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으로 세상읽기] 7월 29일

새누리당 의원들이 자기 손으로 뽑은 원내대표를 불과 5개월 만에 박수로 갈아치우는 광경을 표현하기에 가장 적합한 말을 드디어 만났다. ‘영혼 없는 의원들’(한국일보 7월 29일자 이준희 칼럼▶전문 보기)이다. “의원 각자가 헌법기관의 독자성을 갖지 못한 채 당론이나 지도부 결정에 묶이고 더욱이 대통령 한마디에 다들 싹 풀 죽는, 영혼 없는 의원들이 아무리 많은들 무슨 소용이랴”는 이 칼럼의 비평은 지금 한국 정치의 문제적 행태 중 하나를 꼬집은 것임에 분명하다.

그런데, 되돌아보면 그 ‘영혼 없는 의원들’을 뽑은 것은 누구인가. 그토록 많은 이들이 바라왔건만 왜 지역정당 구도는 개선되지 않는 것인가. 더 근본적으로 지금의 선거제도는 한 표의 민의를 올바르게 반영하고 있는 것인가. 정치에서 희망의 가능성을 찾아야 한다는데 동의한다면 지금 그것이 썩었다고 방기해서도, 바꿔봐야 그게 그거라고 낙담해서도 안 된다. 선거제도 개정과 국회의원 수 확대를 둘러싼 논란이 수렴해야 할 목표는 그를 통해 지금 보다 더 나은 대의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것이다. 선관위의 제도 개혁 제안이 나온 이 시점에 이보다 중요하게 처리해야 할 국가적 대사(大事)가 무엇인지 알기 어렵다.

강원택 서울대 교수가 ‘지역주의 양대 정당의 독과점 깨자’ 칼럼(중앙일보 7월 28일자▶전문 보기)에서 지적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 대목이다.

“오늘날 한국 정치의 문제는…대의민주주의의 자기 교정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정치인들이 불신의 대상이 되었다면 낙선이라는 벌을 받아야 하지만, 지역주의를 동원하고 정파적ㆍ이념적 편 가르기를 통해 대다수 정치인들이 생존해 왔다. 또한 국민의 뜻을 도외시하는 정치세력은 도태되고, 참신하고 유능한 대안 세력이 등장할 수 있어야 하지만, 양대 정당은 거의 30년 동안 지역주의를 토대로 폐쇄적인 정치적 카르텔을 형성해 왔다. 결국 현재의 정치 질서를 그대로 두고서 한국 정치가 변화할 것으로 기대하기란 백년하청인 셈이다.”

강 교수는 고질적인 그 틀을 깨기 위해 필요한 것은 “새로운 정치 세력의 출현”이라고 말한다. “새로운 아이디어와 정책으로 무장한 참신한 정치 세력의 등장은 기존 정당들을 긴장시키고 변화하도록 강요해 전체적으로 정치권의 긍정적 변화를 유도해 낼 수 있을 것”인데, 바로 이를 실현하기 위한 고민의 산물이 “국회의원 수를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다. 신생정당이 거대정당의 틀을 깨고 지금보다 더 활발하게 의회에 진출할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고 그 핵심은 비례대표의 확대다.

“정당이 얻은 득표율만큼 의석이 배정되기 때문에 충분한 의석수만 확보된다면 새로운 정치세력의 진입을 기대해 볼 수 있다. 현재 54석에 불과한 비례대표 의석을 대폭 늘려야만 새로운 정치 세력의 출현이 용이해지는 것이다. 그런데 국회의원 정수 300석을 그대로 두고 비례의석을 늘리려면 그만큼의 지역구 의석은 줄어들어야 한다. 그러나 의원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생명이 걸린 지역구 의석을 자발적으로 줄일 것으로 기대할 수는 없다. 결국 남은 방법은 의원 정수를 늘려서 그만큼 비례의석으로 배정하는 것이다. 지역구 의석 246석의 절반 정도를 비례 의석으로 둔다면 123석이 되므로 전체 의원 정수는 369석이 될 것이다. 지금보다 의원 수가 60~70석 늘어나야 하는 것이다. 이 정도 규모라면 새로운 정치 세력의 출현과 이를 통한 양당 정치의 극한 대립 혹은 야합으로부터의 변화를 기대해 볼 수 있다.”

물론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 특히 정당에서는 과거 투표 결과를 끌어와서 예상 의석 계산을 했을 수도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쪽에서, 또는 진보ㆍ중도 진영의 학자들에게서 이런 주장들이 주로 나오니 진보세력에 유리한 선거 환경을 만들려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상황이 꼭 그렇지만은 않다. 원내대표에서 쫓겨나면서 더더욱 보수 개혁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새누리당의 한 의원과 그를 지지하는 세력들이 기존 보수 정당의 틀 바깥에서 의회 진출을 꿈꿀 자리가 마련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비례대표제 확대는 헌법 가치의 실현을 위해서 근본적으로 필요하다. 강남훈 한신대 교수는 ‘선거제도 개혁 없인 복지국가 없다’(한국일보 4월 27일자 ▶ 전문 보기) 칼럼에서 헌법재판소 결정문을 인용해 “평등 선거란 투표의 수적 평등, 즉 1인 1표의 원칙(one person, one vote)뿐만 아니라 성과가치의 평등, 즉 1표의 투표가치가 국회의원 선정이라는 선거의 결과에 대하여 기여한 정도에 있어서도 평등해야 한다는 1표 1가치의 원칙(one vote, one value)을 의미”한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한국의 선거 현실은 이와 다르다. “지난 19대 총선에서 새누리당은 42.80%의 득표율을 가지고 50.67%의 의석을 차지했다. 성과가치가 1.184가 된다. 득표율보다 18.4%만큼 의석을 더 차지한 것이다. 이에 반해 통합진보당은 10.30%의 득표율을 가지고 4.33%의 의석을 차지했다. 성과가치가 0.421이다. 득표율보다 57.9%만큼 의석을 덜 차지했다. 어떤 유권자의 1표는 1.184표의 가치로 평가되었는데 다른 유권자의 1표는 0.421표의 가치로 평가된 것이다.”

“선관위는 정당의 전체 의석수를 정당득표율에 따라서 배정하자고 제안하였다. 비례대표 의석수는 정당의 전체 의석수에서 지역구 당선자수를 뺀 값으로 한다. 이렇게 하면 정당의 전체 의석수가 정당 득표율에 완전히 비례하게 된다. 이것은 완전비례제라고 부를 수 있다.…선관위 제안에는 한 가지 개선할 점이 있는데 국회의원 수를 300석으로 하면서 지역구를 200석으로 하자는 부분이다. 그렇게 하려면 현재보다 지역구를 50석 가까이 줄여야 한다. 선거가 1년 남은 시점에서 매우 어려운 일이다. 만약 지역구를 못 줄이면 비례대표를 50석 정도로 줄여야 할 텐데, 이렇게 되면 여당이 당론으로 정한 석패율제도 도입하기 어려워지고 무엇보다 초과의석이 많이 생겨서 평등 선거에서 어긋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국회의원 수 확대 주장이 나온다는 것이다.

강 교수는 이렇게 덧붙인다. “국민들 사이에 국회의원 수를 늘리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이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인구가 비슷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중에서 국회의원 1인당 인구수가 가장 많은 나라다. 1인당 세비와 특권을 줄이면서 수를 늘려야 한다. 지난 정부에서 수십 조의 세금이 낭비된 것은 국회가 행정부를 제대로 감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수가 늘어나면 권력이 줄어들고 경쟁이 활발해지는 것이 수요공급의 법칙이다. 수가 적을수록 독점이 되고 권력이 커진다. 국민들이 정치를 혐오할수록 기득권층에 유리해진다. 독재자가 정권을 유지하는 방법의 하나는 국민들로 하여금 정치인을 미워하게 만드는 것이다.…가난한 사람이 많은 데도 가난한 사람을 위한 법이 잘 안 만들어지는 것은 가난한 사람들의 투표를 불평등하게 평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선거 제도는 어떤 사람들에게는 1.2배로 늘어나는 표탄을 나누어주면서 가난한 사람에게는 0.5배로 줄어드는 표탄을 나누어주고 있다. 이래서는 복지국가가 될 수 없다. 경제 불평들을 교정하는 수단이어야 할 정치가 오히려 경제 불평등을 강화시키고 있다. 넘쳐나는 노숙자, 심각한 청년실업을 생각하면 더 이상 정치 불평등을 묵과하면 안 된다.”

김범수기자 bs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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