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성의 일상 속 자연 누리기 (1)

※ 한국일보 이계성 수석논설위원은 자타공인 '걸어다니는 자연백과사전' 입니다. 생활 속에서 무심코 지나쳐 버리는 자연의 속삭임을, 본 코너를 통해서 '통역'해 드리려고 합니다. 여러분의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아침 집을 나서자 아파트 주변 나무들에서 매미 울음이 요란하다. 보통 장마가 끝날 즈음에 본격적으로 매미 시즌이 시작되지만 올해는 마른 장마기간을 못 참고 참매미, 말매미가 본격적으로 울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매미 중 가장 일찍 우는 털매미는 6월20일께부터 울음 소리가 들렸다. 씨유~ 하고 긴 호흡으로 울다가 중간에 처진 소리를 다시 높여 우는데 한번 시작하면 1분30초 가량 지속된다. 참매미는 맴 맴 맴~ 하고 운다. 전형적인 매미소리다. 몸집이 가장 큰 말매미는 짜라라라~ 하고 우는데, 한 녀석이 울면 주변 것들이 경쟁적으로 따라 울어 정말 시끄럽다. 이제부터 진짜 한여름이다.

이 때쯤이면 아파트 화단의 산수국들은 대부분 헛꽃이 뒤집어진다.

수분이 끝난 뒤 뒤집어져 늘어진 산수국 헛꽃(왼쪽)과 초여름 아파트 화단을 시원스럽게 장식한 산수국.

5월 말부터 특유의 시리도록 푸른 빛깔로 출근길을 즐겁게 했던 산수국 꽃들이 아쉽게 졌다. 알다시피 산수국 꽃송이 둘레의 큰 꽃잎들은 가짜 꽃이다. 가운데 암술과 수술을 갖춘 진짜 꽃은 아주 작다. 수많은 꽃송이들이 뭉쳐 있지만 눈에 잘 띄지 않아 벌과 같은 중매쟁이를 불러들이기 어렵다. 그래서 꽃받침을 변형시킨 헛꽃을 둘레에 배치해 중매쟁이들을 유혹하는 것이다. 일종의 ‘삐끼’ 역할이다.

그런데 수분이 끝나면 이제 가게 문 닫는다는 표시로 하늘을 향해 있던 헛꽃들이 뒤집어져 축 늘어진다. 장사 끝났는데 괜히 중매쟁이들을 불러들여 공연한 수고를 끼치지 않겠다는 배려인 것 같다. 삐끼 치고는 참 예의가 바른 녀석이다.

이 헛꽃들은 산수국 열매가 익은 후까지도 그대로 매달려 있다. 가을에는 보랏빛 계열의 단풍도 든다. 메마른 채이지만 한겨울 추위도 견디고 이듬해 다시 꽃이 필 때까지 열매 곁을 지킨다. 어떤 이는 이를 두고 연로한 부모를 떠올린다고 했다. 몸이 다 사위어 가는데도 노심초사 자식 걱정하는 늙은 부모 모습과 똑 같다는 것이다. 내게는 한 철 자신을 사랑해준 사람들에게 끝까지 애프터 서비스를 하는 것으로 보인다.

단풍 든 산수국 헛꽃. 2014년 11월 말 촬영.

평지 아파트 단지에서는 끝물이지만 아직 산자락에는 산수국들이 피고 지고 있으니 산수국 꽃 얘기를 더 해보자. 눈에 확 띄는 산수국 헛꽃은 여러 색깔로 우리의 눈을 즐겁게 한다. 헛꽃만 보다가 작은 진짜꽃의 아름다움을 놓치는 사람들이 많다. 헛꽃이 활짝 핀 다음 그때까지 꽃봉오리상태로 있던 진짜꽃이 피기 시작한다. 가까이 들여다 보면 짙푸른 보석들이 알알이 박혀 있는 것 같다. 아득히 먼 별들의 고향과 같은 신비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꽃잎은 3~5장인데 대체로 둘레의 헛꽃잎 수와 일치한다.

산수국 진짜 꽃. 푸른 보석처럼 빛난다.

산수국 꽃색은 토양의 산성도에 따라 달라진다. 일반적으로 산성도가 강할수록 푸른색이 짙고 알칼리성 토양이면 연한 자주나 보랏빛이 돈다. 중성일 때는 흰색이다. 동일한 산수국 꽃이 시간이 흐름에 따라 색깔이 조금씩 달라지기도 한다. 요즘 탐스럽게 피는 수국은 산수국에서 가짜 꽃만 피게 개량한 것인데 토양 산성도를 변화시켜 다양한 빛깔의 꽃을 만들어냈다.

연한 남보라빛 산수국꽃. 토양에 산성이 강하면 강할수록 푸른 색. 알칼리성이 강할수록 붉은 색을 띤다. 중성 토양에서는 흰 빛의 꽃을 피운다.
아파트 화단에 활짝 핀 수국.

산수국의 꽃말은 변하는 사랑, 변심이다. 수국의 꽃말도 같다. 그런 수국을 요즘 결혼식장 장식용 꽃으로 많이 쓰는데 괜찮은지 모르겠다.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죽음이 갈라놓을 때까지 함께 하겠다는 결혼서약을 하는 자리인데 말이다. 더구나 암ㆍ수술 없는 헛꽃들만 모여서 열매를 맺지 않는 수국이다. 요즘 저출산 추세가 결혼식장에 수국을 장식하는 것과 무슨 관계가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엉뚱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헛꽃 가운데 핀 진짜 꽃(유성화). 헛꽃들은 대부분 암술과 수술이 없는 무성화이나 이렇게 진짜 꽃을 피우는 헛꽃들도 적지않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산수국 헛꽃에도 암수술이 있는 유성화(진짜꽃)가 피는 경우가 있다. 일반적으로는 제주도에 자생하는 탐라산수국의 헛꽃 가운데 진짜꽃이 피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요즘 아파트 단지나 도심 소공원에서 만나는 산수국을 자세히 보면 진짜꽃을 피우는 헛꽃들이 적지 않다. 탐라산수국이 조경용으로 많이 퍼진 것인지도 모르겠다.

인간이 인위적으로 개발한 수국에는 보통 수국 말고도 나무수국, 떡갈잎 수국도 있다. 목수국이라고도 부르는 나무수국은 수국 종류 중에 가장 늦게 피고 긴 원통형 꽃 모양이 참으로 탐스럽다. 꽃색깔은 연한 연두색으로 피었다가 우윳빛으로 변하는데, 경기도 어느 골프장에서 다양한 색깔의 목수국을 만난 적 있다. 내가 출근길에 지나가는 옆 아파트 화단에 요즘 나무수국꽃이 피기 시작했다. 떡갈잎 수국은 잎이 떡갈나무를 닮았고, 꽃 모양은 원추형이다.

요즘 활짝 피기 시작한 목(나무)수국. 도로변 화단에서 더러 볼 수 있다.
떡갈잎 수국. 꽃이 원뿔 모양이다.

수국 비슷한 꽃 가운데 불두화(佛頭花)라는 것도 있다. 엄밀히 말해 이 꽃은 수국 계통이 아니다. 분류학적으로 산수국과 수국은 범의귀과에 속하는데, 불두화는 인동과다. 불두화는 꽃 모양이 산수국을 닮은 백당나무를 개량한 식물이다. 백당나무도 산수국처럼 가장 자리에 헛꽃이 피고 가운데 작은 진짜꽃무리가 오글오글 모여있다. 가을에는 빨간 열매가 무척이나 아름답다. 이 백당나무를 헛꽃만 피도록 개량한 게 바로 불두화다. 수국백당이라고도 부른다. 부처님 탄생일인 초파일 전후에 피는 불두화는 불상의 머리를 연상시켜서인지 사찰 내에 많이 심는다. 요즘에는 도심 소공원 등에서도 많이 볼 수 있다. 개화시기가 5월초 석탄일 전후로 산수국과 수국 종류보다는 한달 가량 일찍 핀다.

왼쪽은 불두화. 석탄일 전후에 피며 사찰과 공원 등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오른쪽 사진은 백당나무 꽃이다. 가을에 빨간 열매가 아름답다.

wkslee@hankookilbo.com

인기 기사

api_db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정치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