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마이 푸드] 윤화영 셰프의 '타진'

모로코 대표음식 타진. 윤화영 셰프 제공

나는 프랑스 음식을 만드는 한국인 요리사이다. 프랑스 음식이 뭐냐는 질문에 ‘프랑스에서, 프랑스 사람들이 즐겨 먹는 음식’이라고 말한다면 너무 막연할까.

내게는 외삼촌이 딱 한 분 계시다. 프랑스 대사관에서 오랫동안 일을 하셨고, 외삼촌을 통해서 프랑스 문물(특히 와인과 음식)을 접할 수 있었다. 1984년에 맛본 ‘소혀찜’은 초등 2년생에게 엄청난 컬처쇼크였고, 가끔 집에서 와인을 드시는 모습이 너무나 멋져 보여 한 모금만 맛보게 해 달라고 조르곤 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프랑스에서의 삶을 시작할 즈음에는 미국에서 근무하시다가 마지막에 모로코 주재 한국 대사로 발령을 받으셨다. 외삼촌이 그곳에 계시다는 것만으로도 내 삶과는 무관하게 여겼던, 아랍 문화권의 모로코라는 나라가 내게 성큼 다가왔다.

문화의 여러 부면(部面) 중에서 가장 쉽게 만날 수 있는 것이 음식이 아닐까. 제국주의 시대의 흔적으로 아직도 프랑스에는 많은 북아프리카인들(maghrebins)이 살고, 그들을 위한 그들의 음식점도 많이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음식이 쿠스쿠스(couscous)와 타진(tajine)이다.

외국에 나가 있으면 한식 생각이 많이 난다고 하지만, 매운 음식, 국물 음식, 흰 쌀밥을 즐기지 않는 나에게 한식 금단현상은 잘 나타나지 않았다. 탄수화물이 먹고 싶을 때에는 동네 이탈리아식당에 가서 피자나 파스타를 먹으면 됐다. 하지만 단백질은 달랐다. 단백질 식단을 워낙 좋아하는 데다 대체로 가격이 비쌌기 때문이다. 이 시절 가장 저렴하게 단백질을 공급받으면서 기분을 전환할 수 있게 해 주었던 ‘구원의 음식’이 바로 북아프리카의 음식이다. 일본 라멘이나 베트남 쌀국수 정도밖에 지불할 여력이 안 되는 요리사 급여로 누릴 수 있는 일종의 탈출구 같은 느낌이랄까? 마치 대단한 성찬을 즐긴다는 환상을 불러일으키던 나의 소울푸드이다.

쿠스쿠스와 타진에는 백만 가지 베리에이션이 있다. 이탈리아-프랑스-스페인-모로코-알제리-튀니지는 지중해 문화권의 국가들이고, 이 나라들은 공통된 재료를 가지고 자기네들의 개성을 살린 음식을 만든다. 하지만 요리사의 손길이 느껴지지 않는 쿠스쿠스보다 각 식당의 특색이 그대로 전달되는 타진이 내게 더 말을 걸었다. 그 중에서도 ‘사프란 향이 살아있는, 그린 올리브와 레몬이 들어가는 닭고기 타진’은 내 미각의 과녁을 명중시켰다. 색이 나지 않게 조심스럽게 양파를 볶은 후, 레몬 동치미(염장한 레몬), 그린 올리브, 다진 마늘, 생강, 월계수잎을 넣고 튼실한 닭가슴 한 쪽, 다리 한 쪽을 타진 그릇에 담아 오븐에서 1시간 반 정도를 끓이면 새콤짭짜름한 닭고기 찜이 완성된다. 상당히 새로운 종류의 맛이다. 개인적으로는 여기에 사치스러운, 전세계에서 가장 비싼 향신료인 사프란까지 넣는 살짝 럭셔리한 버전을 좋아한다. 타진이라는 음식의 이름은 고깔모자처럼 가운데가 뾰족하게 솟은 이 음식의 조리용기에서 나온 것이다. 돌솥에 안 담겨 나오면 돌솥 비빔밥이 아닌 것처럼, 타진이 이 용기에 안 담겨오면 이 또한 타진이 아니다.

파리에는 내가 좋아하는 3개의 타진?쿠스쿠스 집이 있다. 10구의 제르다 카페(Zerda Cafe), 11구의 만수리아(Mansouria), 6구의 셰 베베르(Chez Bebert). 식당의 위치가 다르다 보니 손님 층도 다르다. 당연히 이에 맞춰 가격을 정해야 하고, 판매 가격이 다르니 음식의 질도 다를 수밖에 없다.

나에게 ‘보신탕’이란 ‘더위에 지쳐 입맛이 없을 때,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입에 군침이 돌고 기분 좋게 한 그릇 다 비울 수 있는 음식’이다. 여름이 되면 파리에서, 그리고 모로코 마라케시에서 먹었던 나의 소울푸드가 떠오르곤 한다. ‘사프란 향이 살아있는, 그린 올리브와 레몬이 들어가는 닭고기 타진’. 이젠 내 ‘프랑스 음식의 추억’ 카테고리에 들어가 있다.

*윤화영 셰프는 부산 해운대에 있는 프렌치 레스토랑 메르씨엘의 오너셰프이자 제주 해비치호텔 밀리우의 총주방장이다. 프랑스 르 코르동 블루 우등 졸업 후 한국인 최초로 프랑스 팰리스급 호텔의 정직원 요리사로 근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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