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으로 세상읽기] 8월 11일

아니할말로 지겹도록 성 범죄가 끊이지 않는다. 일탈한 장삼이사(張三李四)는 말할 것 없고 교수에 현직 판사, 국회의원, 전직 국회의장에다 이제는 아예 학교 차원의 조직적인 범죄다.

성범죄는 어느 사회에나 있다고 주장할 수 있다. 인도의 사례를 들며 남녀 성비를 탓하거나 남자는 성적 욕구가 더 강하다는 생물학적인(?) 주장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설사 그런 지적이 일면 타당하다손 치더라도, 성범죄가 발생하는 직접적인 이유는 아니다. 문제 해결을 생각한다면 더욱 얼토당토않다. 성범죄는 어차피 막을 수 없는 것 아니냐고 말하고 싶은 건가.

한국사회에서 유난히 두드러져 보이는 성범죄 유형은 ‘권력 쥔 남성이 약한 여성을 상대로 그 짓을 한다’는 것이다. 가부장제의 유산이 여전한 남성 중심의 위계사회라는 점, 그 구도가 그대로 옮겨와 교육문화에 강고한 권위주의가 지배한다는 것, 빈부격차가 갈수록 커지고 능력을 통한 합리적인 신분상승의 기회가 줄어든다는 점 등이 이유일지 모르겠다. 그 밑바탕에는 ‘약자에 대한 배려 부족’이라는 사회구조적인 결함이 자리 잡고 있다.

성범죄가 끊이지 않고 있다. 한국사회에서 나타나는 권력화된 성범죄의 바탕엔 약자에 대한 배려 부족이라는 사회구조적인 결함이 자리 잡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지난해 2월 한 여교사가 회식 장소에서 일어난 성추행을 알렸을 때 학교는 미적지근하게 버티다 가해 교사를 1년 뒤에야 다른 학교로 전출 보냈습니다. 1년여 동안 학생들을 성추행하다 올해 피해 학생 부모의 고소로 경찰 수사를 받고 직위해제된 물리교사는 직위해제 기간 중 학교를 드나들며 체육동호회 활동을 하기도 했습니다. 고통 끝에 피해 학생 중 일부는 전학을 택했습니다. 학교에서 그를 맞닥뜨린 아이들은 “(가해 교사가) 조만간 학교로 돌아올 것 같다”며 자기들끼리 두려움에 떨기도 했습니다.

“나중에 학교를 졸업하면 다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건이 드러난 뒤 서울시교육청의 조사에서 어떤 아이들은 이렇게 답했다고 합니다. “그게 성희롱인지 몰랐어요.” 이렇게 답한 아이들도 있다고 합니다. 학창시절, 우리도 그랬습니다. 어딘지 불쾌해도 한 대 맞을까봐, 괜히 미움받을까봐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성희롱만큼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은 아이들의 두려움 섞인 침묵입니다. 이번 사건이 ‘가해자 처벌’에 그치지 않고 ‘민주적인 학교 문화 만들기’로 끝맺음되어야 하는 이유입니다.”(한겨레신문 8월 8일자 친절한 기자들 ‘선생님들의 성희롱보다 더욱 슬픈 것은’▶전문 보기)

지난 7일 국회 정론관에서 새누리당 여성의원 모임인 '새누리20'의 문정림, 이자스민, 황인자, 민현주 의원(왼쪽부터)이 성추문으로 물의를 빚은 심학봉 의원과 관련, 국회와 당차원의 더욱 적극적이고 강력한 조치를 촉구하고 있다. 오대근기자 inliner@hankookilbo.com

“새누리당 의원 157명 중 여성 의원은 20명이다. 하지만 여성 의원들조차 여성이 피해자인 이 사건에 ‘새누리 20’이란 명의로 성명을 낸 건 심 의원이 탈당한 지 나흘이 지난 7일에서였다. 이들은 “단순히 여성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보고 즉각 나서지 않았다”고 변명했다. 성명을 발표하기 전 열린 조찬 모임에는 19명(김현숙 의원은 청와대 고용복지수석으로 임명돼 제외) 중 모임 회장인 나경원 의원과 간사인 이자스민 의원 등 9명만 참석했다. 성명서의 명칭은 ‘새누리 20’이지만 ‘새누리 9’에 불과한, 반쪽짜리란 비판을 당 바깥 사람들에게 듣는 건 그 때문이다.

늑장 대응이 아니냐는 지적에 한 여성 의원은 “수사가 진행되면서 새로운 사실이 계속 나오고 있지 않느냐”고 반박했다. 하지만 성범죄 혐의가 사실이냐 아니냐를 무색하게 하는 건 국회의원이 평일 대낮에 상임위 회의에도 불참한 채 호텔에 머물고 있었다는 부끄러움이다. 국회의원은 헌법기관이다. 그만큼 소중한 자리다. 국회법 25조는 국회의원에게 ‘품위 유지의 의무가 있다’고도 규정했다. 새누리당 의원들은 국회의원이 장삼이사의 패거리 조직이 아니라 국민을 대표하는 헌법기관임을 곱씹어야 한다.”(중앙일보 8월 10일자 취재일기 ‘새누리당이 부끄러워해야 하는 이유’▶전문 보기)

“성희롱 가해자의 변명과 항변은 일관되다. 성희롱 한 적이 없다, 성적 의도가 없었다, 딸 같아서, 귀여워서 한 말이나 행동이다, 왜 성희롱 현장에서 문제 제기를 하지 않았는가, 그 자리에서 가만히 있다가 시간이 지난 후에 문제 제기를 하는 것은 다른 의도가 있는 것이라는 등 마치 한 사람이 하고 있는 말처럼 들린다.

그러나 성희롱 판단에 있어서 가해자가 어떤 의도를 갖고 있었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합리적 인간 혹은 합리적 여성의 관점에서 가해자의 성적 언동이 성희롱으로 느낄 만하다고 인정될 수 있는 지가 중요하다. 또한 성적 언동이 발생했던 자리에서 피해자가 성희롱이라고 항의를 했거나 거부의사를 표명했는지 여부도 판단에 결정적 요소가 될 수 없다. 고용이나 업무상의 관계에서 가해자는 대부분 지위나, 권한, 성별, 연령 등 사회적으로 인정되는 다양한 권력을 가진 갑의 위치에 있는 경우가 많아서 피해자가 성희롱 상황에서, 혹은 성희롱 직후 항의를 하거나 대처하기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문제 제기 후의 불이익을 염두에 둘 수밖에 없는데, 성희롱을 다른 사람에게 알릴 것을 결정하는 것은 사직이나 학업을 포기할 것을 결심하는 수준에 버금가는 문제라 피해자가 적절한 대응을 못 하기가 쉽다.”(여성신문 1월 16일자 여성논단 ‘성희롱을 멈추게 하자’▶전문 보기)

“심사가 뒤틀린 재벌 3세가 이륙 직전의 비행기를 제멋대로 후진시켰고, 관현악단 경영자는 직원들을 성희롱하고 폭언을 일삼았으며, 대학교수들은 학생과 인턴들을 성추행했다. 이른바 ‘사회 지도층’을 숙주로 삼아 이성을 마비시켜 사회적 몰락을 유도하는 신종 ‘연가시’라도 암암리에 퍼지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러지 않고서야 보통 사람들의 눈에 미친 짓으로 보이는 이 같은 행동을 어떻게 설명한단 말인가. ‘뇌가 권력에 중독되기 때문’이라고 뇌과학자 이안 로버트슨은 저서 승자의 뇌에서 지적한 바 있다. 권력의 경험이 뇌를 바꾼다는 것이다.

승리를 경험하면 혈중에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과 도파민 분비가 촉진되면서 뇌 역시 이에 더 민감해지도록 변화한다. 그래서 더 큰 쾌감을 얻으려면 더 큰 승리가 필요하다.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는 코소보 사태 개입에 성공하자 이후 유권자들의 반대에도 이라크전 개입을 결정했다. 도미니크 스트로스 칸 전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권력욕과 밀접한 성욕 때문에 추락한 경우다. 당초 나라를 혼란에서 구하겠다며 결연히 나선 엘리트 청년 장교가 세월이 지나 철권을 무자비하게 휘두르는 독재자가 되는 것 역시 뇌가 권력에 흠씬 취했기 때문일 것이다.

권력에의 중독은 다른 중독과 메커니즘이 동일하다고 로버트슨은 지적한다. “돈이든 섹스든 권력이든 혹은 마약이든 간에 뇌의 보상체계에 도파민 분출을 강력하고도 반복적으로 촉발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중독에 대한 채울 수 없는 갈망을 거대한 홍수처럼 풀어놓을 수 있다.” 총체적 위기에 빠져서 ‘미친 짓’을 하게 되는 것이다.”(경향신문 2014년 12월 13일자 기자칼럼 ‘권력에 취한 사람들’▶전문 보기)

김범수기자 bs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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