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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성 칼럼] 광복 70주년 박근혜 감독은?

입력
2015.08.10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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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안컵서 빛난 남북 축구팀

슈틸리케 감독의 리더십 돋보여

韓 동북아 외교무대 고립에 한숨

지난 8일 중국 후베이성 우한 스포츠센터에서 열린 동아시안컵 여자축구대회에서 우승과 준우승을 차지한 남북 여자축구대표팀이 시상식에서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8일 중국 후베이성 우한 스포츠센터에서 열린 동아시안컵 여자축구대회에서 우승과 준우승을 차지한 남북 여자축구대표팀이 시상식에서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광복 70주년의 8월, 그라운드에서만큼은 남북이 빛을 발했다. 남북한과 중국 일본 4개국이 겨룬 동아시안컵 축구대회에서 한국 남자대표팀이 정상에 올랐다. 북한 여자대표팀은 3전 전승으로 우승컵을 거머쥐었다. 남자대표팀은 9일 북한을 상대로 일방적 공세를 펼치고도 득점 없이 비겨 1승2무로 경기를 마쳤지만, 뒤이은 경기에서 중국과 일본이 1 대 1 무승부를 기록해 7년 만에 정상에 우뚝 섰다. 일본 남자팀은 꼴찌, 여자팀은 2위 한국에 이어 3위에 머물렀다. 축구에 관한 한 광복 70주년에 확실한 극일(克日)을 이룬 셈이다.

이웃나라 침략과 식민지배를 좀처럼 사과하지 않으려는 아베 일본 총리의 뻔뻔함에 답답했던 가슴이 한 순간 뻥 뚫린 것 같다. 그러나 그라운드 밖 동아시아 역학관계로 시선을 돌리면 답답함은 여전하다. 일본과의 과거사 싸움에서 한국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14일 발표 예정인 아베 총리의 종전 70주년 담화 내용에 따라 성적이 매겨질 것인데, 좋은 성적을 장담하기 어렵다는 게 지배적인 관측이다.

과거사 싸움 말고도 다른 외교 종목의 동아시아 리그에서 박근혜 감독이 이끄는 한국팀의 성적은 부진하기만 하다. 미ㆍ중 각축 속에 한국이 고립되는 양상이 점차 확연해지고 있다. 과거사 한일전을 관전하는 미국 입장에선 일본 편을 드는 게 유리하다는 판단을 내린 게 분명하고, 중국과 일본은 면전에선 악착같이 싸우는 것 같아도 뒤로는 좋은 게 좋은 것 아니냐며 타협을 모색하는 기색이다. 우리가 이쪽 저쪽서 러브콜 해온다고 기분 좋아하는 사이 어느 순간에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을지 모를 형국이다.

박근혜 정부는 ‘통일 대박론’ 기치를 내걸고 에너지를 쏟아 붓고 있지만 남북관계는 최악이다. 동아시안컵 여자팀 1, 2위를 한 북ㆍ남 선수들은 시상식에서 언니 동생 자매 같이 정답게 안부를 묻고 대화를 나눴다. 그와 전혀 딴판으로 한반도 허리를 가로지른 군사분계선(DMZ)상에서는 남북 젊은이들이 싸늘한 총구를 겨누고 있고, 며칠 전엔 북측이 매설한 지뢰가 터져 꽃다운 남측 젊은이들이 치명적 부상을 당했다.

우리군은 즉각 대북 경고성명을 통해 “도발에 응당하는 혹독한 대가를 치르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천안함 사건이 몰고 온 것과 같은 사태가 또 벌어질 개연성이 높은 상황이다. 일말의 기대를 걸었던 김대중 전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의 방북까지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기고 끝난 지금, 남북 사이에 갈등을 관리하고 조정할 어떤 기제도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남북 긴장이 급격히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또 하나의 중요한 게임이 진행 중이다. 9월3일 베이징에 열리는 중국의 항일승전 70주년(전승절) 기념행사다. 청와대는 10일 박 대통령이 이 행사 참석 여부를 “제반 사항을 고려해 신중하게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은 5월 러시아의 2차대전 승전 70주년 행사에는 “제반 사항을 신중하게 고려”한 끝에 불참한 바 있다. 이 행사엔 북한 김정은 제1국방위원장의 참석 여부로 관심을 모았지만 결국 그도 불참했다.

중국의 전승절 행사도 남북 정상의 참석 여부가 큰 관심거리로 부상하고 있다. 미ㆍ중ㆍ 일 그리고 남ㆍ북의 이해와 역학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동아시아 구도 상 남북 정상의 행사 참석 의미가 남다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그 어떤 나라의 이익이나 요구가 아니라 바로 우리의 이익과 관점이다. 그에 더해 “제반 사항”이라는 외부 조건에 스스로를 얽맬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유리한 상황을 만들어 가는 적극적 자세가 필요하다.

슈틸리케 감독은 과거 히딩크 감독처럼, 어떤 외부 간섭도 배제한 채 다만 선수의 기량과 발전 가능성만을 보고 대표팀을 꾸리고, 경기를 지휘하면서 기대에 부응하는 성과를 얻어내고 있다. 동아시안컵 우승은 그의 한국축구 비전과 리더십이 통하고 있다는 증거다. 광복 70주년을 맞고 있는 지금 대한민국을 이끄는 박근혜 감독에게는 정녕 그런 비전과 리더십을 기대할 수 없는 것일까.

수석논설위원 wk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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