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연의 다시 읽고 싶은 그림책] 4. 바람이 불 때에

● ‘바람이 불 때에’ 레이먼드 브릭스 글·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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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시마·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떨어진 지 70년이 되었다. 8월 9일 나가사키에서는 원폭 희생자 위령식이 열렸다. 일본을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 만들기 위해 집단 자위권 법제화를 추진하고 있는 아베 총리도 참석했다. 다우에 도미히사 나가사키시장은 “일본 헌법의 평화이념이 흔들리고 있다”며 아베 총리의 면전에서 경고했다. 위령식이 끝나자 아베 총리는 인터뷰에서 “집단 자위권 법안은 평화를 지키는 데 필수불가결한 것”이라고 응수했다. 그 3일 전 히로시마 추도식에서 “일본은 유일한 피폭국으로서 핵무기 없는 세계를 실현해야 할 중요한 사명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던 아베 총리다. 반핵과 평화를 외치면서 전쟁할 수 있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니…. 원폭의 재앙을 겪었던 두 도시를 오가며 궤변을 늘어놓는 아베가 꼭 읽어야 할 그림책이 있다.

냉전이 맹위를 떨치던 1960년대. 미국과 구 소련은 경쟁적으로 핵폭탄을 만들어댔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참상을 풍문으로라도 들어본 사람들은 3차 대전이 터질까봐 신경을 곤두세웠다. 레이먼드 브릭스는 당시 영국인이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소련에 의한 핵전쟁-를 그림책으로 만들었다. 1970년에 출간한 ‘바람이 불 때에’다.

시작은 심상하다. 퇴직 후 시골 외딴집으로 이사 온 제임스·힐다 부부의 일상이 페이지마다 20여 칸의 만화로 펼쳐진다. (레이먼드 브릭스는 그림책에 만화 형식을 처음으로 도입했다.) 이 노부부 캐릭터의 모델은 브릭스의 부모라고 한다. 브릭스의 아버지는 30년간 우유를 배달했고 어머니는 21년간 귀부인의 하녀로 일했다. 퇴직한 블루칼라 노동자 부부의 생활은 무료하지만 평화롭다. 어느 날 신문을 보던 제임스는 전쟁이 일어날 것 같다고 한다. “걱정 말아요. 당신은 늙어서 징집되지 않을 거예요” 아내의 대답이 태평하다.

마침 도서관에서 정부의 지침서를 가지고 왔던 제임스는 집 안에 방사능 낙진 대피소를 만든다. 문짝을 뜯어 60도로 세워놓고 14일치 식량을 마련하며 부부는 2차 대전을 추억한다. 어린 시절 2차 대전을 겪었던 그들에게, 전쟁은 지붕에 꽃을 심은 앤더슨 방공호와 핀업 걸 사진을 붙여놓은 모리슨 방공호의 이미지로 남아있다. 그들은 히틀러도 만화 캐릭터처럼 우스꽝스럽게 기억할 뿐이다. 그들은 현재 전쟁을 일으킨 소련과 2차 대전을 일으켰던 독일을 혼동하기도 한다.

노부부는 2차 대전을 "좋았던 시절"로 추억한다.
처칠, 루스벨트, 스탈린, 히틀러... 노부부가 기억하는 2차대전 주역들의 이미지.

부부가 도란도란 티격태격 하는 사이 전쟁은 벼락같이 온다. 3분 뒤 미사일이 폭발한다는 라디오 방송이 나온다. 힐다는 빨래를 걷는다, 오븐을 끈다며 꾸물댄다. 살림엔 억척인 이 할머니는 핵에 대해서는 무지하다. 제임스가 아내를 끌고 대피소 안으로 허겁지겁 들어간다. 페이지를 넘기면 양쪽이 통째로 백지다. 버섯구름도 화염도 아닌 흰 빛이 그들을 덮쳤다. 흰 빛이 사라지고 붉은 빛이 시야를 가렸다가 걷힌다. 부부의 네 발바닥만 비어져 나온 대피소의 빛깔이 서서히 달라진다. 만화 형식이 아니었다면 구현하기 힘든 탁월한 ‘롱테이크’ 효과다.

핵폭탄이 떨어진 지점과 어느 정도 거리가 있었던지, 유리창이 깨지고 통신이 두절되고 수도가 끊겼지만 집은 완전히 부서지지 않았다. 부부는 대피소 덕에 살았다며 정부를 무한히 신뢰한다. 그러나 정부 지침은 원폭 투하 후의 상황에 대해서는 자세히 설명하지 않았다. 단지 14일 동안 밖에 나가지 말라는 정도다.

낙진이 떨어지는 것도 모른 채 부부는 예전과 같은 생활을 한다. 조금 조심하기는 하지만 신선한 공기를 마신답시고 집밖으로 나가고 검은 비를 반갑게 받아 끓여서 마신다. 곧 반점, 구토, 무력감 등 피폭 후유증이 나타난다. 그들은 통조림만 먹은 탓이라고 자위한다. 힐다의 머리카락이 빠진다. “괜찮아, 여자는 대머리가 안 된대” 제임스의 위로가 무력하다. 그런 상황에서도 정부가 자신들을 구해줄 거라고 철석같이 믿는 그들의 맹신은 섬뜩하기까지 하다. 입에서 피를 흘리며 “걱정을 모두 벗어 버리고서 스마일 스마일 스마일”을 노래하는 제임스에게 힐다가 옷이 더러워진다고 타박하는 장면에서 섬뜩함은 극에 달한다. 바보인지 미치광이인지 헷갈릴 지경이다. 자신들이 죽어가고 있다는 것도 모른 채 삶의 의지를 맹렬히 불태우고 있는 노부부가 안쓰럽다.

원자폭탄이 터지기 전, 노부부의 일상은 밝고 평화로운 색채로 그려졌다.
원자폭탄이 터지고 난 후 그림의 톤이 변한다. 노부부에게 피폭 후유증이 나타나면서 색채는 칙칙하고 남루해진다.

레이먼드 브릭스는 대도시의 아비규환을 그리기보다 시골 외딴집에서 단 두 명의 죽음을 보여주며 담담하게 반전·반핵을 외친다. 어른을 위한 그래픽 소설에 가까운 이 책은 동화 같은 색채와 그림체를 사용함으로서 오히려 메시지의 충격을 배가시킨다. 도서관들이 이 책을 어린이 책 코너에 둔 것을 보면 안타깝다.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는 평범한 일상을 박살내는 핵전쟁의 참상이 충격이었다. 그런데 다시 읽어보니 죽어가면서도 헛된 믿음을 놓지 않는 노부부의 모습이 더 경악스럽다. 노부부의 정부에 대한 맹신은 어디서 왔을까? 순진함? 무식함? 대책 없는 긍정? 그들이 2차 대전을 “좋았던 시절”로 추억하던 장면이 목구멍에 걸린다. 아무리 어린 시절에 겪은 전쟁이라지만, 자국이 승전했고 가족의 죽음이나 부상을 겪지 않았다지만, 전쟁이 이런 식으로 기억될 수도 있다는 것이 놀랍다. 큰일 없이 살아남은 그들에겐 전쟁이란 재수 없는 사람들만 죽는 것이었다. 어른이 되어서도 그 경험을 객관화하지 못했고, 전쟁이 나도 정부의 지침만 따르면 살아남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이어졌다. 자신의 얄팍한 경험에만 비추어 모든 일을 단편적으로만 생각하는 것은 비극을 부른다.

일본인들에게 2차 대전의 기억은 두 갈래다. 한 무리는 “패전은 치욕이니 군국주의의 부활을 향해 달려가자”고 외친다. 다른 무리는 “잘못을 되풀이하면 안 되니 핵도 전쟁도 절대 안 된다”고 외친다. 왜 이렇게 갈렸을까? 일본 우익들은 말한다. “침략의 정의는 정해져 있지 않다. 대동아 전쟁은 정당한 전쟁이었다. 우리는 원폭을 투하한 미국과도 사이좋게 지낸다.” 그들은 히로시마·나가사키로 상징되는 패전의 기억을 객관화하지 못했다. 원폭의 피해는 너무나 처참해, 많은 일본인들의 마음속에서 자신들이 가해자였다는 자의식을 지워버렸다. 핵은 여러모로 재앙이다. 그러나 일본이 왜 원폭을 맞았는지를 곰곰 생각해 본 일본인들은 집단적 자위권에 반대하고, 나아가 한국·중국·필리핀 등 전쟁으로 피해를 본 나라에 미안하다고 생각한다. 나가사키시장도 일본이 왜 원폭을 맞았는지 오랫동안 생각해 보지 않았을까.

8월 9일 나가사키 원폭 희생자 위령식에서 평화선언을 발표하는 다우에 도미히사 나가사키시장. 아베 정부에 정면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메시지는 나가사키시장 개인의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나가사키시는 ‘평화선언문 기초위원회’ 제도를 통해 시민들의 의견을 폭넓게 수용했다.

아베 총리가 이 그림책을 본다면 무슨 생각을 할까? 노부부의 정부에 대한 맹신을 양호한 시민의 자세라고 생각할까? 더 완벽한 정부 지침이 있다면 양호한 국민들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할까? 군사력이 강하면 핵전쟁을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할까? 히로시마·나가사키에 원폭이 투하됐을 때보다 핵 기술은 더욱 발전했다. 이제 핵폭탄이 터진다면 더 넓은 지역을 더 오랫동안 망가뜨릴 것이다. 핵전쟁에 대비하는 것보다 전쟁 자체를 막는 것이 더 중요하다. 대한민국의 국민, 특히 정치인들은 북한의 핵무기에 대해 지금보다 더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

‘바람이 불 때에’의 마지막 장면은 짐작한 만큼 참혹하다. 애써 외면하려 하지만 결국 생명의 위기를 감지한 노부부는 감자부대를 뒤집어쓴 채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모습으로 대피소에 눕는다. 기도하는 힐다에게 던지는 제임스의 마지막 말. “그만해, 여보 그만….” 자신의 믿음이 틀렸음을 너무나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군국주의 바람, 전쟁 바람, 핵 바람… 바람이 불 때에는 늦다. 아베는 바람이 불기 전에 깨달아야 한다.

김소연기자 aur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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