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으로 세상읽기] 8월17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14일 오후 도쿄 총리관저에서 일본의 전후 70년에 관한 담화(일명 아베 담화)를 발표하고 나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과거의 문장을 읽어보면 수사관념에 얽매이지 않은 문장이 별로 없다. 비판 없이 맹목적으로 한문체를 모방하는 바람에 수사로 인해 문장이 발달한 것이 아니라 도리어 중독에 빠지고 말았다. 따라서 자신의 말이나 감정이 없는 글이 되고 말았다.’ 좋은 글쓰기란 무엇인지 설명하는 책 ‘문장강화’에서 이태준은 이렇게 말하며 중국 신문학시기 국문학자 후스(胡適)의 수사학이론을 인용한다. 그 첫째가 ‘언어만 있고 사물이 없는 글을 짓지 말라’(엉성한 관념만으로 꾸미지 말라는 뜻)는 것이다. 이태준은 이어 새로운 문장작법으로 ‘글짓기가 아니라 마음과 생각과 감정이 담긴 말을 짓기로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우리말과 일본어는 구어에서뿐 아니라 글에서도 주어 없이 의미가 잘 통하는 말이라고들 한다. 주어 없이도 의미 전달이 분명할 경우 주어를 생략하는 것은 군더더기 없고, 곁에서 듣는 듯 친근해서 좋은 문장으로 여기기도 한다. 그런데, 문제는 주어 없이는 의미 전달이 분명하지 않을 경우다. 주어가 없어서 누가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지 불분명할 경우에는 주어를 생략해서는 안 된다. 더구나 많은 사람들이 그 문장의 ‘주어’를 기대하고 있는데도 그것을 빼고 이야기한다면 듣는 사람을 속이려 한다는 의심을 받게 된다.

“피동형 문장에는 주어가 생략된다. 풀이된다고 하면 누가 풀이하는 건지, 지적된다고 하면 누가 지적하는 건지가 있어야 하는데 그 주체를 무의식적으로 또는 의도적으로 숨기는 문장 구조다. 영문법에서도 수동태는 행위의 주체를 밝히고 싶지 않거나 불분명할 때, 또는 행위의 책임을 언급하고 싶지 않을 때 사용한다고 설명한다. 익명 표현은 ‘정부 관계자’ ‘한 여당 의원’ ‘한 전문가’ ‘소식통’ ‘측근’ 따위를 말한다. 주어는 표시하되 실체를 애매모호하게 흐리는 것이다. 피의자 인권 보호를 위해서처럼 익명 처리가 필요할 경우는 있다. 하지만 언론이 책임감 있게 정보를 전달하려면 익명 표현을 피하는 게 바람직할 것이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일본 패전 70년을 맞아 발표한 ‘아베 담화’에서 식민지배와 침략을 사죄하는 시늉만 했다. 이를 위해 주체를 명시하지 않는 언어 전략을 택했다. 행위의 주체와 행위의 책임을 밝히고 싶지 않을 때 피동형과 익명 표현을 많이 쓴다는 원리를 생각해보면 아베의 속마음을 더욱 쉽게 알 수 있을 듯하다.”(한겨레신문 8월 17일자 유레카 ‘피동형 문장’▶전문 보기)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전후 70년 담화가 발표된 14일 오후 서울역을 찾은 시민들이 TV를 시청하고 있다. 이 담화에서 아베 총리는 '과거형'으로 사죄를 언급하면서도 침략과 식민지배 문제는 거론하지 않았다. 서재훈기자 spring@hankookilbo.com

“도대체 무엇을 위한, 누구를 위한 담화인가. 아베 총리의 담화는 전후 70년 역사의 결산으로서는 지극히 불충분한 내용이었다. 침략과 식민지 지배. 반성과 사죄. 아베 담화에는 확실히 국제적으로도 주목 받은 몇 가지 키워드가 포함되었다. 그러나 일본이 침략해 식민지 지배를 했다는 주어는 얼버무렸다. 반성과 사죄는 역대 내각이 표명했다며 간접으로 언급했다. 이 담화는 낼 필요가 없었다. 아니 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다시 한 번 그렇게 생각한다. 담화 전체를 통해 느껴지는 것은 자신과 지지자의 역사관과 사실의 엄중함을 짜맞추는데 고심한 타협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일본 정부의 역사인식으로 자리잡아온 전후 50년의 무라야마 담화의 가장 큰 특징은 과거 일본의 행위를 침략이라고 인정해 그에 대한 반성과 아시아 각 국민에 대한 사죄를 솔직하게 말한 것이었다. 그러나 아베 담화에서 침략을 언급한 것은 다음 대목이다. “사변, 침략, 전쟁. 어떤 무력 위협이나 행사도 국제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서는 두 번 다시 사용해서는 안 된다.” 이 자체로는 물론 틀린 것이 아니다. 그러나 총리 자신이 계승한다고 해온 무라야마 담화의 내용에서는 분명히 후퇴했다. 일본의 대륙 침략에 대해서는 총리의 사적간담회도 보고서에 명기했다. 침략이라고는 말하지 않아도 “침략적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등으로 인정해온 무라야마 담화 이전 자민당 총리의 표현에서도 후퇴했다. 사죄에 대한 것도 마찬가지다. 총리는 “우리들의 자식이나 손자에게 사죄를 계속하는 숙명을 지워서는 안 됩니다”고 말했다. 확실히 국민 가운데는 언제까지 사죄를 계속해야 하는가는 의견이 있다. 반면 중국이나 한국이 사죄를 계속 요구하는 데도 이유가 있다. 정부가 반성과 사죄의 뜻을 표시해도 각료들이 그것을 의심하게 하는 발언을 반복한다. 야스쿠니신사에 총리 등이 참배를 한다. 신뢰를 훼손하는 원인을 일본이 만들어왔다. 계속 사죄를 하고 싶지 않다면, 국제사회가 편향된 역사인식을 갖고 있다고 의심할 만한 아베씨가 여기서 말끔히 사죄해 국민과 아시아 각 국민 사이를 가로 막고 있는 부(負)의 고리를 끊겠다. 이런 결단을 할 수는 없었나.…

총리는 미래지향을 강조해왔지만 더 나은 현재와 미래를 살아가기 위해서는 과거를 정리하지 않고서는 안 된다. 그런 의미에서 해결해야 하는데도 남아 있는 문제가 적지 않다.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야스쿠니 신사와 전몰자 추도 문제다. 아베 총리가 2013년 이후 참배를 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외교적인 마찰은 진정되었지만 총리가 다시 참배하면 바로 재연될 것이다. 그런데도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려는 정치적인 움직임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위안부 문제는 해결을 위한 정치적인 합의를 보지 못하고 있고, 국교가 없는 북한과의 납치문제도 진전이 없다. 러시아와의 북방영토 문제도 암초에 걸려있다. 낼 필요가 없는 담화에 노력을 허비한 결과 전쟁의 참화를 체험한 일본 국민과 주변 각 국민이 고령화하는 가운데 해결을 서둘러야 할 문제는 계속 제자리걸음이다. 도대체 무엇을 위한, 누구를 위한 정치인가. 더 없는 본말전도다. 그 책임을 바로 총리가 지지 않으면 안 된다.”(아사히신문 8월 15일자 사설 ‘전후 70년 아베 담화 무엇을 위해 낸 것인가’▶일어 전문 보기)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14일 전후 70년 담화(아베 담화)를 발표했다. 이 담화에는 '식민지 지배', '침략', '사죄' 등의 표현이 들어갔다. 그러나 일본이 전쟁 중에 식민지 지배와 침략을 했다는 것을 인정하는 맥락에서 사용되지 않았다. 또 역대 정권이 사죄했다는 것을 소개했을 뿐 아베 총리가 직접 사죄한다는 뜻은 표명되지 않았다. 사진은 아베 담화의 사본. 연합뉴스

“광복 70주년의 경축사에서 우리는 무엇을 읽을 수 있을까? 주어가 사라진 정책을 대면하는 것은 고통스럽다. 북한이 대화하자고 하면 대화하고 싸우자고 하면 싸우겠다는 것이 어떻게 정책인가? 지금까지 한반도 질서를 북한이 결정한 바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내가 필요하다면 나의 수단을 효과적으로 활용해서 상대를 설득해야 한다. 이제 임기 후반기로 접어들었다. 상대가 호응할 때까지 기다릴 여유도 없다. 그리고 다른 기회도 적지 않은데 광복절 경축사마저 국내정치적으로 허비할 필요가 있을까?

또한 대통령의 경축사에서 청와대와 해당 부처 사이에 조율된 흔적을 발견하기 어렵다. 비무장지대에 평화생태공원을 만드는 것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대통령은 말하는데, 국방부는 불을 질러 생태를 훼손하고 평화를 내쫓고 확성기 방송을 하겠다고 한다. 북한에 얼마나 타격을 줄지 모르겠다. 범죄에 대한 처벌에도 문명의 수준이 있다. 문명국으로 국제사회의 시선을 의식하기를 바랄 뿐이다. 이산가족 문제의 해결이 시급하고 절실한 이유는 대부분이 고령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정부의 해결 능력이다. 바로 며칠 전에 이산가족 문제 해결을 위한 통일부 장관의 제안을 접수조차 거부한 북한을 상대로 대통령이 반복 제안했다. 거부 의사를 확인한 후의 제안을 남북관계의 역사에서 본 적이 있는가? 부끄러운 장면이 아닐 수 없다.

광복 70주년에 여기저기 나부끼는 희망의 말들은 너무 상투적이다. 멋진 말들로 연결되어 있으나 서로 상충하고 구체성이 없다. 말이 신뢰를 잃었고 정치는 타락했다. 한 가지만 묻자. 70년 전 그날 우리 선배들이 상상했던 ‘독립국가’에서 우리는 얼마나 멀어졌을까? 어두워질 만큼 어두워졌는데도 여전히 별은 보이지 않는다.”(한겨레신문 8월 17일자 세상읽기 ‘역행하는 광복절 경축사’▶전문 보기)

“남북관계가 예사롭지 않다. 남북이 실랑이하고 티격태격하는 것도 우려할 수준인 데다 군사적 긴장이 너무 높다. 평화통일이란 목표와 현실적 거리감이 너무나 크다.…전쟁을 하자면 몰라도 그렇지 않다면 이런 위험한 정세를 타개할 돌파구가 나와야 했는데 경축사에 그런 메시지가 보이지 않는다. 대신 우리는 언제든지 대화할 수 있으니까 당신들이 준비되는 대로 나오라는 것인데, 다시 공을 북한으로 넘겨버린 셈이다. 이 밖에도 경축사에는 다수 대북 협력 프로젝트들이 들어 있다. 비무장지대(DMZ) 생태평화공원 조성, 남북 철도 및 도로 연결, 유라시아 협력, 이산가족 연내 일괄 명단 교환, 금강산 면회소 수시 상봉, 자연재해 및 안전 협력, 민족 동질성 회복을 위한 문화·체육 교류 등. 어느 것 하나 북한의 협력 없이는 이룰 수 없는 일들이다. 북한의 협력은 우리 측의 “유연한 대응”이 발휘될 때 기대할 수 있다. 엄격한 상호주의 자세로는 협력이 안 된다.

단임제 대통령이 임기 후반기에 할 수 있는 일이란 많지 않다. 경제살리기 같은 과제는 유ㆍ무능을 떠나 정부가 하기 어렵게 돼 있다. 내부 개혁도 저항에 부딪혀 좌절하기 일쑤다. 그러나 대북정책은 지도자의 의지만 있다면 큰 성과를 낼 수 있다. 남북정상회담도 할 수 있고, 경협에도 진전을 볼 수 있다. 박 대통령은 여러 환경이 대북정책을 추진하기에 유리하다. 평화통일은 그 길이 ‘대장정’만큼 험난하겠지만, 진정한 광복의 당위로서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터이다.”(경향신문 8월 17일자 시론 ‘대북 평화 메시지 빠진 8ㆍ15 경축사’▶전문 보기)

김범수기자 bs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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