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으로 세상읽기] 8월 5일

청부살인, 근친상간, 생모와 계모, 외도, 혼외출산, 폭력…. 막장 드라마에 공식처럼 등장하는 소재들이다. 여기에 또 하나 보탤만한 것이 ‘재벌 집안’이다. “재벌가 이야기는 막장 드라마의 단골 소재다.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해 시청률을 끌어올리는 데는 일반의 삶과 담 쌓은 재벌의 내밀한 민낯만한 게 없다. 물론 내용은 호의적일 리 없다. 정치권 로비에 비자금 조성 및 횡령, 편법 상속, 경영권 승계 등 돈과 권력을 탐하다 벌어지는 가족들의 음모와 혈투, 측근들의 권모술수와 암투, 불륜 등이 거친 언어와 함께 드라마를 구성한다.”(한국일보 8월 4일자 지평선 ‘막장 드라마’▶전문 보기)

그런데 한국에서는 드라마에서만이 아니라 현실에서 이런 재벌가의 ‘막장’ 싸움을 종종 본다. 국내 기업 서열 5위에 한국과 일본에서 동시에 사업을 벌이는 드문 대기업 롯데의 경영권 다툼은 그 중에서도 하이라이트다. 드러난 민낯은 아버지가 아들을 때렸다더라거나, 아들이 아버지 앞에 무릎 꿇고 용서를 빌었다더라거나 하는 이야기들만이 아니다. 그보다 훨씬 추한 것은 한 줌 지분을 갖고 수십 개 기업을 좌지우지하는 황제경영, 다퉈서 뺐든 물려 받든 가족끼리 나눠 먹는 세습경영 같은 전근대적인 기업 경영방식이다.

'롯데 드라마'의 주요 등장인물. 왼쪽부터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 신격호 총괄회장, 신동주 전 일본롯데 부회장, 시게미쓰 하쓰코(重光初子) 신 총괄회장 부인, 신선호 일본 산사스 사장.

“이런 막장 드라마가 없다. 구순 아버지는 손가락으로 임원의 해임을 지시하고, 큰아들은 아버지의 지시서와 육성을 언론에 흘리며 쿠데타를 꾀하고, 작은아들은 연신 머리를 조아리면서 국민에게 사과했지만 주주에 대한 책임은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이것이 재계 서열 5위 롯데그룹의 민낯이다. 재벌 체제가 봉건 왕조와 닮았다는 비판은 새삼스러운 것도 아니지만 롯데그룹은 정말로 이례적이다. 총수 일가의 지분이 2.41%에 불과하니 ‘오너’라고 부르기에 민망하다. 그럼에도 80개 국내 계열사 사이에 416개의 순환출자 고리가 만들어져 총수 일가의 왕조적 지배력을 지탱하고 있다. 그나마 2년 전 9만5033개(!)에 이르던 순환출자 고리가 많이 정리된 것이 이 수준이다.…롯데그룹의 소유ㆍ지배 구조는 시대착오적이다. 바뀌어야 한다는 것은 분명한데 문제는 변화를 이끌 주체다. 총수 일가가 대오각성해서 스스로 환골탈태한다면 좋겠지만 지난 20년간의 소액 주주 운동 경험으로 보건대, 그럴 가능성은 없다. 외부 자극이 없으면 기업은 바뀌지 않는다.…결국은 주주를 비롯한 시장의 이해관계자들이 자신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스스로 행동할 수 있도록 법제도 환경과 사회 분위기를 만드는 수밖에 없다.…경영권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는 것이 아니라 시장과 사회로부터 승인 받는 것임을 깨우쳐주어야 한다. 그것이 우리의 소중한 기업을 지키는 길이다.”(조선일보 8월 5일자 시론 ‘경영권 승계가 집안일인가’▶전문 보기)

“고도성장기였던 1960년대부터 빚으로 기업을 키우는 행태는 골칫거리였다. 이에 69년 청와대에 부실기업 대책반이 생겼다. 한데 이후 정책은 그 유명한 8·3조치(72년)로 사채를 동결해주고, 이후에도 5·29, 9·28, 6·27 조치 등 부채를 완화해주는 조치 일색이었다. 이렇게 ‘우국충정’이었든 ‘대마불사’의 배짱이었든 대기업들은 우리 사회의 정책적 지원과 특혜를 통해 몸집을 불려온 게 사실이다. 게다가 최근엔 낮은 지분 구조 때문에 경영권이 공격받자 경영권 방어법도 만들어주려는 참이다. 이처럼 다른 나라 기업들보다 우리 대기업들은 ‘사회적 부채’가 훨씬 크다. 한데 그들의 행태엔 ‘부채의식’도 ‘예의’도 없다. 삼성ㆍ현대ㆍ두산ㆍ금호ㆍ롯데에 이르기까지 후계를 둘러싸고 ‘형제의 난’이 벌어졌고, 패배한 형제가 투신자살을 한 경우도 있다. 원래 ‘부잣집엔 없는 게 우애’라는 말처럼 재산 분쟁이야 그럴 수 있다 치자. 또 아버지 잘 만나 부자로 산다는데 누가 뭐랄 일도 아니다. 한데 경영은 시장에서 검증된 경영인이 하는 것이다. 세습지위가 아니다. 쥐꼬리 지분으로 세습된 경영권을 지키기 위해 기업가가 범죄를 저지르고, 형제싸움으로 공조직인 기업을 위태롭게 하는 게 용인돼선 안 된다. 우리의 ‘재벌정서법’은 재벌들이 받은 특혜에 대한 예의를 지키라는 국민적 요구이기도 하다.”(중앙일보 8월 5일자 양선희의 시시각각 ‘왜 경영권이 세습돼야 하나’▶전문 보기)

지난 3일 오후 김포공항을 통해 귀국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서재훈기자 spring@hankookilbo.com

“인간은 으레 다툰다.…문제는 다툼의 규칙이고, 다툼에 걸린 판돈이다. 세속의 이해관계가 얽힌 다툼일지라도 사회질서에 어긋나는 수단을 사용하는 건 곤란하다. 하물며 총수 일가의 경영권 분쟁이라면 공정한 규칙의 필요성은 두말할 나위 없다. 법률로 정해진 제도(이사회ㆍ주주총회)를 무력화시킨다거나, 총수 또는 총수 일가라는 위세를 내세워 경영진을 줄 세우는 따위의 행위는 엄연히 반칙이다. 판돈만 해도 그렇다. 지분 0.05%를 쥔 총수, 2.41%를 쥔 총수 일가가 주인공인 혈투다. 싸움은 ‘그들끼리’ 벌이는데, 자기(네) 돈의 40~2000배 가까운 ‘남의 돈’이 판돈으로 내걸렸다. 물론 싸움에서 이기면 몽땅 독차지다. 자산 규모 93조의 기업군, 수십만의 종업원과 그 가족, 주주, 고객 그리고 국민경제의 위상을 볼모로 잡은 그들만의 ‘노 리스크, 슈퍼하이 리턴’ 다툼이다. ‘이익은 내 것, 위험은 네 것’. 이건 결코 자연인의 지지고 볶는 다툼이 아니다.…어느 나라나 현실적으로 최대주주는 자신이 보유한 소유권을 능가하는 의결권을 행사하는 법이지만, 한국의 재벌처럼 실제 지분과 그룹 지배력의 괴리 정도가 상상을 초월하는 곳은 없다. 결과는 (첫번째) 오너가 (두번째) 오너를 멀리 쫓아낸 꼴이다. 일찍이 귤이 회수를 건너 탱자가 되었듯이, 오너란 단어가 우리 땅에 들어와 의미가 변질한 건 지금 우리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막장 드라마의 먼 배경쯤 되겠다. 2015년 여름, 잠시 롯데가 삼부자로 빙의한 재벌 총수 일가는 우리 사회에 널려 있다. 스스로 주인공이 돼 무대에 설 차례를 기다리고 있을 뿐.”(한겨레신문 8월 5일자 아침햇발 ‘롯데가 준 선물’▶전문 보기)

롯데의 경영권 다툼과 놀랍도록 닮았다는 드라마 '황금의 제국'의 한 장면. SBS 제공.

“삼성, 현대, LG, SK에 이어 재계 서열 5위인 롯데그룹 오너 일가의 경영권 분쟁은 재벌이 주도하는 한국경제의 미래가 위태롭다는 것을 예고한다.…롯데사태의 근본원인은 재벌기업의 총수 지배체제와 경영권 세습에 있다. 결국 재벌기업의 지배구조가 문제의 근원이다. 자수성가한 입지전적 인물인 재벌 총수가 황제처럼 군림하는 기업, 노동자의 권익이나 주주의 권리보다 총수를 비롯한 오너 일가 이익의 극대화를 위한 경영을 하는 기업, 2세·3세에 대한 경영권 세습을 당연시하는 기업, 이런 재벌기업의 지배구조와 경영방식이 현대에서, 롯데에서 이른바 ‘왕자의 난’을 초래했다.…국민경제에 손해를 입히는 무능한 재벌 2세, 3세가 국민경제의 운명을 좌우하는 재벌기업을 세습해서는 안 된다. 경영능력이 검증된 자손에게 경영권이 승계되더라도 총수의 전횡을 막기 위한 견제와 균형의 기업지배구조가 구축되어야 한다. 글로벌 기업을 이끌 경륜을 갖춘 가장 유능한 적임자가 경영권을 가지고 노동권을 존중하며 주주, 노동자, 소비자, 지역주민의 공동이익을 위해 가치를 창출하는 이해관계자 자본주의형 기업지배구조를 구축해야 한다.…50대 재벌기업의 부가가치는 GDP의 12%에 달하고 30대 재벌의 매출액 비중은 3할을 넘는다. 이처럼 국민경제를 좌우하는 재벌기업의 지배구조를 개혁해야 재벌기업의 리스크를 줄일 수 있고 한국경제의 리스크를 없앨 수 있다. 정부의 경제민주화 정책과 재벌기업의 자기혁신이 결합된 재벌개혁이 요청된다. 지금 노동개혁보다 먼저 재벌개혁이 일정에 올라야 한다. 이 정부에 들어 사라진 경제민주화 의제를 불러내야 한다."(경향신문 8월 5일자 시론 ‘‘롯데 사태’와 한국경제의 미래’▶전문 보기)

“동실조과의 교훈을 떠올리게 만드는 사건들이 재벌들에게 유난히 많은 것은 결국 잘못된 부의 세습 때문이 아닐까 싶다. 1970, 80년대 고도 성장기에 정경유착으로 성장한 재벌들은 2, 3세들에게도 부의 재분배나 가진 자의 의무인 노블리스 오블리주보다 돈에 대한 집착만 물려준 게 아닌가 싶다. 그렇다 보니 결코 사회공헌이나 일자리 확대를 위해 재벌가에서 다툼이 일었다는 소리는 들어보지 못했다. 이는 곧 돈이면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는 천민 자본주의의 전형이다."(한국일보 8월 3일자 편집국에서 ‘롯데가의 동실조과(同室操戈)’▶전문 보기)

막장, 막장 하는데도 그런 드라마가 없어지지 않는 건 그것을 즐기는 시청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재벌 기업의 상속ㆍ경영권 분쟁이 그것을 보고 즐기는 사람들이 있어서 끊이지 않는 건 물론 아니지만, 이번 롯데 사태를 전하는 일부 언론의 보도에서는 막장 드라마를 은근히 즐기는 듯한 느낌도 받는다. 독자나 시청자 핑계를 대려고 하겠지만, 이 또한 막장이다.

김범수기자 bs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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