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청, 친박-비박 아수라장 싸움터

승자도 패자 못지않은 상처 입을 것

대통령이 ‘포용의 정치력’ 발휘해야

두 가지 이야기를 생각한다. 아주 옛날 B.C.900년 전후 솔로몬 왕의 재판, 그리고 B.C.280년 전후 피로스의 승리(Pyrrhic victory)다. 기발한 재판의 모델로 알려진 솔로몬의 판결은 잘 아는 바다. ‘아이를 공평하게 둘로 쪼개어 싸우는 양 측이 균등하게 나눠 갖도록 하라’는 내용이다. 서로가 자신의 아이라고 주장하는 두 어머니에게 내린 단순한 판결이다. 얼핏 끔찍한 명령으로 보이지만 불변의 모정(母情)에 기대고 있었기에 이야기는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된다. 아이는 베어지지 않았으며, 진정한 어머니가 가려져서 자연스럽게 사회정의가 실현된다는 이야기다.

피로스의 승리는 흔히 ‘승자의 저주(Winner's curse)’로 불린다.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의 왕 피로스는 소수의 군사를 이끌고 로마를 침공해 두 번의 큰 승리를 거두었다. 창조적 병법과 용병술, 천부적 정치력으로 무적의 로마군단을 박살냈다. 하지만 두 번의 승리를 이끄는 과정에서 스스로 많은 전력을 소진했고, 결국 로마 입성을 앞둔 최후의 전투에서 패배했다. 피로스는 로마가 세계의 제국으로 발돋움하는 거름이 된 셈이다. 두 번째 전투에서 승리했을 때 그는 “한 번 더 승리를 거둔다면 우리는 망하게 될 것”이라는 명언을 남겼다.

박근혜 대통령과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 청와대와 집권여당의 갈등이 마지막 고비를 맞았다. 대통령이 원내대표를 향해 ‘함께 같은 하늘을 이고 갈 수 없는 사람’ 불공대천(不共戴天)의 관계로 공개 선언한 지 13일만이다. 새누리당이 오늘 의원총회를 열어 사실상 유 원내대표에 대한 재신임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그 동안 여권 내에서는 별의별 일이 다 있었을 게다. 당청 사이의 막후접촉이야 국민과 언론이 제대로 알 수 없지만 새누리당 내부의 일은 빙산의 일각처럼 도드라져 나왔다. 정서적으로 보면 분당 직전까지 간 상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늘 새누리당 의총에서 스스로 선출했던 원내대표를 축출하는 ‘결정’을 할지, ‘결의’를 할지, ‘권고’를 할지는 알 수 없다. 재신임을 원하는 의원들도 적지 않은 만큼 의외의 결과를 완전히 배제할 수도 없다. 유 원내대표가 “의총의 결과에 따르겠다”고 약속했지만 의총에서 ‘결과’를 도출할 수 있을지도 확실하지 않다. ‘아이를 둘로 쪼개어 나눠 가져라’며 두 여인 사이에 던져졌던 솔로몬의 결정을 생각한다. 과연 누가 아이를 둘로 쪼개어 자신의 주장이 옳다고 고집할 수 있겠는가. 누가 총선을 앞두고 당이 ‘칼로 베어져 죽어도 좋다’는 선택을 할 수 있겠는가. 혹시 유 원내대표 입장에서 ‘결정’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상황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전혀 새로운 국면을 의미하게 된다.

오늘 새누리당 의총 이후 ‘피로스의 전투’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어느 쪽이 로마의 상황이고, 어느 쪽이 그리스의 형편인지 분명해 보이지는 않는다. 다만 의총에서 승리하여 주도권을 쥐는 쪽이라도 반대편 못지않은, 오히려 더 치명적인 상처와 손실을 입게 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친박이든 비박이든 이렇게 밀어부친다면 ‘한 번 더 승리’는 불가능하다. 외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나라가 망한 예도 있고, 내부의 정적을 제거하는 와중에 국력이 소진돼 정권이 거덜난 경우도 있다.

정치는 현실이다. 현재의 모습에서 최선의 대안을 찾아나가는 과정이다. 유 원내대표가 박 대통령의 말처럼 ‘배신의 정치’를 했느냐, 박 대통령이 유 원내대표의 진정성을 외면한 ‘독단의 결정’을 했느냐를 따지는 것은 이미 부질없는 상황이다. 오늘 새누리당 의총이 어떤 모습으로 진행되든 박 대통령은 다시 한번 ‘당청 정치’의 전면에 공개적으로 나서야 한다. 진정한 포용력을 발휘하여 깊어진 상처를 치료할 수 있는 역할은 박 대통령 만이 할 수 있다. 결자해지(結者解之)의 정치력을 보여야 한다. 역설적이지만 건강하지 않은 여당은 건강한 야당을 세울 수 없다. 이런 식의 도박은 국가와 국민을 정치의 볼모로 잡아두자는 것과 다르지 않다.

정병진 논설고문 bjj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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