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으로 세상읽기] 8월 6일

“저는 우리 일본이 선조들의 ‘도의(道義)국가실현’이라는 원대한 이상을 기초로 생겨난 나라라고 믿습니다. 그리고 우리 국민들은 충효라는 양대 기본을 주축으로 전국민이 합심하여 노력한 결과 오늘날에 이르는 훌륭한 성과를 이루게 된 것입니다. 이는 원래 타고난 일본의 국체가 훌륭하기 때문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만, 더불어 저는 교육의 근본 또한 ‘도의입국’을 달성하는데 있다고 믿습니다.

국민 모두는, 자식은 부모에 효를 다하고 형제 자매는 서로 힘을 합쳐 도우며 부부는 사이 좋게 지내며 친구는 서로를 믿으며 그리고 자신의 언동을 신중하게 하고 모든 사람들이 사랑의 손을 뻗어 학문에 힘쓰며 직업에 전념하고 지식을 쌓으며 인격을 닦고 더욱 나아가 사회공공을 위해서 공헌하며 또 법률이나 질서를 지키는 것은 물론이며 비상사태가 발생했을 경우에는 신명을 다해서 나라의 평화와 안전을 위해 봉사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리고 이것들은 선량한 국민으로서 당연한 것뿐만이 아니라 또 우리들의 선조가 지금까지 물려준 전통적 미풍을 한층 밝게 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국민이 걸어가야 할 이 길은 선조의 교훈으로서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이것은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변하지 않는 바른 가르침이기 때문에 나도 국민 여러분과 같이 조상의 가르침을 가슴에 안고 훌륭한 일본인이 되도록 마음으로부터 염원합니다.”(1890년 10월 30일 메이지 일왕이 발표한 ‘교육칙어(敎育勅語)’)

일본의 '교육칙어'(왼쪽)와 한국의 국민교육헌장.

일본은 전쟁에 패하고 3년 뒤 이 교육칙어를 군국주의 교육을 조장한다는 등의 이유로 폐지했다. 그로부터 20년 뒤.

“우리는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조상의 빛난 얼을 오늘에 되살려, 안으로 자주 독립의 자세를 확립하고, 밖으로 인류 공영에 이바지할 때다. 이에, 우리의 나아갈 바를 밝혀 교육의 지표로 삼는다.

성실한 마음과 튼튼한 몸으로, 학문과 기술을 배우고 익히며, 타고난 저마다의 소질을 계발하고, 우리의 처지를 약진의 발판으로 삼아, 창조의 힘과 개척의 정신을 기른다. 공익과 질서를 앞세우며 능률과 실질을 숭상하고, 경애와 신의에 뿌리박은 상부상조의 전통을 이어받아, 명랑하고 따뜻한 협동 정신을 북돋운다. 우리의 창의와 협력을 바탕으로 나라가 발전하며, 나라의 융성이 나의 발전의 근본임을 깨달아,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다하며, 스스로 국가 건설에 참여하고 봉사하는 국민 정신을 드높인다.

반공 민주 정신에 투철한 애국 애족이 우리의 삶의 길이며, 자유 세계의 이상을 실현하는 기반이다. 길이 후손에 물려줄 영광된 통일 조국의 앞날을 내다보며, 신념과 긍지를 지닌 근면한 국민으로서, 민족의 슬기를 모아 줄기찬 노력으로, 새 역사를 창조하자.”(1968년 12월 5일 박정희 대통령이 발표한 ‘국민교육헌장’)

문민정부가 들어서 국민교육헌장이 교과서에서 사라지고 기념행사도 폐지된 지 21년.

“제1조(목적) 이 법은 ‘대한민국헌법’에 따른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보장하고 ‘교육기본법’에 따른 교육이념을 바탕으로 건전하고 올바른 인성(人性)을 갖춘 국민을 육성하여 국가사회의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제2조(정의) 이 법에서 사용하는 용어의 뜻은 다음과 같다.

1.“인성교육”이란 자신의 내면을 바르고 건전하게 가꾸고 타인ㆍ공동체ㆍ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인간다운 성품과 역량을 기르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교육을 말한다.

2.“핵심 가치ㆍ덕목”이란 인성교육의 목표가 되는 것으로 예(禮), 효(孝), 정직, 책임, 존중, 배려, 소통, 협동 등의 마음가짐이나 사람됨과 관련되는 핵심적인 가치 또는 덕목을 말한다.…

제4조(국가 등의 책무) ①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인성을 갖춘 국민을 육성하기 위하여 인성교육에 관한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정책을 수립하여 시행하여야 한다.

②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학생의 발달 단계 및 단위 학교의 상황과 여건에 적합한 인성교육 진흥에 필요한 시책을 마련하여야 한다.

③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학교를 중심으로 인성교육 활동을 전개하고, 인성 친화적인 교육환경을 조성할 수 있도록 가정과 지역사회의 유기적인 연계망을 구축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④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학교 인성교육의 진흥을 위하여 범국민적 참여의 필요성을 홍보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⑤국민은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가 추진하는 인성교육에 관한 정책에 적극적으로 협력하여야 한다.

제5조(인성교육의 기본방향) ①인성교육은 가정 및 학교와 사회에서 모두 장려되어야 한다.

②인성교육은 인간의 전인적 발달을 고려하면서 장기적 차원에서 계획되고 실시되어야 한다.

③인성교육은 학교와 가정, 지역사회의 참여와 연대 하에 다양한 사회적 기반을 활용하여 전국적으로 실시되어야 한다.…”(2015년 7월 21일 시행 ‘인성교육진흥법’▶전문 보기)

일명 '이준석 방지법'이라고 불리는 '인성교육진흥법'이 지난달 21일부터 시행됐다. 사진은 지난해 4월 전남 진도군 조도면 인근 해상에서 세월호 침몰사고가 났을 때 이준석(빨간 원형) 선장이 승객들을 내팽개치고 속옷차림으로 탈출하고 있는 모습. 서해지방경찰청 제공

“인성교육진흥법이란 것이 생겼고, 지난 14일 국무회의를 통과하여 어제부터 본격적인 시행에 들어갔다. 이 법은 지난해 4월 있었던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만들어 일명 ‘이준석 방지법’이라 불린다. 당시 승객들을 팽개치고 혼자 살겠다고 배를 빠져 나온 세월호 이준석 선장과 같은 사람이 있어서는 안되겠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배경이었다.…‘선장이 되기 전에 인간이 돼라’에서부터 ‘감독관이 되기 전에, 공직자가 되기 전에, 장ㆍ차관이 되기 전에 인간이 돼라’는 의미까지 포함하고 있다.…인성교육진흥법이 생길 때부터 논란이 많았고, 수많은 의견들이 쏟아져 나왔다. 본격적인 시행을 맞으며 딱 두 가지만 지적하고 싶다. 결과적으로 법 시행이 의미가 없을 터이니 지금이라도 그만 두는 게 낫겠다는 것, 굳이 계속 시행하려 든다면 인성교육 대상자의 초점을 청소년이 아니라 교사와 어른에게 맞춰야 한다는 점이다.

학생들에게 법으로 인성교육을 강제하겠다는 발상은 어른들에서 나왔다. 세월호 참사를 되돌아보면 누가 인성교육의 대상인지 분명하다.…인성교육진흥법이 목표로 제시한 8대 가치는 예절 효행 정직 책임 존중 배려 소통 협동이다. 당시 배 안에 있었던 학생들이 이러한 인성이 부족하여 참사를 당했던 게 아니다. 배 밖에 있었던 어른들이 이러한 인성을 팽개쳤기에 참사가 발생한 것이다. 새로 시행되는 인성교육진흥법에 청소년들이 크게 의아해 하는 이유는 명백하다. 대상자가 수긍하지 않는 교육은 의미가 없다.”(한국일보 7월 22일자 정병진 칼럼 ‘인성교육진흥법 시행 유감’▶전문 보기)

“새천년이 열린 지도 15년이 지난 시점에 교육현장을 40년 전으로 되돌리는 기막힌 법이 태어났다. 정의화 국회의장이 대표발의하여 본회의 참석 의원 199명 만장일치로 가결되었으며, 7월21일부터 시행되는 인성교육진흥법. 이제 2학기부터 전국 방방곡곡 학교에서 희한한 일들이 벌어질 모양이다. “올바른 인성을 갖춘 국민을 길러내기 위해”(제1조) 이 법이 제정되었다고 한다. ‘시민’이 아니라 ‘국민’이라는 표현을 눈여겨봐야 한다. ‘인성성취기준’을 정하고 교육과정을 편성한다고 한다. 효도1급 예절2급 따위 어이없는 인증이 난립하게 될 것이다.…

‘효’라고 하니, 아흔네살 아버지와 두 아들이 벌이는 롯데 일가의 막장드라마가 퍼뜩 떠오른다. ‘예’라고 하니 강간인지 화간인지는 알 수 없으나 어쨌든 성관계를 끝내고 여성에게 30만원을 주었다는 새누리당의 어느 국회의원이 떠오른다. 그들에게 ‘효’와 ‘예’를 배양하기 위해 인성교육 특강을 들어야 한다고 권고하면, 그들은 아마도 ‘효’와 ‘예’는 내면의 가치이기 때문에 수업으로 배울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손사래를 칠 것이다. 세월호 사건을 겪고서 이준석 선장 같은 이들을 만들지 않기 위해 이 법을 제정했다고 한다. 이준석을 앞장세워 자신들은 뒤로 숨고, 세월호로 죽임 당한 아이들의 친구들에게 ‘인성교육법’이라는 회초리를 드는 이 어이없는 폭력이란.”(한겨레신문 8월 4일자 세상읽기 ‘님들 인성이나 챙기삼’▶전문 보기)

“인성은 사회적 환경, 가정, 제도 교육이 모두 영향을 미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사회, 가정, 제도 교육 모두 인성 교육을 위한 여건을 전혀 갖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승자 독식’이 키워드인 우리 사회는 언제부턴가 정의와 배려는 찾아보기 어렵고 이기와 부패, 거짓이 오히려 인간다움을 무너뜨리고 있습니다. 오늘도 언론을 통해 청소년들이 보고 배우게 되는 우리 사회의 모습, 과연 어떻습니까? 1등만 기억하는 세상 속에서 입시 경쟁의 늪에 빠져 있는 우리들 가정의 모습은 또 어떻습니까?…진학 실적으로 학교와 교사의 능력이 평가되고 그래서 모든 과정이 입시에 맞춰진 제도 교육 현장에서 생각해 보면, 우리 청소년들, 교육을 통해 올바른 가치관을 형성해 가는 일 어림도 없습니다.

지금의 교육 현실대로라면 우리나라 청소년들은 사교육과 학업 경쟁에 내몰려 진정한 인간적 가치와 삶에 대해 생각할 겨를도 없이 어른이 되어버립니다. 그리고 그들이 권력층이 되고, 서민층이 되고, 낙오자가 되기도 합니다.…현장 교사로서의 여러 가지 우려와 고뇌 속에서 메말라는 가지만 어루만지는 인성 교육이 아니라 죽어가고 있는 나무를 살려낼 수 있는 진정성 있는 인성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절박감으로 감히 인성 교육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관계자분들께 몇 가지 당부 드리고 싶습니다. 먼저 기왕에 정부 차원에서 인성 교육의 절실함을 인식하게 되었으니 진정으로 인성이 바로 서게 하기 위해서라면 좀 더 진지한 철학적, 교육적 고민을 바탕으로 한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방안들이 모색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학교 울타리 안에만 강요하지 않고 이번 기회에 반드시 전 국가 차원의 실제적인 공동 노력이 될 수 있도록 힘써주기를 바랍니다.”(오마이뉴스 8월 5일 주장 ‘인성교육이 파탄 나버린 진짜 이유는?’▶전문 보기)

26일 서울 중구 남산공원 호현당에서 열린 인성교육 프로그램 '나는 예의바른 어린이'에 참여한 학생들이 예절 교육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인성교육을 통해 우리가 기대하는 것은 인성의 덕목들이 사회 전체에 구현됨으로써 모두가 행복하고 살아갈 만한 사회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인성을 점수화해서 효도 1등급, 2등급 식으로 서열화하는 것은 옳지 않다.…인성교육이 국민교육헌장처럼 국민의 인성을 국가에 복종하는 방향으로 길들이는 데 쓰일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바른 인성에는 민주주의의 가치를 구현하기 위해 독재에 피로 항거하고 국가폭력에 저항하거나, 업무현장에서의 비리를 드러내고 고치는 용기도 포함된다.

더 중요한 점은 인성교육이 학교 수업 등 정규 교육과정만으로는 달성되기 어렵다는 것이다.…아이들은 학교와 가정에서 예의와 정의, 책임을 배우지만, 부모와 다른 어른들의 행동, 특히 사회지도층의 행동에서 정반대의 것을 보고 배울 것이다. 의사 양성을 전문으로 하는 의학교육 분야에서 인간행동의 변화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강조할 때 하는 이야기지만, 교실에서 환자 존중, 의료 윤리를 아무리 가르쳐도 결국은 병원 실습 중에 관찰한 선배 의사들의 일탈행동을 따라가게 된다.…우리 아이들은 어른들의 세계에 정직, 정의, 책임 같은 덕목이 얼마나 부족한지 이미 경험적으로 잘 알고 있다. 용기 있는 자가 더 고통 받는 세상이라는 것도 안다. 배를 책임지고 있는 어른 선원들이 하라는 대로 하면 죽는다는 것도 이미 배웠다. 식민지 지배에 저항하는 독립운동을 하면 후대에도 계속 가난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도 배웠다. 자기 기만을 잘해야 정치인이 될 수 있다는 것도 배웠다. 교실과 현실의 괴리, 이 냉소주의를 어떻게 할 것인가?”(경향신문 8월 5일자 공감 ‘인성교육, 중요한 것은 롤모델이다’▶전문 보기)

김범수기자 bs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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