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사설] 아베 담화, 어차피 기대할 것도 아니었지만

알림

[사설] 아베 담화, 어차피 기대할 것도 아니었지만

입력
2015.08.14 19:32
0 0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14일 발표한 ‘종전 70주년 담화’는 분명한 과거사 반성과 사죄에는 이르지 못했다. 담화에는 ‘식민지 지배’ ‘침략’‘통절한 반성’ ‘마음으로부터의 사죄’ 등 이른바 ‘4대 키워드’가 모두 들어가긴 했다. 그런데도 표현 방법에서 일본을 식민지 지배나 침략의 주체로서 명기하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반성과 사죄 또한 아베 총리 스스로를 주어로 하는 대신 과거 역대 일본 정부가 밝혀 온 뜻과 다르지 않고 앞으로도 변함 없이 이어가겠다는 간접화법에 머물렀다.

담화의 이 같은 화법은 애초에 4대 키워드 가운데 일부만 들어갈 것이라는 한중 양국 등의 우려와 반발을 더는 한편, 일본 정부의 거듭된 역사 반성과 사죄에 대한 일본 국내, 특히 우파의 저항을 무마하려는 양면적 포석이다.

이를 제대로 살피려면 역대 일본 정부의 ‘종전 담화’와 비교할 수밖에 없다.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 이래 가장 진전된 내용을 담은 것이 1995년 무라야마 담화다. 이 담화에는 ‘전후 처리 문제에 성실히 대응하겠다’ ‘국책(國策)을 그르쳐 전쟁의 길을 걸었다’ ‘식민지 지배’‘침략’‘많은 나라, 특히 아사 각국 사람들에 다대(多大)한 손해와 고통을 주었다’ ‘통절(痛切)한 반성’ ‘마음으로부터의 사죄의 기분’ 등이 담겼다. 10년 뒤 고이즈미 담화는 무라야마 담화를 대부분 그대로 따르면서도 ‘국책을 그르쳐 전쟁의 길을 걸었다’거나 ‘전후 처리 문제에 성실히 대응하겠다’는 표현을 뺐다. 그리고 이번에는 아예 가해 행위의 주체를 흐리거나 남들의 반성과 사죄를 언급하는 데 그쳤다. 일본 정부의 역사인식이 나날이 후퇴하고 있음을 분명히 드러낸다.

더욱이 이 정도의 내용조차 한중 양국과 일본 국내의 잇따른 요구에 양보한 결과라는 점에서 아베 정권의 역사인식 수준을 짐작할 수 있다. 문제는 일본의 이런 역사인식 후퇴가 정부를 넘어 국민 전체로 번지고 있는 현실이다. 이날 아침 마이니치 신문이 보도한 최근의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일본이 이미 이웃나라에 충분히 사죄했다는 응답은 44%, 애초에 사죄할 필요가 없었다는 의견이 13%에 이르렀다. 57%가 반복적 사죄에 대해 부정적 시각을 드러낸 반면 사죄가 불충분하다는 의견은 31%에 지나지 않았다.

20년 전 무라야마 담화가 “과거의 잘못을 두 번 다시 거듭하지 않도록 전쟁의 비참함을 젊은 세대에 전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한 올바른 역사교육이 외면돼 온 때문이다. 한편으로 무라야마 담화나 고노 담화 등에 대한 현재의 높은 평가와 달리 발표 당시에는 제대로 평가하기에 인색했던 우리 자세에 대한 실망도 빠뜨릴 수 없는 요인이다.

우리는 이번 담화가 나름대로 균형을 잡으려 애쓴 흔적을 평가한다. ‘전쟁 중 명예와 존엄 상처받은 여성’이라는 표현으로 군대위안부 문제를 드러낸 것도 특기할 만하다. 불만족한 부분이 많지만, 그것은 앞으로 한일 양국의 화해ㆍ교류 확대 속에서 부단한 상호 노력으로 메워나갈 수밖에 없다. 그런 마음가짐이 아시아를 넘어 세계의 주요국으로 성장한 상태에서 광복 70주년을 맞은 대한민국의 품격에도 어울린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