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다닐 때 역사 과목을 싫어했다. 이미 지나버린 일들인데 왜 배워야 하는지 이해가 안 갔다. 지루한 숫자, 기억에 잘 남지는 않는 수많은 지도자의 이름들, 전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전쟁의 이유 등이 답답하기만 했다. 그때 아버지가 하신 “크면 알게 될 거다”라는 말은 외계어처럼 들렸다. 그러나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생활도 하며 국제정치와 경제에 관심을 가진 뒤로 나는 역사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됐다.

그리고 역사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얼마 전부터 깨닫기 시작했다. 윈스턴 처칠의 명언 중 “역사는 승리자의 것”이라는 말이 있다. 국제정치나 사회 뉴스를 보면 힘을 가진 자가 역사를 왜곡하는 경우가 많다. 일시적인 정치ㆍ경제적 이익을 위해 사실을 왜곡하고, 검열 등의 방식으로 국가를 다스리는 정치가를 볼 때는 안타깝기 그지 없다.

러시아에서 태어났고 러시아에서 공부한 나는 해외로 처음 나갔을 때 내가 배웠던 것과 다르게 역사를 배울 수 있다는 현실 앞에서 상당히 놀랐다. 나는 학교에서 외웠던 역사가 옳고 논란의 여지가 없는 절대 진실이라고 알았다. 하지만 다른 나라에서 온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같은 사건을 완전히 다르게 볼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루마니아 친구와 2차 세계대전에 대해 이야기했던 것이다. 그 친구는 갑자기 소련을 비판하면서 20세기 역사에서 소련이라는 국가가 최악이며 소련만 아니면 1차대전도 2차대전도 일어나지 않았을 거라고 말했다.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물어봤더니 루마니아 학교에서는 역사 시간에 1차대전도, 2차대전도 소련이 시작했다고 배운다고 했다. 충격이었다. 1차대전이 터졌을 때 소련이라는 나라조차 없었고, 2차 대전에서는 소련이 나치 독일의 침략을 당한 사실을 이 친구는 배우지 않았던 것이다. 이런 잘못된 정보를 진실로 알고 아무렇지 않게 당당한 표정으로 말하는 것을 보면서, 역사는 정치의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나가사키 원폭 폭발 직후 B29에서 촬영된 사진. 한국일보 자료사진

지난주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된 지 70주년이었다. 인류 역사에서 인간의 가치를 다시 생각해 봐야 하는 중요한 날이 아닐까 싶다. 전쟁을 마무리 짓기 위해 필요한 조치였느냐 아니냐를 떠나, 모든 사람의 생명이 소중하다는 기본적인 윤리에 비춰봤을 때 너무나도 극단적인 선택이자 비극이었음에 틀림 없다. 하지만 한국 인터넷에서 관련 뉴스에 달린 댓글을 보고 너무 놀랐다. 이웃 일본 역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사건 중 하나에 대해 반일 혐오적인 댓글이 많았기 때문이다.

대학에서부터 한국학을 전공해 한일 관계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안다. 한국은 역사적으로 봤을 때 일본에 대한 감정이 부정적이라는 것을 이해하고 있으며 20세기 일본의 외교 방향과 정치를 지지하지도 않는다. 한국뿐 아니라 아시아의 많은 나라들이 20세기 초 일본 국군주의의 피해를 봤다는 것은 역사적인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7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도 일본 역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사건을 마땅하다고 여기거나 일본 사람들은 죽을 만하다고 말하는 것은 잘못이다. 지금 양국이 갈등을 겪고 있다는 정치적인 이유로, 인류사의 교훈을 저버리고 이처럼 막무가내로 행동하는 것은 한국의 미래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한국의 학교에서 앞으로도 이런 식으로 학생들에게 역사를 가르친다면 한일 관계가 개선될 가능성이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

역사는 미래로 나아가는 디딤돌이다. 지금보다 더 밝고 환한 미래를 만들고 싶다면 꼭 역사를 배워야 한다. 자국의 시각으로 일방적으로 재단한 것이 아니라 그 사건이 남긴 인류사적인 교훈을 제대로 이해하면서 말이다.

일리야 벨랴코프 방송인

알립니다

*러시아 출신 일리야 벨랴코프씨가 ‘한국에 살며’ 필진으로 합류합니다. 일리야씨는 블라디보스토크 극동국립대에서 한국학을, 연세대 대학원에서 국문학 석사과정을 마쳤으며 현재 국내에서 방송인으로 활동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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