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연의 다시 읽고 싶은 그림책] 1. 내 이름은 자가주

※ 오늘부터 김소연 기자의 '다시 읽고 싶은 그림책'을 연재합니다. 그림책은 인생에서 세 번을 읽어야 한답니다. 아이일 때, 아이를 키울 때, 인생을 돌아볼 때. 김 기자와 함께 즐거운 그림책 속 여행을 떠나보세요. 여러분의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 <내 이름은 자가주> 퀜틴 블레이크 글, 그림

회사 후배가 첫 아이를 얻었다. 아빠가 된 소감을 물으니 아기가 예쁘지만 정신 없고 조심스럽단다. 아이가 태어나면 부부의 인생이 바뀐다. 부모로 다시 태어난다. 출산의 기쁨과 감동은 육아의 쓰나미에 밀려 점점 희미해지고, 어른과 너무나도 다른 아기라는 존재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그래서 아줌마나 아저씨들은, 첫 아이를 얻은 후배나 동생을 축하하면서 한편으론 한쪽 입 꼬리를 스윽 올린다. “너도 한번 해 봐라.”

퀜틴 블레이크의 <내 이름은 자가주>는 부모로 새롭게 태어난 부부에게 선물하고 싶은 그림책이다. 한 젊은 부부에게 앙증맞은 분홍빛 생물이 소포로 배달된다. 목에는 쪽지가 걸려있다. “내 이름은 자가주예요.“ 아기의 탄생을 소포로 배달되었다고 표현한 이 그림책은 기발하고 사랑스러운 비유로 가득하다.

어제만 해도 없었던 아기라는 존재가 오늘 갑자기 세상에 생겨난 것은 놀랍고 비현실적이기까지 하다. 얼마나 신기했으면 옛 사람들은 아기를 황새가 물어다 준다느니 삼신할머니가 점지한다느니 하는 이야기들을 생각해 냈을까. 퀜틴 블레이크는 ‘아기는 하늘이 준 선물’이라는 관용어를 ‘소포로 배달된 아기’라는 비유로 유머러스하게 전달한다.

웃는 아기를 보고 행복해 하던 부부는 곧 고난에 직면한다. 어느 날 아침 일어나 보니 자가주는 새끼 대머리독수리로 변해서 울어댄다. 밤에는 더 끔찍하게 운다. 부부의 눈이 퀭해진다. 어느 날에는 자가주가 새끼 코끼리로 변해서 가구를 쓰러뜨리고 코에 닿는 건 무조건 입에 넣는다. 자가주의 변신은 끝이 없다. 멧돼지로 변해 집안을 진흙 천지로 만들기도 하고 못된 새끼용으로 변해 불을 뿜기도 한다. 정신 없이 이 동물 저 동물로 변신하던 자가주는 급기야 낯선 털복숭이로 변해서 점점 더 커지고 점점 더 이상해진다. 부부는 소리친다. “차라리 코끼리나 멧돼지가 낫겠어.”

낯선 털복숭이로 변신한 자가주.

그러다 어느 날 자가주는 말끔한 청년이 된다.

아기를 키워 본 사람은 안다. 아기는 밤낮으로 왜 우는지도 모르게 대머리독수리처럼 빽빽 운다. 기어 다니기 시작하면 코끼리처럼 온갖 물건을 쓰러뜨린다. 손에 잡히는 것은 뭐든 먹으려 드는데, 먹어선 안 되는 것은 냉큼 입에 넣고 먹어야 할 것은 대부분 줄줄 흘린다. 밖에 나가 놀기 시작하면 흙발로 들어와 멧돼지처럼 집안을 난장판으로 만든다. 미운 일곱 살이 되면 새끼용이 불을 뿜듯이 독한 말도 서슴지 않는다. 압권은 털복숭이 사춘기다. 오죽하면 자가주의 부모가 차라리 코끼리나 멧돼지가 낫다고 할까.

자가주의 부모는 당황할 때마다 이렇게 말한다. “어떻게 해야 하지?” “나더러 어쩌라고?” “끝도 없잖아.” 나도 딸을 키우며 수도 없이 중얼거린 말들이다. 말썽계의 실력자인 딸이 일을 저지를 때마다 자가주의 부모처럼 넋두리를 하다가 결국엔 한숨을 쉬며 이렇게 맺곤 했다. “에이그, 언제 사람 되려나.”

딸이 어렸을 땐 이 말에 반응을 안 하더니 어느 정도 머리가 굵어진 후엔 이렇게 응수한다. “엄마, 내가 사람이 아니면 뭐야? 난 사람이라고!” 그런 딸에게 <내 이름은 자가주>를 읽어 주었더니 씩 웃으며 인정한다. “내가 아기 땐 사람이 아니었네. 엄마, 나 키우느라 고생했어.” 그 말을 들으니 부모님이 생각났다. 아, 우리 엄마 아빠도 내가 짐승일 적에 고생 많이 하셨겠구나. (그렇다고 내가 지금 완전히 사람이 됐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마흔이 다 됐지만 때로는 짐승이다)

사람이 된 자가주가 애인과 함께 부모를 찾아갔을 때 그들은 늙은 갈색 펠리컨으로 변해 있었다. 퀜틴 블레이크의 마지막 유머가 쌉쌀하다. ‘언제 사람 되려나’ 하던 자식이 사람이 되면, 부모가 펠리컨이 된다. 자식이 다 크면 부모는 자식이 어릴 때 기억하던 그 팔팔하던 부모가 아니다. 그러나 부모가 늙은 만큼 자식은 성장한다. 부모가 “언제 사람 되려나”라는 말을 날리는 사이사이, 아이는 부모에게 그만큼의 기쁨을 준다. 때로는 부모가 늙은 것이 아깝지 않을 만큼.

<내 이름은 자가주>의 마지막 장에는 펠리컨이 된 부모와 어깨동무한 자가주 커플의 다정한 뒷모습이 보인다. 그림과 함께 한 문장이 적혀 있다. “인생은 정말 굉장하다니까요!” 기꺼이 동의한다.

펠리컨이 된 늙은 부모와 어깨동무한 자가주 커플.

김소연기자 aura@hankookilbo.com

|||

관련 기사

api_db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문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