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닮은꼴 두 여배우, 예술적 운명을 고백하다

입력
2015.08.14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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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오후 서울 대학로에서 만난 배우 황정민(왼쪽), 장영남. 서재훈기자 spring@hankookilbo.com
지난 1일 오후 서울 대학로에서 만난 배우 황정민(왼쪽), 장영남. 서재훈기자 spring@hankookilbo.com

연극의 위기라는 말이 이제는 무덤덤한 관용어처럼 돼 버렸다. 사실 21세기 한국, 연극이라는 기초 예술을 에워싼 환경은 결코 우호적이지 않다. 그것은 사촌격인 뮤지컬에 영광을 넘겨 주고는 뒷방 신세로 들어앉은 듯한 연극 진영의 상실감만은 아니다. 사이버 문명을 발전의 찬란한 척도로 간주하고 싶어 하는 한국에서 라이브 예술이 떠안아야 할 숙제의 무게이기도 하다.

짐짓 풍요로운 이 시대, 연극은 많은 것들과 싸워야 한다. 그람시의 고전적 분석틀을 빌면 이 지난한 ‘진지전’에서 그나마 최대의 위안이라면 “언제 연극이 위기 아닌 적 있었나”라며 연극 진영의 고투를 눙치던 어느 늙수그레한 배우의 너털웃음인지도 모른다. 그는 얼음장 밑으로 흐르는 냇물에 대해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이 자리는 어떤 조우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한국적 상황 속에서 연극이라는 오래된 예술 양식이 주재하는 새 만남이 있기까지의 시간에 대한 기록일 수도, 충돌 이후의 풍성한 결과물에 대한 예측일 수도 있다. 그것은 ‘연극은 항상 위기’라는 역설적 존재론을 새삼 돌아보게 만드는 계기이다. 극단 목화-공식 명칭은 ‘목화 레퍼토리 컴퍼니’이지만 절대 다수의 사람들은 ‘극단 목화’ 혹은 ‘목화’라는 이름을 선호한다-의 대표 오태석(75), 극단 골목길의 대표 박근형(52) 씨.

격동의 한국에서 거의 한 세대를 사이에 두고 한국의 대표적인 극작·연출가로서 자리 매긴 두 사람은 왕성한 현역의 자리를 추호도 양보할 생각이 없다는 점에서 흡사하다. 두 사람의 각각 걸어온 길은 물론 그들의 의식, 두 사람 사이를 흐르는 물줄기의 속내를 들여다보는 일은 연극, 나아가 현재는 물론 미래 한국의 풍경화를 그리는 것이기도 하다. 그 과정에서 “연극 한다”는 말이 원래 내포하고 있는 인간과 역사 등 희미해져 가는 가치가 자연스레 소생하길 기대하는 마음도 있다.

배우 황정민. 국악의 재능, 연극에의 열정 등 황정민의 그릇을 아는 사람들은 "정민의 키가 5~10㎝ 더 컸더라면 우리나라 연극사는 많이 달라졌을 것"이라고 서슴지 않고 말한다. 서재훈기자 spring@hankookilbo.com
배우 황정민. 국악의 재능, 연극에의 열정 등 황정민의 그릇을 아는 사람들은 "정민의 키가 5~10㎝ 더 컸더라면 우리나라 연극사는 많이 달라졌을 것"이라고 서슴지 않고 말한다. 서재훈기자 spring@hankookilbo.com

연극계의 선배로서 오랫동안 함께 작업한 두 여배우를 그 출발점으로서 주목한다. 그들을 오태석-박근형이라는, 보이지 않는 연속선의 실재를 증명하기 위한 자료다. 황정민(46), 장영남(42).

이들의 여정은 놀랍도록 비슷하다. 서울예전 91학번의 황정민, 92학번의 장영남은 학창 시절은 서로 전혀 몰랐으나 극단 목화에 들어감으로써 예술적 운명의 길을 공유하게 된다. 그리고 결국은 박 씨의 무대와 엮이게 된다. 그러나 출발점으로서 목화가 갖는 의미는 서로 조금씩 달랐다. 오태석-박근형으로 이어지는 어떤 연속성을 대표적 여배우들에게서 찾으려는 시도는 자칫 추상적이기 십상인 논의를 육화(肉化) 시켜주는 기능이 있을 것이다.

“창작극을 한다는 이유만으로 서슴지 않고 입단했죠. 졸업 후 다른 극단에서 보낸 1년이 우리의 언어로, 우리의 상황을 이야기하는 연극에 대한 갈증을 키우게 했거든요.” 그래서 입단할 호기를 기다리다, 1994년 2월에 결행하게 됐다는 황정민의 이야기다. 황정민은 언제나 넉살좋은 여인으로 분해 통 큰 목소리와 몸짓으로 한국적 여성성을 구현, 태석의 사랑을 받았던 주인공이다. 극단 목화 단원으로서의 세월을 정리한 그녀가 다시 연극과의 인연을 찾은 곳이 박근형씨의 연출작 ‘히키코모리 밖으로 나왔어’였다.

그렇게 인연을 이어간 황정민과 달리 박 씨에 대한 장영남의 사연은 좀 더 길다.“학창 시절 목화는 그 이름만으로도 엄청난 존재감을 가지는 극단이었어요. 졸업 후 연극이 너무 하고 싶었는데 때마침 목화에 있던 선배가 들어오라고 하더군요.” 그러다 박 씨의 ‘경숙이, 경숙이 아버지’와 인연이 닿았다. 당시 기획자가 전부터 알고 있던 선배라 자연스레 맺어졌던 것. 자신으로서도 화제의 연극 ‘버자이너 모놀로그’로 연극 애호가들의 호응을 얻어낸 뒤, 그에 걸맞은 후속작을 찾고 있었다.

그런데 당시는 1년에 서너 작품 하느라 하루도 쉴 날 없었던 때이기도 했다. 호사다마라 했던가, 박근형 작·연출의 ‘경숙이, 경숙이 아버지’ 재공연 무대에서 주인영과 더블 캐스팅으로 공연, 박 씨와의 인연을 확인한 셈이다. “제안을 엉겁결에 받아들인 터라, 출연 중이던 극단 골목길의 배우(주인영)을 답습하는 수준이었지만요.” 그렇잖아도 함께 작업할 기회만을 보고 있던 터였다.

배우 장영남. 장영남은 이른바 오태석 사단에서 박근형 사단으로 이어지는 변신을 너머, 영화 등 인접 장르에서도 개성적인 연기를 펼쳐 보이고 있다. 서재훈기자 spring@hankookilbo.com
배우 장영남. 장영남은 이른바 오태석 사단에서 박근형 사단으로 이어지는 변신을 너머, 영화 등 인접 장르에서도 개성적인 연기를 펼쳐 보이고 있다. 서재훈기자 spring@hankookilbo.com

“정민과 영남은 목화가 가장 활발하게 할 때 목화에 입단했죠. 남성성이 강한 목화에서 단련돼, 오태석 선생의 연극 어법을 자기 식으로 체화해 냈다고 할 수 있죠.”1984년부터 극단 목화에서 배우로 활동하면서 극작에의 꿈을 키워, 현재 극작가로 더 많이 알려진 홍원기 씨는 그렇게 기억한다. 목화 시절, ‘춘풍의 처’, ‘태’‘자전거’‘부자유친’ ‘도라지’ ‘백마강 달밤에’ ‘심청이는 왜 인당수에 두 번 몸을 던졌는가’ 등 오씨의 극작-연출작에 출연해 오태석 메소드의 전도사를 자임했던 대선배의 평이다.

그는 “그러한 연극 만들기 방식이 기획자 논리에 따라 움직이는 요즈음 PD시스템보다 비효율적으로 그것이 진짜 연극의 숙명”이라고도 했다. 이 시대, 어떤 연극은 하나의 총체적 삶의 방식과도 동의어다, 그는 21세기 연극이 기획자 중심의 제작 시스템으로 가지만 아직도 “신중한” 단체는 목화식의 제작 방식을 선호한다고 재삼 강조했다. 그의 논리를 더 따라가면 그것은 연극을 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기도 하다.

그는 배우의 개성까지 그가 속한 단체에 융화되는, 하나의 예술 공동체를 말하고 있었다. “ ‘극장에 들어서는 순간 바깥일은 다 잊어버려라’며 오 선생은 주문하죠.” 그것은 무대를 앞두고 소품을 마련하느라 바닥에 앉아 농을 주고 받으며 새끼줄을 꼬던 목화의 배우들에게서 왕년의 ‘오 사단’이 건재함을 느꼈다면 착시였을까?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그것은 극작·연출을 겸하는 대표의 리더십으로 움직이던 1970~8년대 동인제 시스템이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는 증표이기도 하다. “목화라는 예술 공장 안에서 단원들은 심리적 공동체가 되죠.” 황정민과 장영남이라는 도드라진 두 여배우가 이 남성성 강한 극단에서 선 굵은 오태석 어법을 구현하기까지의 과정은, 무심한 듯 덤덤히 배우들을 장악하고 끈끈한 공동체를 일구더니 마침내는 ‘박근형 표 연극’이라는 일련의 결과물로 증명해 보이기까지의 길과 내면적으로 흡사하다.

이어질 일련의 글은 그 증거가 될 것이다.

(기자는 20여년 전 대학로 충돌소극장에서 ‘춘풍의 처’라는 무대를 접하고는 우리의 연극이란 문제에 대해 시나브로 호기심을 키우며 나름 답을 해 왔다고 믿는다. 그 후 10여년 뒤, 대학로 소극장 혜화동1번지에서 ‘청춘 예찬’이란 무대를 접하고 혹했다.

그렇게 둘과 조우했다. 돌이켜 보니 먼 길의 출발점이었다. 두 무대의 간판을 합성해 만든 문패 아래 엮어질 글 다발이 우리 연극 진영에 바치는 소박한 찬미로 이어지길 바라며.)

장병욱 선임기자 aj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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