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주의 '청산별곡'] 6. 후타오샤 트레킹

지혜로운 어머니께 “여름 휴가 때 중국으로 등산을 가요”라고 말씀 드렸더니, “비가 와서 계곡물이라도 불어나면 넌 그대로 죽은 목숨이다”라는 지청구가 벼락 같이 떨어졌다. 설사 계곡물에 쓸려가는 일은 없더라도 해외 트레킹에 따라올 수많은 ‘변수’를 걱정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난생 처음 가보는 동네에, 고산병까지 안고 해발 수천 미터의 탐방로를 헤맨다고 생각하니 두려움이 앞선 것도 사실이다. 정보의 바다를 헤엄치며 사전 정보도 철저히 조사했지만 그렇다고 먼 땅을 손바닥 안에 놓고 훤히 볼 수는 없는 노릇.

고산 지대에 도착하기 전에 미리 복용해야 하는 고산병 예방 치료제.

하지만 범 무서워 산에 못 가랴! 한국에도 오를 산이 많지만 시간과 기회가 주어졌을 때 해외 트레킹에 도전하기로 했다. 목적지는 후타오샤(虎跳峽). 중국 서남부 윈난성의 관광지인 샹그릴라, 리장과 가까운 후타오샤는 최근 몇 년 사이 한국에 걷기 열풍이 불면서 국내에 알려졌다. 윈난성은 ‘춘성(春省)’으로 불릴 만큼 사시사철 봄 날씨에 가까워 트레킹에 제격인 곳이다. 국내에서 윈난성의 대표 국제공항인 쿤밍 창수이 공항까지 직항으로는 약 4시간이 걸린다.

후타오샤는 해발 5,396m의 하바쉐산(哈巴雪山)과 5,596m의 위룽쉐산(玉龍雪山) 사이의 협곡을 이르는 말인데, ‘호랑이가 건너 뛸 정도로 좁은 협곡’이라고 해서 지금의 명칭이 붙었다. 협곡의 폭이 가장 좁은 곳은 30m에 불과해 사냥꾼에게 쫓기던 호랑이가 바위를 밟고 건너갔다고 전해진다. 16km에 달하는 좁은 협곡을 따라 양쯔강의 상류인 진사강 물결이 시종 협곡의 양쪽 벽을 세차게 때리며 흘러가는 곳이다.

코스 초입에서 바라본 위룽쉐산. 용이 꿈틀거리는 것과 닮았다는 13개의 봉우리는 구름 사이로 살짝살짝 얼굴을 드러낸다.

후타오샤의 트레킹 코스는 인류 최고(最古)의 교역로인 차마고도의 일부로, 뉴질랜드의 밀포드 사운드와 페루 마추픽추의 잉카 트레일과 함께 세계3대 트레킹 코스로 꼽힐 만큼 미경을 자랑한다. 치마자락처럼 펄럭이는 듯한 위룽쉐산을 오른쪽에 두고 하바쉐산의 능선을 1박2일 또는 2박3일 동안 둘러 걸어가게 된다. 나와 친구는 첫째 날 6시간, 둘째 날 5시간 반 정도 산행을 해서 총 1박2일을 걸었다.

5,000m 정상에 오르는 것이 아니라 능선을 따라 천천히 걷는 코스이기 때문에 어린 학생들도 완주가 가능하다. 현지에서 만난 한 한국인 가족은 초등학생, 중학생 자녀와 함께 2박3일 동안 후타오샤 트레킹에 도전했다. ‘28굽이’(28bends)라 불리는 가파른 산길이 가장 난코스인데, 마부들이 말을 타고 가라고 유혹하기도 한다. 시간을 단축할 수는 있지만 낭떠러지를 따라서 난 좁은 길을 말에 의지해 가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갈림길은 거의 없고 중간중간 바위에 칠해진 빨간 화살표가 길잡이 역할을 한다.

후타오샤 트레킹 코스 및 구간별 예상 소요시간. 현지인들이 나눠주는 지도를 그대로 믿었다가는 산행 내내 '희망고문'에 시달릴 수 있다. 한국인의 발로는 훨씬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트레킹 코스가 워낙 길기 때문에 한번 들어서면 되돌아갈 수 없다. 하지만 중간중간 커잔(客棧)이 있어서 다행스럽다. 커잔은 중국어로 숙박시설을 이르는 말인데, 소수민족인 나시족 가족이 운영하는 ‘나시커잔’, 차를 마시며 말을 쉬게 하는 ‘차마커잔’, 코스의 한가운데 위치해 가장 번화한 ‘중투커잔’ 등이 대표적이다. 많은 등산객들의 종착점인 ‘티나커잔’ 역시 다양한 편의시설을 제공한다. 우리 일행은 당초 중투커잔에서 1박을 하기로 계획했지만 기상 악화로 차마커잔에서 묵었다. 산 속에 있지만 따뜻한 물과 전기장판이 제공될 정도로 안락하다.

평균적으로 2~3시간에 한번씩 커잔이 있는 산악 마을을 만날 수 있다. 이곳에서 잠시 차를 마시면서 여독을 풀거나 하루 묵기도 한다.
차마커잔에서 바라본 위룽쉐산의 저녁.

후타오샤가 즐거운 이유는 사람 만날 일보다 동물을 볼 일이 더 많기 때문이다. 풀어 기르는 닭들은 한가롭게 마을 어귀까지 산책을 나와 있다. 말들은 대부분 워낭을 달고 있기 때문에 트레킹 도중에도 워낭소리가 심심찮게 들려온다. 우리는 운 좋게도 중투커잔에서 티나커잔으로 가는 길에 수십 마리의 염소떼와 함께 걸을 수 있었다. 목동도 없이 걷는 염소들은 깎아지른 듯한 절벽에서도 능청스럽게 풀을 뜯는다. 등산객들로 붐비는 한국의 산과는 또 다른 모습이다.

염소들이 차례대로 폭포를 건너고 있다. 기자도 줄을 서서 순서를 기다린다.

한편으로는 차마고도에 대한 환상이 깨지는 곳이 후타오샤이기도 하다. 이곳을 여러 번 찾았다는 한국인 등산객에 따르면 최근 몇 년 새 협곡을 따라서 시멘트 공장이 들어섰고, 이에 따라 트레킹 코스도 일부 변경됐다고 한다. 매표소에서 나시커잔까지 가는 코스 일부는 공사장 차량이 오가는 포장도로로 바뀌었다. 일부 한국인 산악회의 고성방가가 고즈넉한 커잔의 분위기를 깨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한시라도 빨리 후타오샤를 찾는 것이 좋다. 차마고도의 아름다움이 더 많이 남아있을 때 후타오샤를 느끼고 싶다면 말이다.

●후타오샤에 초대된 식객

‘등산 먹방’은 후타오샤에서도 계속됐다. 희한하게도 ‘좀 쉬어가야겠다’ 싶은 곳에는 항상 나시족 상인들이 과일, 물, 초콜릿 등을 판매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오이는 한국에서나 중국에서나 단골메뉴인 듯하다. 먹기 좋게 오이 껍질을 벗겨 준다는 점이 차이점이다. 애플망고 등 이국적인 과일들도 맛볼 수 있다.

위에서부터 차마커잔에서 먹었던 야크 국수, 나시 바비큐, 고향의 맛을 내는 컵라면.

본격적인 등산 먹방이 이뤄지는 곳은 커잔이다. 중국인과 아시아 이웃들뿐 아니라 유럽 등 세계 각지에서 등산객들이 찾아오는 곳이기 때문에 커잔에서 파는 음식들은 현지식이긴 해도 꽤 먹을 만하다. 우리가 묵었던 차마커잔에서는 한국식 삼계탕도 판다. 윈난성에서만 맛볼 수 있는 별미는 야크 고기. 고산지대에 사는 야크는 이곳 식탁에 자주 오른다. 지친 몸에 막걸리는 못 걸쳐도 한국에서 7,000~8,000원에 파는 중국 맥주를 절반도 안 되는 가격에 살 수 있다는 사실이 위안이 된다.

●중후타오샤, 호랑이가 건너간 바위를 찾아서

중후타오샤는 말 그대로 ‘옵션’이다. 후타오샤 트레킹을 마치고도 힘이 남는 등산객들은 티나커잔에서 점심식사를 한 뒤 중후타오샤를 들른다. 협곡의 가장 아래 부분인 진사강 근처까지 내려가는 코스다. 왕복 2시간 정도밖에 소요되지 않지만 평지는 전혀 없는 오르막 내리막 코스이기 때문에 1박2일 트레킹으로 지친 등산객들을 고민에 빠지게 한다. 이미 ‘28굽이’에 데인 이들은 협곡으로 내려가는 도중에 포기하기도 하지만, 진사강 물결의 우렁찬 소리가 발걸음을 재촉한다. 하바쉐산과 위룽쉐산이 얼마나 가까이 맞닿아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장소다.

윈난성은 7~8월이 우기다. 비가 많이 내려서 호랑이가 딛고 건너갔다는 바위는 물 속에 잠겨 보이지 않는다.

mem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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