 시시각각 ‘나는 이완구 총리에 공감 못한다’▶전문 보기)

“젊은 세대는 기성세대의 “그래도, 그 시절이 좋았다”는 말을 싫어한다. 때론 혐오하기도 한다. 그런 젊은 세대에게 “어제가 없었다면 오늘도 없을 것”이라는 훈계는 고리타분하다. ‘꼰대’라는 비아냥을 듣기 십상이다. 기성세대들이 추억하는 ‘그 시절’은 젊은 세대에겐 “그래도, 지금보다는 나은 시절”일 수 있다. 젊은 세대들은 과거에 기대 현재를 해석하거나 비교하는 것에 진저리를 친다. 그런 그들을 ‘철딱서니 없는 청춘들’로 힐난해선 곤란하다. 젊은 세대들은 1970~1980년대만 해도 대학졸업장만 있으면 취업은 일도 아니었던 기성세대가 겪은 ‘그 시절’을 함께 추억하거나 공감할 여유가 없다. 숨조이는 경쟁만이 존재하는 ‘지금 이 순간’을 살아내는 것조차 버겁기 때문이다.…

출구를 찾지 못하고, 주눅 들고 좌절하는 청춘들을 한 일간지는 ‘달관세대’로 칭했다.…‘달관세대’는 정규직 취업이 어려우니 비정규직으로 적게 벌고, 적게 쓰는 게 낫다고 여기는 세대라고 한다. 청춘들이 세상에 달관하고, 안분지족(安分知足)의 깨달음을 얻었다니, 느닷없고 황당하다. 발버둥치며 기를 쓰고 해 봤자 안되니 분수를 알고, 초탈하며 살라는 얘기인가. 달관은 ‘포기’의 또 다른 표현이다. 도전, 열정, 패기 대신 ‘포기’를 강요하는 ‘달관세대’라는 신조어는 100만부 넘게 팔린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책 제목보다 더 지독한 청춘에 대한 악담(惡談)일 수 있다. ‘불안하고, 막막하고, 흔들리고, 외로우니 청춘이고, 아프니까 청춘이니’ 참아야 한다는 뜨악한 논리보다 젊은 세대에게 더 깊은 생채기를 남길 수 있는 악담인 것이다.”(경향신문 3월 19일자 정동에서 ‘청춘 악담’▶전문 보기)

“청년들이 제 나라를 ‘헬 조선’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오늘 한국이 청년들에게만 지옥은 아니지만, 청년들에게 지옥인 건 분명한 사실이다.…기성세대는 청년 현실을 해결해주지 않는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따위의 막되어 먹은 태도를 보이든 짐짓 미안해하는 얼굴을 하든 다를 건 없다. 마찬가지로 기성세대를 ‘아프면 환자지 개XX야’라고 욕하든 ‘개념 아저씨’라 칭찬하든 달라지는 건 없다. 현실은 변화하지 않는다. 현실의 변화는 오로지 청년들 스스로 일어날 때, 헬 조선을 때려 부수려고 일어날 때 시작된다. 권정생은 그 지점에 의미 있는 교훈을 준다. 현재의 세상을 수용하며 그 안에서 더 나은 삶을 살아보려 애쓰는 사람과, 다른 세상을 꿈꾸며 제 삶에서 꿈꾸는 세상의 편린들을 구현해내려 애쓰는 사람은 전혀 다른 삶의 힘을 갖는다는 교훈을.

현재 세상을 수용하는 한 현재 세상을 바꿀 수 없다. 하소연과 아우성은 기껏해야 동정과 무마 시도로 돌아올 뿐이다. 비정규직의 피폐한 삶을 외치고 최저임금 1만원의 당위성을 외쳐도 체제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천연덕스럽게 비정규직을 늘리고 최저임금 동결안을 내놓는다. 청년들이 현재 세상을 더 이상 수용하지 않을 때, ‘나는 다른 세상을 원한다’고 선언하며 싸움을 시작할 때 비로소 변화가 시작된다. 체제의 지배자들 얼굴에 불길한 징조와 공포가 드리워진다. 전쟁이 시작된다.”(경향신문 8월 4일자 김규항의 혁명은 안단테로 ‘청년 전쟁’▶전문 보기)

“곰곰 생각해보니, 우리 세대는 공허한 위로는 건넸을망정 한 번도 너희 세대에게 사과하지 않았구나. 나는 1980년대에 대학을 다녔으니 소위 486세대다. 민주화라는 역사에 편승해서 그 과실을 모두 향유했던 운 좋은 세대지. 누구나 쉽게 취업해 괜찮은 연봉을 받았고, 노동조합으로부터 많은 혜택을 누리면서도 이를 비판하는 위선도 떨었다. 독재만 타도되면 되는 줄 알고, '좋은 민주주의'가 무엇인지는 제대로 고민하지 못했어. 독재의 트라우마 때문인지 시장은 꽤 괜찮은 것이라 믿었고, 그 무지로 인해 결국 천박한 시장주의가 판치도록 방치하고 말았어. 능력도 패기도 우리보다 출중한 너희 세대에게 괜찮은 일자리 하나 제대로 못 주는 허약한 경제를 만든 책임은 우리세대에게 있다.

더 큰 잘못은 우리사회의 정신이 부박해져감에도 바로잡지 못한 것이다. 어린 시절 국민교육헌장을 달달 외우며 나라의 융성이 나의 발전의 근본이라 배웠던 우리는, 국가가 우리를 인재로 호명하며 경제성장을 위한 인적자원으로 개조할 때, 그저 아무 생각 없이 따라가기만 했다. 성장은 인적자원인 내가 잘나서 이룩된 것인 줄 알았고, 그 과실을 맘껏 소비하는 게 자유이자 선(善)인줄 착각했다. 국가의 자리를 자본이 대신한 지금에도 ‘자기계발형 인간’이 되길 강요하는 엇비슷한 이데올로기는 여전하다. 자기계발의 본래 가치마저 부정할 수야 없지. 그러나 자본에 의해 제조된 자기계발형 인간은 목적을 상실한 이기적 주체일 뿐이며, 자본에 의해 늘 이용당하는 객체란 사실을 이제야 겨우 눈치 챘다.…

지금의 곤란을 타개하려면 함께 해야 한다. 그때만이 우리 세대의 실패가 자산이 되고 너희 세대의 열정과 창의가 원동력이 될 수 있어. ‘이젠 무엇을 해야 할지’라는 네 질문에 대한 답도 그때 비로소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한 가지 당부는, 지난 대선 과정에서 너희 세대가 보여준 ‘정치적 주체’로 거듭날 수 있는 가능성을 더욱 넓혔으면 좋겠다. 새 정치를 만들지 않고서는 전망과 대안을 찾기가 쉽지 않을 테니까. 졸업을 앞두고 상심한 네게 선생이랍시고 건네는 말이 고작 ‘미안하다’는 말이구나. 그러나 약속하마. 다음엔 꼭 전망과 대안을 담은 편지를 보낼 수 있도록 노력할게. 그때까지 졸업 축하 인사는 미뤄야 할 것 같다.”(한국일보 2013년 2월 8일자 아침을 열며 ‘졸업을 앞둔 제자 K에게’▶전문 보기)

김범수기자 bs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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