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룻밤 묵었던 호텔이 등장하는 걸 보니 시인은 여행 중인 것 같습니다. 사르트르가 보봐르나 친구들과 토론을 했던 카페들이 있는 생제르맹데프레 거리를 거니는 중일까요? 파리의 공원이나 모퉁이의 벤치를 서성이는 시인의 모습이 떠오르는 것은 아마 ‘발터 벤야민’이라는 각주 때문인가 봅니다. 발터 벤야민은 파리를 산책하면서 “나는 최근에야 방황하는 기술을 알았다”고 외쳤거든요.

시인이 여행을 마치고 돌아간 곳에도 친구들이 있고 토론과 회합이, 벤치와 유치원이, 누군가 머물렀던 호텔이, 크고 작은 묘지들이 있어요. 똑같은 거리, 똑같은 건물, 똑같은 벤치가 지루해져서 훌쩍 떠나왔는데 낯선 도시에도 결국 비슷한 형태의 삶이 있지요. 물론 그래도 우리는 떠납니다. 헤매며 식당을 찾고 전철역을 찾고 묘지를 방문하는 동안 주변 사물에 대한 우리의 감각은 놀랄 만큼 예민해지니까요. 방황하는 사람에게만 제공되는 ‘강화된 지각’을 얻기 위해 우리는 떠나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시인의 마지막 시구가 인상적입니다. 아, 그는 늘 지나가던 길과 건물 앞에서 길을 잃을 작정이군요. 알던 장소에서 놀라움을 발견하고 익숙한 사람에게 섬세하게 주의를 기울이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방황의 기술이 필요한 것인지…. 오늘 아침 똑같은 출근길을 지나가며 우리는 시인의 탄식에 공감합니다.

진은영 시인ㆍ한국상담대학원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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