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스무살의 어린 친구들이 찾아와 말합니다. “선생님 저 끝까지 가보려구요.” 그럼 저는 빙긋이 웃으면서 “그래그래” 어깨를 토닥여 줍니다. 제 첫 시집 표사에 매우 결연한 뉘앙스로 이렇게 썼거든요. “친구, 정말 끝까지 가보자. 우리가 비록 서로를 의심하고 때로는 죽음에 이르도록 증오할지라도.” 세월이 좀 흐르고 나니 그 시절 저는 끝이 참 당도하기 어려운 것이라고 생각할 만큼 젊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요즘엔 제 눈 앞에 사물의 끝, 누군가의 마음의 끝이 너무 쉽게 드러나서 허탈하기도 하고요. 한편으로는 권력의 끝, 절망의 끝이 보이기도 해서 안심이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노시인이 묻습니다. ‘식당 평상 위에 고즈넉이 앉아 있는 노인의 모습은 저 노인의 끝일까?’ 끝내 꽃피는 순간이 있을 뿐 끝을 보지는 못했노라고 시인은 말하는군요.

이 시는 올해로 등단 50주년을 맞은 정현종 시인의 열 번째 시집에 실려 있습니다. 그는 아름다움을 기다리는 마음에는 끝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시인은 시집 말미의 산문에서 릴케의 편지를 인용합니다. “사랑하는 당신, 너무 빨리 느끼지 않는 사람; 그 느낌이 잘 익었을 때에만 느끼는 사람.” 어쩌면 시인은 사물과 존재의 느낌을 잘 익히기 위해 끝을 계속 지연시키는 사람인지도 모릅니다.

진은영 시인ㆍ한국상담대학원대학 교수

인기 기사

api_db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