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도 촌기자 앞치마 두르다] 13

7월 15일자 기자협회보 6면. 난생 처음 인터뷰라는 걸 해 봤다. 아니 인터뷰 대상이 되어 수십 분 간 묻는 말에 고분고분 대답했다. 수십 년 간 인터뷰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이 했지만 입장이 바뀌어 보니 이것도 전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 결과물이 이날 ‘늦게 배운 요리에 푹 빠진 전준호 기자’라는 제목으로 신문에 실린 것이다.

7월 초 휴대폰에 모르는 서울 전화번호가 떴다. 인터뷰 요청에 본능적인 방어기제가 작동했다. “우리 회사에 육아휴직 얘기를 연재해 인기 끈 남자 기자도 있으니 그 선수를 취재하세요.” “아, 그분은 벌써 취재했는데요.” “아, 그래요. 그럼……합시다.” 이렇게 쉽게 승낙하고 말걸 괜히 튕겼다 싶었다. ‘뭐 죄진 건 아니니까’라고 스스로 위안해보지만 그래도 왠지 켕긴다.

기자협회보의 강아영 기자는 ‘경상도 촌기자 앞치마 두르다’라는 온라인 연재물을 회사의 기획으로 아는 듯했다. 기사 쓰는 것을 전제로 요리교실에 등록했다고 판단한 것 같았다. 사실은 정반대였다. 3월 초 100시간짜리 요리교실에 입문하면서 회사에는 귀띔도 하지 않았다. 아니 보안을 지켜야 할 대상 1호가 회사였다.

“기자가 무슨 퇴근이냐.” 신문사 들어와서 가장 처음 들은 얘기 중 하나다. 지금은 주 5일 근무다, 연차휴가다 해서 언론계 근무환경이 많이 개선됐지만, 열악한 근무환경을 훈장처럼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취재원과 술 마시는 것도 업무의 연장이라고 했고, 특종 제보전화는 새벽 최종판 마감시간 직전에 걸려온다고도 했다. ‘시간외 근무’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도 몰랐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냥 24시간 일하는 직업이려니 했다.

한때 저녁에 석양주가 조간신문의 문화처럼 자리잡은 적이 있었다. 다음날 신문의 초판 기사를 마감한 후, 그러니까 석양이 질 무렵, 신문사 근처의 식당에서 저녁 겸 술 한잔 하는 자리다. 한 두 시간 뒤에는 인쇄돼 나온 초판 신문을 확인해야 하기 때문에 석양주 술 잔은 엄청 빠른 속도로 돌았다. 그리고는 또 경쟁 신문의 초판을 비교하면서 새로운 취재전선이 형성됐다.

가끔 신문사 햇병아리 기자 시절 마시던 석양주가 생각난다. 석양주를 생각하며 오늘도 육원전을 만들어본다.

음식 배우면서 석양주가 생각나게 만드는 요리는 꽤 있었다. 간단하게 만들기에는 ‘너비아니’가 있다. 파, 마늘 다지고, 배는 강판에 갈아둔다. 쇠고기를 5x6x0.3㎝로 포를 떠 두들긴 후 간장 15g, 배즙 15g, 설탕 10g에 파, 마늘, 깨, 참기름, 후추로 만든 양념장에 잠시 재워둔다. 그리고는 석쇠에 구워내면 끝이다. 석쇠에 눌어붙지 않도록 나무젓가락으로 쳐준 후 잣가루를 뿌려 차려내면 시험에서도 합격이다. 소주 안주로 그저 그만이다.

제육구이는 너비아니 사촌쯤 된다. 만드는 방식도 비슷하다. 파와 마늘, 생강을 다지고 돼지고기 등심을 5x6x0.3㎝로 포를 떠서 고추장 15g, 설탕 7g에 파, 마늘, 생강, 깨소금, 참기름, 후추, 물로 만든 양념장에 재운다. 석쇠에 구워내면 된다. 너비아니와 다른 것은 돼지고기에 생강을 넣어주고, 간장 대신 고추장을 쓴다는 것 뿐이다.

여기서 한 단계 깊게 들어가면 섭산적이라고 있다. 다진 쇠고기와 으깬 두부에 파마소참후깨설로 양념, 8x8x0.5㎝ 네모나게 만든다. 간장 대신 소금을 쓴다. 여기다 칼집을 내서 석쇠에 구워내는 음식이다. 두부와 쇠고기를 다지는 작업이 추가되지만 기본적으로는 같은 원리다.

흔히 ‘동그랑땡’으로 알려진 육원전도 마찬가지다. 다진 쇠고기와 두부에 파마소참후깨설로 양념한다. 지름 4.5㎝에 0.4㎝ 두께로 밀가루와 달걀 노른자를 입힌 후 약불로 구워낸다.

비오는 저녁에는 막걸리에 파전이 그저 그만이다. 풋고추전, 표고전 등 전요리를 많이 배웠지만 생각나는 것은 한식조리사 과정 비공인 음식이다. 요리강사가 아예 비오는 날 가족과 먹으라고 덤으로 가르쳐준 콩나물메밀장떡이 바로 그것이다.

콩나물과 부침가루 반 컵, 메밀가루 반 컵, 고추장과 된장 각 1스푼, 청량고추, 홍고추, 잔파, 달걀 1개, 다시물 3컵이면 된다. 콩나물을 다듬어 살짝 찌고 잘게 썬다. 고추와 잔파는 송송 썬다. 부침과 메밀가루를 섞고 달걀과 다시물을 넣는다. 그리고는 고추장과 된장을 넣어 농도를 맞추는 것이다.

이제 막걸리를 냉장고에서 꺼내면 된다. 뚜껑을 열고 잔에 따라 한 모금 목을 축일 때면 숟가락 크기의 콩나물메밀장떡이 상에 오른다. 노릇노릇한 장떡에 막걸리 마시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다시 일하러 뛰어들어가는 석양주도 이제는 추억이 되고 있다. 석양주는 거의 사라졌지만 저녁시간에 호떡 집에 불이 난 풍경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조간신문의 시각에서 볼 때 전쟁은 그때부터다.

그런 마당에 요리 배우겠다고 회사에 보고하라고? 저녁 7시가 넘어서야 앞치마를 두르지만 동료들 보기 미안한 것은 어쩔 수 없다. 다만 디지털 시대인 만큼 내 취재망은 요리 시간에도 100% 가동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는 3월 초 소리 소문없이 요리에 입문했다.

하지만 비밀 유지도 잠시였다. 4월 초 신문사 워크숍 뒷풀이에서 술 마시고 입방정을 떠는 바람에 그만 스스로 소문을 내버리고 말았다. 술이 원수다. 이날 또 디지털 신문사 구축을 위한 밀알이 될 것을 강요당했다. 온라인 요리체험기를 써보라는 것이었는데, ‘경상도 촌기자 앞치마 두르다’는 그렇게 시작됐다.

전준호기자 jhj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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