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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모 칼럼] '인터스텔라'는 틀렸다

입력
2015.08.04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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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종(滅種). 이 말을 듣고 “와! 신난다! 정말 멋진 일이야!”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사실 멸종은 그렇게 심각하고 우울한 단어만은 아니다. 왜냐하면 멸종이야말로 지구에서 생명이 끊임없이 이어지게 해 준 결정적인 힘이기 때문이다.

5억년 전 바다로 가보자. 그 안에는 머리에 눈이 다섯 개나 달려 있고 입 위쪽에는 코끼리 코처럼 기다란 팔이 달렸고 그 끝에는 집게 손이 있는 오파비니아, 둥근 입이 턱 아래 붙어 있는 길이 1~2m의 아노말로카리스, 외계생명체처럼 생긴 마렐라 등이 살았다. 이런 괴상한 동물들이 우글대는 바다에 들어가 헤엄치며 놀 생각은 전혀 없다. 또 괴상하게 생긴 바다생물을 얹은 초밥을 만들어 먹고 싶지도 않다. 다행이다. 이런 동물들은 싹 멸종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 물고기를 비롯한 온갖 바다 생명들이 생겨나서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 내었다.

5억년 전 바다생물. 왼쪽부터 오파비니아, 아노말로카리스, 마렐라.
5억년 전 바다생물. 왼쪽부터 오파비니아, 아노말로카리스, 마렐라.

나는 공룡을 사랑한다. 하지만 내가 사랑하는 공룡은 이미 사라진 공룡, 뼈로 남은 공룡, 내 상상력을 자극하는 공룡이지 지금 살아있는 공룡이 아니다. 나는 공룡과 함께 살고 싶은 생각이 눈꼽만큼도 없다. 내가 공룡을 사랑하는 결정적인 이유는 공룡이 멸종했기 때문이다.

뜬금없이 6,600만년 전 지름 10㎞의 소행성이 멕시코만의 유카탄 반도에 떨어져서 다섯 번째 대멸종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지금도 하늘엔 익룡이 날아다니고 바다에는 어룡들이 헤엄치며 대륙은 공룡의 포효가 가득한 세상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 소행성에 감사해야 한다. 덕분에 하늘과 바다와 육상에 살던 온갖 거대 파충류들이 멸종했고 그 자리를 포유류가 차지하게 되었고 결국 우리 인류도 탄생하게 되었다.

그렇다. 멸종이란 끊임없이 변하는 자연환경에 생명이 적응하면서 진화해가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대멸종은 멸종과는 차원이 다르다. 멸종이 빈 자리를 몇 개 만들어서 새로운 생명이 등장하게 하는 기회라면 대멸종은 생태계를 거의 텅 빈 공간으로 만들어서 전혀 새로운 생명의 역사가 시작하는 대역사다. 지금까지 다섯 번의 대멸종이 있었으며 지금은 여섯 번째 대멸종이 진행 중이다.

여섯 번째 대멸종이라고 뭐가 대수일까? 많은 동물들이 싹 사라지고 그 자리에 새로운 생명이 나타난다면 우리는 정말로 멋진 장면을 목격할 수 있지 않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우리는 대멸종을 두려워해야 한다. 왜냐하면 지난 다섯 번의 대멸종를 보면 최고포식자는 반드시 멸종하였고, 현재의 최고포식자는 바로 인류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라지고 마는데 새로운 생명의 찬란한 역사를 시작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브랜드 박사, 당신이 틀렸대". 영화 '인터스텔라'의 한 장면.
"브랜드 박사, 당신이 틀렸대". 영화 '인터스텔라'의 한 장면.

지난해 ‘인터스텔라’를 보았다. 지구는 사막화되어 농사를 거의 지을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물리학자들은 인류가 살 수 있는 새로운 행성을 찾아 웜홀을 통해 여행한다. 지구에 남아서 프로젝트를 지휘하는 아빠 브랜드 박사는 우주선에 있는 딸 브랜드 박사에게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개인으로서가 아니라 종(種)으로서의 인류를 생각해야 한다.”

멋진 말이다. 하지만 브랜드 박사는 틀렸다. 영화에서 브랜드 박사는 우주선에 2,000개의 인간 수정란을 실었을 뿐이다. 산 좋고 물 좋고 공기 좋은 외계 행성을 찾았다고 하자. 그리고 거기에서 인간 수정란을 부화시켰다고 하자. 과연 인류가 살아갈 수 있을까? 아니다. 인류는 복잡하게 얽힌 먹이사슬에서 작은 하나의 구석(ecological niche)을 차지할 뿐이다. 인류는 혼자서 살 수 없다. 수천만 종의 미생물, 식물, 동물과 함께라야 살 수 있다. 영화를 만든 놀란 감독이나 영화를 자문한 킵손 박사는 물리학에는 뛰어나지만 생태학에는 젬병임이 틀임없다.

어쨌든 “우리는 종으로서의 인류를 생각해야 한다”라는 말은 멋지다. 이 멋진 말의 출처는 칼 세이건이 출연한 다큐멘터리 ‘코스모스’ 마지막 편의 에필로그다. 여기서 칼 세이건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종으로서의 인류를 사랑해야 하며 지구에 충성을 바쳐야 합니다. 우리는 지구를 대변합니다. 생존하고 번성해야 하는 우리의 임무는 단지 우리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태어난, 아주 오래되고 광막한 코스모스 자체를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놀란 감독은 첫 문장의 앞쪽만 인용하고 뒤쪽은 무시했다. 그는 지구에 충성하는 대신 지구를 포기하는 방법을 택했다. 칼 세이건은 우리에게 지구에 충성할 것을 요구하며 그것은 단지 인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주를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다. 우리 인류는 더 지속되어야 한다. 인류가 태어나기 전까지 지구에는 어떤 생명도 이름을 가져본 적이 없다. 인류가 존재하기 이전에는 우주는 단 한 번도 아름답지도 장엄하지도 못했다. 그것은 모두 우리 인류가 붙여준 이름이며 우리 인류가 부른 찬송이다. 인류는 지구 생명과 우주를 위해서도 더 오래 지속해야 한다. 인류라고 영원할 수는 없다. 인류도 언젠가는 멸종하고 말 것이다. 하지만 호모 사피엔스는 이제 생겨난 지 20만년밖에 안 되었다. 우리는 훨씬 더 지속해야 정상이다.

자연사란 바로 멸종의 역사다. 수억년이나 바다를 지배했던 삼엽충도 사라졌고, 커다란 몸집과 신비로운 몸설계로 지구를 지배했던 공룡들도 한 순간에 사라졌다. 지난 생명의 멸종에서 우리 인류는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더 지속할 수 있을지 고민하기 위해 자연사를 공부하고 인류의 지속성을 강구하는 곳이 바로 자연사박물관이다.

자연사박물관의 주제를 한마디로 말하면 “같이 살자!”이다. 인류가 지속하려면 다른 생명과 같이 살아야 한다. 먹이 사슬을 촘촘히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다른 생명과 같이 살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이웃과 같이 사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제발 같이 살자!

이정모 서대문자연사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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