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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사죄·배상하는 그 때가 광복" 위안부 할머니들 피맺힌 절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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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사죄·배상하는 그 때가 광복" 위안부 할머니들 피맺힌 절규

입력
2015.08.14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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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명 거주… 고령으로 건강 악화

대화 가능한 할머니 손꼽을 정도

"15살 때 베 짜는 공장 간다 속여, 전염병 걸리자 불태워 살해될 뻔"

영화 모티브로… 오늘 시사회

"일왕이 직접 방문 잘못 빌어야"

日의 진실 부정에 분노의 목소리

광복 70주년을 하루 앞둔 14일 오후 경기 광주시 퇴촌면 나눔의 집에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세상을 먼저 떠난 할머니들의 흉상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왼쪽부터 박옥선, 이옥선, 강일출, 김군자 할머니. 광주=배우한 기자 bwh@hankookilbo.com
광복 70주년을 하루 앞둔 14일 오후 경기 광주시 퇴촌면 나눔의 집에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세상을 먼저 떠난 할머니들의 흉상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왼쪽부터 박옥선, 이옥선, 강일출, 김군자 할머니. 광주=배우한 기자 bwh@hankookilbo.com

“나라 전체가 광복 70년이라고 들썩이지만 우리는 아직 아냐. 일본이 사죄하고 배상을 하는 그때가 광복인 게지.”

14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쉼터인 경기 광주시 나눔의 집(이사장 송월주)에서 만난 강일출(87) 할머니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과거형 사죄 담화를 지켜보는 내내 혀를 끌끌 찼다. 강 할머니는 “(일제강점기에) 집집마다 먹을 것까지 다 뺐어 가고, 어린 소녀들도 잡아가더니 반성은 인색하다”며 “아베 총리는 너무 나쁜 사람”이라고 했다. 할머니는 위안부를 직접 언급하지 않고 에둘러 표현한 것을 두고 “자기 엄마, 누나, 여동생이 우리 같이 당했어도 지금처럼 부정할 수 있었겠냐”고도 했다.

1928년 경북 상주에서 12남매 중 막내딸로 태어난 강 할머니는 15살이던 1943년 여름 중국 지린성(吉林省) 창춘(張春)의 위안소로 끌려갔다. 베를 짜는 공장에 간다는 트럭에 강제로 실린 할머니는 위안소에서 전염병에 걸려 일본군으로부터 불태워 살해될 뻔했다가 목숨을 건지기도 했다.

강 할머니가 2001년 미술심리치료를 통해 당시 상황을 그린 ‘태워지는 처녀들’은 영화 ‘귀향’의 모티브가 됐다. 2002년 조정래 감독이 시나리오 완성 후 제작비 부족으로 11년간 촬영을 못하다가 지난해 온라인에서 진행된 제작비 청원운동을 통해 4만여명이 6억원을 모아 촬영을 마쳤다. 그러나 배급사들이 나서지 않는 등 또 다른 문제로 당초 15일 예정된 개봉은 연기됐고 대신 나눔의 집에서 미니 시사회 형식으로 공개된다.

강 할머니와 함께 나눔의 집에 거주하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는 모두 10명이다. 이 가운데 1930년생인 김정분(85) 할머니가 가장 연세가 적지만, 김 할머니마저 대화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건강이 좋지 않다. 초기 치매 증상을 보이는 정복수(93)ㆍ김순옥(94) 할머니와 노환으로 종일 누워 있는 하수임(88) 할머니까지 제외하면 그나마 대화가 가능한 할머니는 다섯 손가락 안에 꼽는다.

이달 8일 미국에서 박유년(93)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며 정부 등록 위안부 피해 할머니 238명 중 생존자는 나눔의 집 할머니들까지 포함해 47명이 전부다.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생존 할머니들의 평균 연령은 지난해 8월 88.4세에서 올해 8월 89.1세로 높아졌다. 2013년 이후 70대 생존자는 사라진 반면 올해 90~95세 생존자는 15명이나 된다.

위안부 피해자면서도 여러 사정으로 아직 정부에 등록하지 않은 미등록 할머니들의 생존 가능성 역시 점차 낮아지고 있다. 실제 올해 정부에 새로 등록한 위안부 피해 할머니는 아직 한 명도 없다.

유희남(86) 할머니는 뛰어난 언변으로 나눔의 집에서 ‘인텔리’로 통한다. 1929년 충청남도 아산에서 태어난 유 할머니는 “일본은 과거와 같이 지금도 우리를 얕보기 때문에 태도에 변화가 없는 것”이라며 “덴노(일왕)가 직접 우리에게 와서 과거 조상이 잘못한 것을 대신 빌어야 한다”고 말했다. 유 할머니는 특히 “일본이 우리를 ‘성노예’로 표현하지 않으려 하는 것만 봐도 틀려먹었다”며 “그렇게 무시 받는 게 싫다”고 했다.

고향이 부산인 이옥선(88) 할머니는 위안부 소녀상 말뚝테러를 저지른 극우파 일본인 스즈키 노부유키의 안하무인격 행동에 치를 떨었다. 스즈키는 나눔의 집에 일그러진 얼굴 표정으로 무릎 아래가 없는 소녀상 모형과 ‘다케시마는 일본 땅’라고 적힌 말뚝이 들어있는 상자를 소포로 보냈다. 2012년 6월 주한일본대사관 앞에 설치된 위안부 소녀상에 ‘다케시마는 일본 땅’이라고 적힌 말뚝 테러를 일으키기도 했다.

참다 못한 이 할머니는 나눔의 집 할머니들을 대표해 지난 5월 21일 스즈키를 서울 중앙지검에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했다. “이놈이 오늘날까지도 할머니들을 모욕하는데 어찌 가만히 있겠냐.”

그러나 일본 정부는 범죄인 인도조약에 따른 신병 인도 절차 등을 무시한 채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 할머니는 “아베 총리를 직접 보면 멱살이라도 잡겠는데, 매일 TV에서만 보니 속상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안신권(54) 나눔의 집 소장은 “시간이 없다”고 했다. 아베 총리 등을 상대로 위안부 문제 공개사과와 징벌적 배상금 2,000만 달러(약 234억원) 지급을 요구하는 소송을 지난달 13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연방지방법원에 소송을 낸 것도 할머니들 건강을 일정부분 감안한 조치였다는 것이다. 피고는 아베 총리, 아키히토 일왕, 히로히토 전 일왕 등이다. 또 역사 왜곡으로 위안부 피해자 명예훼손에 가담한 닛산, 도요타, 미쓰비시 등 기업과 산케이신문 등이 포함됐다.

안 소장은 “아베 총리가 담화에서 ‘2차대전에서 (일본)동포 300만 명이 사망했다’는 내용을 부각하는 걸 보니 실망스럽다”며 “앞으로 할머니들의 외침이 국내보다는 국제사회에 더 널리 퍼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한국에 대한 모든 전쟁책임을 벗었다는 일본의 논리가 국제사회에서 통용될 수 없음을 깨닫도록 하기 위해 위안부 소녀상 설립을 더욱 늘릴 것”이라며 “우선 올해 말까지 미국 애틀란타에 소녀상과 기림비를 세우기로 결정했다”고 전했다.

이태무기자 abcdef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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