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방문 중인 김무성 새누리당 당대표의 발언이 언론에 회자되고 있다. 문제가 된 내용은 “미국은 대체 불가능한 동맹”이라며 “중국보다는 미국”이라는 부분과 한국전쟁 참전 용사들과 참전용사비 앞에서 큰절을 한 것 등이다.

김 대표의 언동 하나하나를 문제 삼고 싶지는 않다. 예를 들어 참전 용사들에게 큰 절을 한 것 등은 그리 큰 문제가 될 것은 없다고 본다. 아주 잘못된 것도 아주 잘 된 것도 아니기 때문에 그저 지나칠 수 있다. 다만 미국 사회에서는 이런 장면이 코믹하게 보일 수도 있다. 아쉽지만 한국의 사회적 관습이 국제적 관계에 원용되는 것은 그리 바람직하지 않다. 전통적 지역질서에 대한 향수를 가지고 있는 중국이 이런 장면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까지 생각한다면 좀 과다하지 않았을까 한다.

심각한 문제는 “중국보다는 미국”이라는 발언이다. 미국의 주요 싱크탱크에서 한국이 중국에 경도하고 있다는 보고서를 잇달아 내놓은 상황이라 미국의 의구심을 잠재우겠다는 것이 김 대표의 의도로 보이지만 그 내용은 아주 원시적이고 한국의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김 대표의 발언이 특정한 현안이 있어 그런 발언으로 이익을 가져오는 것도 아닌 상황에서 나온 것이라 더욱 더 사려 깊지 않은 발언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미국을 안심시키기보다 국내 특정 진영을 만족시키는 측면이 크지 않았나 한다. 미국까지 가서 국내정치를 할 필요가 있을 정도로 이 문제가 국내에서 첨예한 상황도 아니라면 국내정치를 미국에서 해야 했을까 하는 의문도 든다.

약소국가의 강대국 외교는 국내정치화할 정도로 쉽게 볼 문제가 아니다. 김 대표가 중국에서 한 친중적 발언과 이번 워싱턴 발언을 보면 얼마나 강대국 외교에 미숙한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특히 한말부터 냉전 종식까지 한국은 복수의 강대국을 상대로 외교를 벌인 경험이 없는 역사적 배경을 고려한다면 더욱 신중해야 할 필요가 있다.

정당 대표로서 미국에 전달해야 할 메시지 중 가장 중요하고 미국에 호소력을 가질 수 있는 것은 한국이 아시아에서 가장 중요한 민주주의 국가로서 미국과 자유와 평등의 가치를 공유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가치의 중요성은 중국을 거론하지 않고도 한국이 중국과 같이 할 수 없는 동시에 중국보다 우위에 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며 아마도 미국사회에 더 많은 공감을 불러 올 수 있을 것이다.

인류 보편적 가치에 대한 공유는 약소국이 강대국과 외교를 할 때 중요한 무기가 된다. 이런 의미에서 민주주의는 한국 외교의 강력한 수단이다. 민주주의는 다양성과 정통성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다양한 의견이 다수 존재하지만 일단 선택된 정책이나 전략에 대해서는 사회 전체의 지지를 받는다는 것이다. 특히 우리 같이 상대적 약소국가의 입장에서 중요한 것은 외교정책에 관한 다양한 논의 끝에 국민 전체가 지지하는 정책으로 주변 강대국을 상대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민주주의가 주는 가장 강력한 외교 수단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지난 30여년 민주화 과정에서 보여준 것은 초당적인 외교의 결여다. 주변국가들이 한국에 대해 혼란을 갖는 것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책이 바뀌어 온 때문이다. 이는 내부 분열로 비칠 수 있고 또 외부의 영향을 불러 올 수 있다. 대북 관계, 대미, 대중 관계에서 지난 민주화의 경험은 초당 외교와는 거리가 멀었다. 강대국에 둘러 싸인 우리 처지에서 절실한 것은 바로 초당 외교의 전통을 수립하는 것이다.

우리보다 지정학적으로 나은 위치에 있던 서독의 경우 대동독 정책만은 일관성 있게 초당적이었다. 김무성 대표는 미국 의회 관계자들에게, 한국 내에서는 여야를 초월하여 미국에 대한 인식이 같다고 얘기할 수 있을까? 중국보다 미국이라는 원초적 본능을 자극하는 말보다 한국의 대미 정책에는 초당적으로 일관성이 있다는 것을 미국은 더 선호하지 않을까? 김 대표의 방미를 계기로 초당 외교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다시 한 번 되새겨 본다.

하용출 미국 워싱턴대 잭슨스쿨 한국학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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