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도 촌기자 앞치마 두르다] 16

“이러려면 요리 하지 말아요!”

그날은 7월 말의 어느 평일 아침으로 기억된다. 이 방 저 방에서 휴대전화 기상 알람이 마구 울린 후 새벽형 인간인 아내가 먼저 눈을 떴다. 좀 있으니 주방에서 쿵쾅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설거지 소리였다. 평소와 달리 소음도가 높아 방문을 닫으라고 했더니 날아온 말이었다.

결국 그날이 왔다. 어렵사리 손에 넣은 주방을 한 순간에 빼앗겼다. 자다가 새벽에 당한 일이라 반격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요리의 완성은 설거지”라고 외치던 아내는 불량한 설거지 상태를 트집잡아 새벽녘 미명을 틈타 주방 친위쿠데타를 감행한 것이다. 그리고는 내가 만들어놓은 주방 구조를 한 순간에 자신의 방식으로 개조했다.

내가 주방을 장악한 것은 3월 초 요리를 배우기 시작하면서였다. “내 주방을 어지럽히지 마라”고 한 마디 호기롭게 뱉고는 가장 먼저 아내에게 접근금지 조치를 내렸다. 다음에는 요리학원처럼 200cc 정도의 컵에 소금과 설탕, 고춧가루, 깨소금, 국간장, 양조간장, 참기름 등을 잔뜩 담아놓고 언제든지 손쉽게 양념할 수 있도록 배치했다.

3월초 쿠데타를 일으킨 나의 주방과 7월말 친위쿠데타를 감행한 아내의 주방. 잡탕 스타일인 나는 온갖 양념통을 다 꺼내놨고, 깔끔 스타일인 아내는 말끔한 주방을 선호하고 있다.

요리교실이 끝난 5월 말까지 난 새벽과 밤마다 이 주방에서 복습을 하느라 분주했다. 눈뜨면 쌀을 불려놓은 후 세수하러 가는 것이 습관이 되다시피 했다. 요리 도중 내 계량스푼은 이 양념컵들을 부지런히도 드나들었다.

주방을 장악하면서 또 한 일이 있다. 냉장고 정리다. 도대체 냉장고 속에 무엇이 박혀있는 지도 모르면서 요리를 한다는 건 가당치 않다. 일단 유통기한이 지난 포장제품들은 모두 방출시켰다. 그리고는 집 앞 마트에서 사온 두부며 어묵이며 온갖 식재료를 채워 넣었다.

식재료라는 것이 애물단지다. 포장된 제품은 유통기한이 엄연히 있는데다, 야채는 며칠만 지나도 시들시들해져 냉장고에 보관하더라도 빨리 먹어 치워야 한다. 하지만 가족들이 체중 관리에 돌입했거나 소식주의자면 일부만 요리하고 다시 냉장고에 넣어둘 수밖에 없다. 아침은 건너뛰고 저녁은 밖에서 먹는 생활패턴이면 더욱 그렇다. 그러다 보면 유통기한을 넘기기 일쑤다. 두부를 조렸다가 국에 넣기도 하고, 오이로 소박이를 만들다 나중에는 그냥 고추장에 찍어먹기도 하고, 돼지고기 다져서 만두를 해먹다가 나중에는 구워먹어 버리는 이유는 오로지 유통기한을 넘기지 않기 위해서였다.

유통기한을 지키지 못할 것 같으면 아예 냉동실에 넣어 얼렸다. 냄비밥을 하면서 얻은 팁이 하나 있다. 따끈따끈한 냄비밥이 맛은 좋지만 남으면 처지곤란이다. 요즘같은 여름날 냄비 속에 그대로 방치하기도 그렇고 버리기도 아깝다. 이럴 때는 밥을 따끈한 상태에서 비닐봉지에 담아 냉동실에 얼리는 게 상책이라고 요리강사가 원포인트 레슨을 했다. 먹을 때는 전자레인지에 해동하면 냄비밥의 느낌이 살아난다.

그렇게 냉장고 안 식재료 상태를 머릿속에 입력시키고는 찬장의 식기 배열, 수저 정리, 잘 사용하지 않는 냄비와 프라이팬 방출, 키친타올 정렬 등 후속조치를 하나하나 실행했다. 설거지용 수세미도 새로 장만했고 200cc 계량컵으로는 여러 번 손이 가는 일이 많아 600cc 계량컵도 하나 샀다. 이 계량컵은 라면 끓일 때 요긴하다. 그동안은 라면 끓일 때면 물 양을 눈대중으로 맞춰왔다. 라면을 여러 개 끓일 땐 눈대중이 쉽지 않아 국물의 농도가 항상 왔다갔다했다. 라면 겉봉에는 물 양을 550cc라고 못박아놓고 있다. 요리하면서 처음 눈여겨봤다. 그 후로 항상 계량컵을 사용해 적정 농도의 국물을 맛보고 있다.

주방에서 여유가 생길 때쯤 주방용 TV와 라디오가 별도로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휴대전화 두 배 크기의 화면은 요리하며 보기에 딱 맞았다. 내 주방에도 문화라는 것이 자리잡았다.

요리교실이 끝나고는 아침 저녁으로 드나들던 주방 출입 횟수가 뜸해졌다. 체력단련에 돌입한 가족들은 음식의 유혹을 잘도 견뎌냈다. 혼자 먹고 살찌는 날들이 계속됐다. 그러니 설거지하는 손길도 게을러졌다. 주방이 하루가 다르게 돼지우리가 되어가고 있었다. 난 그 틈새로 도마를 꺼내 파, 마늘을 다지고 무를 썰었다. 곡예하듯 요리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의 친위쿠데타가 예고 없이 일어난 것이다. 내 양념컵들은 보존상태 불량 판정을 받고 모두 퇴출됐다. 계량컵과 스푼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자취를 감췄고, 냉장고도 아내 입맛대로 구조조정됐다. 아내는 그때부터 이것저것 요리를 해냈지만 고정적으로 먹을 사람은 나뿐이었다. 부모님은 “오히려 잘됐다”고 반기셨다. 나이 오십에 앞치마 두르고 있는 장남 꼴이 마음에 들지 않던 터라 ‘울고 싶은데 뺨 때린 격’이라며 환영했다. “고마 이 참에 요리 관둬라. 할 만큼 했다 아이가.”

하지만 내가 어떻게 익힌 요리인데 이렇게 허망하게 포기할 수는 없었다. 설거지 거리만 쌓이지 않으면 아내는 말이 없었다. 주방은 이제 나와 아내의 공동공간이 됐다. 나는 요리하고 아내는 설거지하는, 그러니까 지금까지는 상상하지 못했던 그림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우리 주방에도 민주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jhj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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