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 트렌드] 신한은행 '레드팀' 실험

"폐쇄적 은행 문화 탈피하자" 조용병 행장 취임 직후 도입

부행장 14명이 2인 1조로 맡아 임원회의 안건에 무조건 반론

의사결정 과정 오류 줄어들고 창의적 발상이 구체화 되기도

신한은행 임원회의가 최근 부쩍 시끄러워졌다. 형식적인 은행의 회의 문화를 바꾸자며 조용병 행장이 3월 취임 직후 임원회의에 ‘레드팀’(Red Team) 제도를 도입한 후부터다.

29일 신한은행에 따르면 레드팀은 임원회의에 참석하는 부행장 14명이 2인 1조로 조를 짜서 돌아가며 맡는다. 책상 앞에 빨간 깃발이 꽂혀 있는 그 날 레드팀 당번은 회의에 올라오는 안건에 무조건 반대 논리를 제시해야 한다.

지난 16일 임원회의에 올라온 브랜드전략팀의 광복 70주년 기념 ‘독립선언서 33인 재조명 캠페인’ 안건은 레드팀의 제동으로 원안이 수정됐다. 취지나 방법에서 흠잡을 데 없이 보이는 안건에 이날 레드팀 당번이던 리스크관리그룹 담당 부행장이 마이크를 잡았다. 해당 부행장은 “독립선언에 참여한 33인 중 일부는 이후 변절해 친일 행보를 한 사람도 있다”며 “이 보다는 논란이 없는 독립운동가 70인을 선정해 캠페인을 진행하자”고 제안했다. 부행장의 발언에 무사 통과가 예상됐던 회의 분위기가 반전됐다. 결국 브랜드전략팀은 보훈처에서 독립운동가 70인을 추천 받아 캠페인을 진행하기로 결론 내렸다.

레드팀 제도는 본래 군대에서 유래했다고 알려진다. 특정 작전을 수행하기 전 적군의 입장에서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아군을 공격하게 하고 그 과정에서 드러난 취약점을 개선하기 위한 목적이다. 해외에선 레드팀이 군대 정보기관 언론사 사기업 공공기관을 가리지 않고 보편화했다.

신한은행 임원회의에서도 별다른 반론 없이 당연하게 넘어가던 안건들이 레드팀의 등장으로 격렬한 토론 주제가 되기 시작했다. 회의에서 서로 듣기 좋은 이른바 ‘해피토크’나 주무부서의 의견을 무비판적으로 그대로 따르는 ‘폭포효과’를 지양하겠다는 조 행장의 전략이 맞아 떨어진 것이다.

레드팀의 효과는 단순히 회의의 침묵을 깨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의도적으로 가상의 적을 만들어 이와 다투는 과정에서 ‘윗분’들은 미처 인지하지 못했던 정보를 얻거나 위험성을 발견해 의사결정의 오류가 줄어드는 이점이 있다. 이전에는 권위에 눌려 입 밖으로 꺼내길 주저했던 창의적인 발상들이 명분을 업고 공론화하기도 한다.

한 임원은 “아직은 초기라 어색한 점이 없진 않지만, 의도적으로 반대 논리를 제시하려고 하다 보니 안건에 대해 더 깊이 공부하고 고민하게 된다”라고 말했다. 광복 70주년 캠페인처럼 원안이 더 나은 방향으로 바뀌는 경우도 이전보다 훨씬 많아졌다.

조 행장은 최근 임원 본부장 워크숍 때도 소통을 위한 또 다른 실험을 시도했다. ‘두 앤 돈트’(Do and Don’t)라는 이름으로 퇴근시간 사내시험 부활 등 여러 안건에 대해 토론한 후 그 자리에서 찬성과 반대 즉석 투표로 의사결정을 진행한 것이다. 다수결에 의존하는 데 따른 부작용도 일부 있긴 했지만, 일방적인 지시가 아니라 임직원들이 함께 제도를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신한은행의 이런 실험은 오너나 CEO의 강력한 리더십 아래서 일사불란하게 의사결정을 하던 기존 기업 문화로부터 탈피하려는 기업들의 변화 흐름을 반영한다. 본래 감시 기능을 해야 하는 사외이사제도가 유명무실해진 탓도 크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특히 위기가 그 계기가 된다. 3월 사업 재승인이라는 암초를 만난 롯데홈쇼핑이 강철규 전 공정거래위원장을 중심으로 하는 경영투명성위원회를 만들어 조직 논리와는 다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한 것이 대표적이다. 신한은행의 레드팀 실험도 핀테크 등 역동적 변화의 흐름 한 가운데 서 있는 은행권이 더 이상 정부 정책에 부합하며 안정을 도모하는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기업문화에 안주할 수 없다는 위기 의식에서 가능했다는 평가다.

위기관리 전문가인 유민영 에이케이스 대표는 “이런 의사결정 방식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임원회의 같이 고위층 회의에서만 활용할 것이 아니라 젊은 직원들도 주요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시키는 게 좋다”며 “종횡, 안과 밖을 모두 넘나드는 의사결정 과정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송옥진기자 clic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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