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으로 세상읽기] 8월 12일

“현대식 냉장고를 만드는 데 필요한 냉동기술은 산업혁명의 나라 영국에서 개발됐다.…1834년, 영국의 발명가 제이콥 퍼킨스는 얼음을 인공적으로 만드는 압축기를 개발해 특허출원했다. 퍼킨스는 압축시킨 에테르가 냉각 효과를 내면서 증발했다가 다시 응축되는 원리를 이용했는데, 냉매의 재료만 바뀌었을 뿐 오늘날의 냉장고 냉각 원리는 퍼킨스의 압축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

냉장기술이 개발되고 특허가 출원되는 일이 여러 번 반복됐다. 그렇게 냉장에 대한 경험과 지식이 쌓여가던 1862년, 영국인 제임스 해리슨이 냉장고라 불리는 기계를 만들어 시판했다. 냉장고는 시장에 첫 데뷔를 하자마자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맥주업체와 육가공업체는 당장에 해리슨의 냉장고를 주문하기 시작했다. 당시는 대영제국이 식민지 시장에 세력을 확장하던 시기였다. 신대륙에서 나는 갖가지 음식을 맛보고 싶어 하는 구대륙의 욕망이 끓어오르고 있었다. 때마침 시판되는 냉장고는 19세기 중반에 발명된 증기선과 결합하면서 그들의 욕망을 채우기에 충분한 능력을 발휘했다. 아르헨티나의 소고기가 영국으로 팔려나가고 서인도 제도의 바나나가 영국으로 유입돼 주변국으로 수출되는 놀라운 일이 실제로 이루어졌다. 냉장고가 불가능을 가능한 일로 만든 것이다.…

영국에서 개발된 냉장기술은 미국으로 건너가 빛을 보기 시작했다. 1915년 미국의 알프레도 멜로우즈가 위험하지 않고 크기도 아담한 가정용 냉장고를 만들었다. 이듬해부터는 회사를 설립하고 냉장고를 생산하기 시작했는데, 당시의 냉장고 생산량은 연간 40대가 고작이었다…귀한 사치품에서 가정의 필수품으로, 냉장고 역사의 전환점이 마련된 것은 1918년, 멜로우즈의 기술력을 높이 산 미국의 제너럴 일렉트릭사가 멜로우즈의 회사를 인수하면서부터다. 냉장고의 대량 생산의 길이 열리면서 너나없이 채소와 신선한 식품을 즐길 수 있는 식생활의 혁명이 시작됐다.”(KBS 과학카페 냉장고 제작팀이 2012년에 낸 ‘욕망하는 냉장고’ 중에서)

1999년 이탈리아 베니스영화제 단편경쟁 부문에 초청됐던 안영석 감독의 단편영화 '냉장고'. 빚 대신 받아온 애물단지 냉장고를 둘러싼 가족의 소소한 일상을 그렸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냉장고를 한국에서 처음 만들어 판 것은 금성(현 LG)이었다. 1965년 첫 보급 이후 경제성장과 더불어 가정의 냉장고 보유대수는 급속도로 늘었다. 서울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서울의 경우 1991년 가구당 한 대이던 냉장고는 20여년 뒤인 2013년에 두 대로 증가했다. 웬만한 선진국을 뛰어넘는 이 같은 냉장고 보급률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것은 김치냉장고였다.

신라시대 석빙고가 있었고, 그보다 앞서 ‘예기(禮記)’에 겨울에 얼음을 저장했다가 여름에 꺼내 쓸 정도로 여유 있는 집안을 ‘벌빙지가(伐氷之家)’라고 했다. 사람 살림에 음식 저장이 절실하지 않을 리 없고, 거기에 냉장만큼 효과적인 게 없다. 그냥 뒀으면 금세 상해버릴 식재료를 보관할 수 있게 된 게 얼마나 감격적이었던지, 1960년대 고도성장기 일본에서는 냉장고를 ‘신이 내린 세 가지 물건(三種の神器)’의 하나로 불렀다.

그러나 냉장고에 대한 이런 인식은 서서히 전환점을 맞은 듯 하다. 식재료의 안전한 장기 보관이라는 ‘필요’를 넘어‘과소비’를 조장하는 물건이라는 시각으로 보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있다. 정기적으로 냉장고를 정리해야 하고, 그때 유통기한이 지나 버리는 식재료들을 생각하면 냉장고에 부탁하는 것도 좋지만, 냉장고를 줄이라든가 없애라는 주장을 흘려 들을 수 없다.

“작은 냉장고만 있는 삶은 불편했다. 매주 대형마트에서 장을 보던 습관은 쉬 고쳐지지 않았다. 음식은 넘쳤지만 이를 넣어둘 공간이 턱없이 부족해졌다. 결국 ‘음식 씀씀이’를 줄여야 했다. 내친김에 재래시장에 가서 음식을 사기 시작했다. 그것도 그때그때 필요한 음식만. 장을 보는 품목도 달라졌다. 기존에 대형마트에서는 과자와 라면, 즉석식품 등 가공식품 위주로 샀었다. 하지만 재래시장에 자주 가다 보니 야채나 과일, 고기, 생선 등 신선식품을 더 많이 사게 됐다. 이러다 보니 ‘본의 아니게’ 요리도 자주 해야 했다. 냉동 만두처럼 물에 끓이거나 전자레인지에 가열만 해도 한 끼가 완성되는 즉석ㆍ가공식품을 사지 않게 됐기 때문이다. 대신 요리가 거창하지 않았다. 채소를 나물로 무치고 밑반찬 몇 개를 내어 소박한 밥상을 차렸다.

부부는 이런 과정을 겪으며 달라지기 시작했다. 식단은 건강식으로 바뀌었고 체중도 다소 줄었다. 돈도 아끼게 됐다. 대형마트에 갈 때마다 10만원은 족히 썼지만 재래시장에서는 2000~3000원 단위로 찬거리를 사게 됐다. 냉장고에 유통기한이 한참 지난 냉동식품이나 곰팡이가 피어난 과일 잼을 넣어 두지 않는 것은 물론이었다. 부부는 “작은 냉장고 한 대만 있어도 충분한데 예전에는 있으나 마나 한 음식들을 왜 넣어두고 있었는지…”라고 말했다.…

세계적 베스트셀러인 ‘잡식동물의 딜레마’ 등을 쓴 마이클 폴란은 “우리는 음식의 홍수에 빠져 있지만 정작 ‘진짜 음식’은 드물다. 슈퍼마켓 선반에 ‘진짜 음식’이 사라지고 ‘그럴싸한 음식’을 가장한 가공식품이 빼곡히 들어찼다”고 꼬집는다. 그가 말하는 진짜 음식의 판단 기준은 증조할머니가 아는 음식, 즉 신선하고 살아 있으며 우리의 오감(五感)에 말을 거는 음식이다. 냉장고를 갖다 버린 부부는 “‘슈퍼마켓’보다 ‘마켓’(시장)을 가까이 하니 결과적으로 삶의 질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탐식의 시대’에 사는 우리가 냉장고를 다시금 들여다봐야 하는 이유다.”(동아일보 8월 12일자 @뉴스룸 ‘냉장고에 부탁하지 않는 삶’▶전문 보기)

“닷새마다 열리는 장날은 식재료의 보존가능 기간도 염려해둔 아주 위생적인 시스템이다.우리가 먹는 사계절 식재료 중, 여름철에 생산된 것들이 쉽게 변할 수 있는데, 적어도 가공하지 않은 상태에서 닷새 내외는 견뎌낼 수 있다는 점을 적극 활용한 것이다. 요즘이야 ‘냉장고’라는 계절을 무시하는 괴물(?)이 있어서 제철이 아닌 음식을 어느 때곤 먹을 수 있지만, 적어도 그 괴물이 보편화 되지 않았던 30여 년 전만 해도 전국의 5일장은 먹거리뿐만 아니라 사람 사는 정겨움이 넘쳐나는 만남의 장소였다.

사실 냉장고의 등장으로 이웃 간의 정도 많이 사라졌다. 장기보관이 어려웠던 시절에는 음식이 상하기 전에 이웃과 나누어 먹는 훈훈하고 정겨운 미풍이 있었다. 그러나 요즘은 ‘혹 버릴지언정 냉장고에 우선 보관하고 보자’는 욕심이 각 가정의 냉장고에 팽배하고 있다. 더구나 요즘에는 김치냉장고까지 가세해 이웃 간의 아름다운 풍속은 더욱 보기가 어려워졌다. 그렇다 보니 제 때 먹는 식재료보다 장기보관하다 결국엔 버리는 것이 더 많아지고 있다.

냉장고에 갇혀 있는 식재료 중 상당수는 그냥 상온에서 보관해도 좋을 것들이다. 과일의 경우 식탁 위에 놓아두고 눈 맛을 충족시키며 2, 3일 간 숙성시켜도 상하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그 맛을 배가 시켜준다. 냉장고에 보관된 음식은 냉기를 안고 있어 식재료 고유의 맛을 느끼기 어렵다. 지나치게 시원하면 내 몸에 필요한지 아닌지를 파악하는 미각기능이 제대로 작동할 수 없다. 가능하면 장터에 나가 닷새 동안 먹을 식재료를 사다 상온에 보관해 가족들의 미각기능을 살려야 건강한 식문화를 이어갈 수 있다.…지금 당장 냉장고 문을 열고 안을 들여다보자. 대부분 더 이상 들여 넣을 공간도 없이 꽉 들어차 있을 것이다. 이렇다 보니 전기료도 전기료지만 못 먹고 버릴 음식이 더 많아지고 있다. 비우고 살아야 할 것은 마음만이 아니라 가족 모두의 건강을 위해 냉장고도 비워야 한다.”(휴심정 2011년 9월 11일 최상용 칼럼 ‘냉장고가 내 몸을 망치고 있다’▶전문 보기)

jtbc '냉장고를 부탁해'의 한 장면. 방송화면 캡처.

“동네 정육점과 구멍가게에서 고기와 채소를 사던 1990년대 초ㆍ중반까지 대형 냉장고는 사치품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많은 가계가 당일 산 재료를 당일 조리해 식사를 하는 소비생활 패턴을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말에 대형마트에 가서 일주일 먹을 식량을 대거 구입해 돌아오는 2012년 대형 냉장고는 필수품이다. 최소한 일주일치를 저장해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골목상권 붕괴와 냉장고는 이렇게 만난다.…

에너지 문제로 들어가면, 가전업체들의 기술개발 패턴은 값싼 전기료와 맞물려 소비자가 대형 냉장고를 선택하지 않으면 손해를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게 만든다. 최근 나오는 대형 냉장고는 절전 기술이 여러 가지 적용되고 있어서, 어떤 경우에는 구형 소형 냉장고보다 전기료 부담이 오히려 적다. 뒤집어 이야기하면 소형 냉장고의 에너지 효율을 높이려는 노력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위대하다. 냉장고 사느라 쓴 돈을 채워 넣느라 과로한 사람들은 주말이면 대형마트에서 신용카드를 흔들며 냉장고에 넣을 물건을 사들이며 그 피로를 푼다. 그리고 그 카드값을 채워 넣느라 다시 과로를 한다. 과로해도 채워 넣지 못하는 만큼을 채워 넣기 위해 사람들은 다시 냉장고 만든 기업과 대형마트를 운영하는 기업의 주식에 투자한다.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게 자본주의다. 어느 스포츠용품 광고처럼 그야말로 ‘불가능은 없다’(Impossible is nothing)이다.

작은 냉장고를 사용하는 생활로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동네에서 식료품을 매일 사다 먹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골목상권이 살아나야 한다. 경제민주화 이슈가 여기 걸린다. 또 동네에서 쇼핑하려면 매일 조금씩이라도 시간을 내야 하니, 일찍 퇴근하는 직장문화가 정착되어야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내 최고 수준의 평균 근로시간을 개선해야 하는 이슈가 걸린다. 냉장고는 이렇게, 우리 경제가 안고 있는 많은 문제를 함축해서 보여준다.”(한겨레21 2012년 7월 24일자 이원재의 99%의 경제 ‘작은 냉장고가 아름답다’▶전문 보기)

“자본주의적 삶의 폐단은 모두 냉장고에 응축돼 있다. 자, 지금 바로 냉장고를 열어보자. 보통 위가 냉동실이고 아래가 냉장실로 이루어져 있을 것이다. 냉동실을 열어보자. 검은 비닐 봉투가 정체 모를 고기와 함께 붙어 얼어 있는 덩어리를 몇 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소고기인지, 돼지고기인지 아니면 닭고기인지 헛갈리기만 하다. 심각한 것은 도대체 어느 시절 고기인지 아리송하다. 아니 어쩌면 매머드 고기인지도 모를 일이다. 아니면 냉동실에는 냉동만두가 더 냉동되어 방치돼 있을지도 모른다. 이게 만두인지 돌인지 구별이 안될 정도이다. 보통 이런 돌만두는 새로운 냉동만두를 넣으려다가 발견하기 쉬울 것이다.

다음으로 냉장실을 열어보라. 공장에서 오래 보관해서 먹으라고 플라스틱에 담아 포장한 식품들로 가득할 것이다. 플라스틱에 담긴 생수병과 음료수, 병에 담긴 여러 저장식품들. 냉장실에 잘 보관하면 유통기한 정도는 하루 이틀 정도는 거뜬히 버틸 수도 있을 것 같다. 모든 유통기한은 실온을 기준으로 하니까 말이다. 심지어 호박마저도 진공포장으로 채소 칸에 들어 있다. 그렇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냉동실과 별다른 차이가 없을 것이다. 최근에 대형마트에서 사온 제품들 뒤편에 정체 모를 플라스틱들과 비닐 봉투들이 즐비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오늘은 운이 좋은 날이다. 냉동실과 냉장실에서 정체 모를 봉투들, 유통기한이 지나도 한참이나 지난 식품들을 꺼내서 없앨 수 있으니까 말이다. 사랑스러운 가족들이 그걸 먹고 탈이 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오싹한 일 아닌가. 음식물 쓰레기를 담는 종량제 봉투에 그것들을 모두 쓸어 담아, 집 앞 음식물 쓰레기통에 투척한다. 다시 집에 돌아와 냉장고를 여니 한결 청결해 보인다. 그러나 왠지 허전하다. 냉장고가 비게 되면, 무엇인가 불안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그렇지만 뭐 어떤가? 즐거운 쇼핑 시간이다. 쾌적한 대형마트에서 가족들의 해맑은 웃음과 행복한 미소를 떠올리며 정말 싱싱한 포장식품들을 그득 사오면 되는데 말이다. 행복한 공동체를 원하는가? 재래시장을 살리고 싶은가? 생태문제를 해결하고 싶은가? 가족들의 몸을 건강하게 만들 수 있는 안전하고 싱싱한 식품을 원하는가? 그럼 냉장고를 없애라!”(경향신문 2013년 7월 22일자 철학자 강신주의 비상 경보기 ‘인간다운 삶을 가로막는 괴물, 냉장고’▶전문 보기)

김범수기자 bs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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