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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칼럼] 분열과 불통의 정치

입력
2015.07.05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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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존재감이 일본정치를 압도하고 있다. 최근 30,40년간 일본총리로선 흔치 않던 일이다.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정도가 카리스마를 갖췄고, 더 멀리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 총리가 떠오를 정도로 지금 아베 총리는 단단한 아성을 쌓고 있다.

이런 자신감 때문인지 집권세력 내에서 ‘오버’하는 조짐들이 나타나고 있다. 잘나갈 때 조심하란 말도 있지만 권력에 취한 듯 내부균열이 포착되고 있다. 아베 정부는 ‘역사수정주의’ 세력과 ‘안보현실주의’ 진영의 연합정권 비슷한 성격을 갖고 있다. 양측은 서로 생각이 완전히 일치하지 않지만 의식하고 견제하면서 공존한다. 아베 총리가 두 집단을 얼마나 잘 관리하느냐가 정권을 유지하는 포인트인 것이다.

두 세력의 차이는 결국 미국을 바라보는 눈이다. 굳건한 미일동맹으로 일본의 안전과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실용적 안보세력은 철저한 친미가 원칙이다. 아베의 적극적 평화주의가 그 바탕 위에 놓여있는 것이다. 하지만 전통적 내셔널리스트 그룹의 입장은 이들과 잠재적으로 모순된다.

그 틈새가 수면위로 드러난 게 2차 세계대전 전범을 심판한 도쿄극동재판과 평화헌법까지 재검증하겠다는 구상이다. 자민당은 아베 총리가 자신을 계승할 여성 총리감으로 점찍었다는 이나다 도모미(稻田朋美) 정조회장 산하에 전후 일본을 통치했던 연합국군총사령부(GHQ)의 공과를 재평가하는 조직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의 점령과 도쿄재판의 정당성까지 건드릴 수 있어 미국과의 관계를 중시하는 안보주의그룹에겐 위험한 발상이다.

이들은 전후 처리가 일방적으로 이뤄졌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도쿄재판에서 정작 일왕의 전쟁책임은 면죄됐다. 냉전체제가 긴박하게 돌아가면서 오히려 과오가 철저히 추궁되지 못했고, 이런 점은 주변국에 불만으로 남아있다. 세계보편적 평가에 둔감한 작금의 흐름이 자충수가 될 수밖에 없다.

역사수정주의자들의 숙원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헌법개정으로 향하고 있다. 그 성패는 내년 참의원 선거결과에 달려있다. 그런데 평화헌법 9조와 전수방위(專守防衛)가 무엇이던가. 일본의 ‘국시(國是)’나 다름없다고 일본 내에서 평가 받고 있다. 상당수 일본인들은 여전히 평화헌법에서 전후 일본의 정체성을 찾고 있다.

이 때문에 자민당이 무리하게 개헌을 쟁점으로 내년 선거를 치를 경우 연립여당의 승리 가능성이 불안해지고, 개헌의 속내를 희석하고 승리한 뒤 돌변하면 국민이 배신감을 느낄 수 있다. 안보법안을 심의중인 국회 주변에서 평화진영의 시위가 갈수록 커지는 것을 감안하면, 참의원 선거에서는 슬쩍 꼼수로 넘어간 뒤 국민투표로 몰아 붙일 경우 개헌은 실패로 돌아갈지도 모른다.

상황이 이런데도 집권세력은 스스로를 위기에 몰아넣는 양상이다. 아베 총리의 친위대 의원모임에선 “오키나와 지방지를 뭉개버리자” “언론의 광고수입을 없애는 게 제일이니 게이단렌(經團連)에 영향력을 행사하자” “정권에 안 좋은 프로그램을 공개 열거하자”는 발언이 나오는가 하면, 비판이 빗발치자 당사자들은 소신이라고 맞서고 있다. 아소 다로 부총리가 “아베 총리 응원단이 되려는 거겠지만 오히려 발목을 잡고 있다”고 탄식할 지경이다. 잇단 설화에 자민당 지도부가 소속의원들의 TV출연 금지령을 내리자 이번엔 내부에서 “공포정치”란 반발이 나오고 있다.

그런데 한국소식을 접하면, 일본 집권세력의 자중지란을 보는 마음이 편치 않다. 강 건너 불구경할 기분이 아니다. 박근혜 정부가 불통과 분열로 임기중반 위기를 맞고 있다. 지금이 대통령은 배신을 운운하고 친박 비박으로 나뉘어 싸울 때인가. 국정책임세력이 공멸하든지, 대한민국을 둘러싼 엄중한 안팎의 상황에 집중하든지 둘 중의 하나다.

도쿄=박석원특파원 s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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