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세대 진보정치 열자는 외침에 공감

변화 모색하는 열정과 비전이 중요

익숙한 것과 과감히 결별해야 할 때

전국 동시당직선거에 출마한 정의당 후보들이 지난달 30일 부산 합동 유세에서 손을 맞잡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노회찬 전대표, 노항래 전 국민참여당 정책위의장, 심상정 전 원내대표, 조성주 정치발전소 공동대표. 연합뉴스

나는 이 청년을 전혀 모른다. 서른일곱 살이니 청년이라 하기엔 좀 그렇지만, 내겐 풋풋한 청년처럼 느껴진다. 이번 정의당 대표 선거에 출마한 조성주 후보를 이르는 말이다. 조 후보의 당 대표 출마 선언문 ‘두려움 없이 ‘광장’ 밖으로 과감히 나아갑시다’가 진보세력 안에서 잔잔한 화제를 모으고 있다.

출마 선언문에서 내 시선을 끈 것은 두 가지다. 첫째는 현실인식이다. 조 후보는 군부권위주의를 몰아낸 우리 민주주의의 ‘광장’이 최근에 좁아졌고, 그 주역인 시민들이 광장 밖으로 쫓겨나고 있다고 진단한다. ‘공과금과 집세를 책상에 고이 놓아두고 미안하다는 말을 남기고 생을 마감한 세 모녀, 쌀과 김치가 있으면 부탁한다는 쪽지를 남기고 세상을 떠난 젊은 작가, 수십 번의 취업 실패에 절망하며 외롭게 고시원에서 눈을 감아야 했던 청년’이 그들이라는 것이다.

그 동안 정의당을 지지해오지는 않았다. 하지만 양당 정치에 갇힌 우리 민주주의로부터 추방당한 시민들을 대변할 2세대 진보정치를 열어야 한다는 조 후보의 조용하지만 단단한 외침에는 크게 공감한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청년 실업, 퇴출 공포, 노후 빈곤 현상에서 볼 수 있듯 불안이라는 이름의 전차에 실려 어디로 가는지를 가늠하기 어려운 게 우리 사회의 현주소다. 피로사회, 잉여사회, 분노사회, 격차사회, 절벽사회야말로 우리 사회의 생생한 자화상이다.

둘째는 정치적 대안이다. 세대 교체를 통한 리더십의 구축이 조 후보가 제안한 방법론이라면, 진보적 정책 의제 설정은 콘텐츠를 이룬다. ‘두려움 없는 과감한 증세, 세대간 평등을 실현하는 고용보험 개혁과 연금개혁, 과감한 노동시장 개혁’ 등 콘텐츠의 리스트는 그렇게 신선해 보이지는 않는다. 내가 주목한 것은 세대 교체다. 새로운 리더십의 구축은 정의당뿐만 아니라 새누리당과 새정치연합에도 중대한 과제이기 때문이다.

영국 토니 블레어 전 총리가 노동당 당수가 된 것은 40세, 데이비드 캐머런 현 총리가 보수당 당수가 된 것은 39세였다. 미국 빌 클린턴 민주당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게 46세였고, 버락 오바마 후보는 47세였다. 우리나라의 경우 박정희 공화당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게 46세였고, 김대중 신민당 후보가 첫 번째로 대선에 나간 것은 45세였다.

정치에서 세대 구분이 단순히 생물학적 나이에 의한 것만은 아니다. 외려 현실을 진단하고 변화를 모색하는 열정과 비전을 얼마나 갖고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 이점에서 기성세대는 퇴영적인 반면 젊은 세대는 개혁적이라는 주장과, 그 반대로 기성세대는 연륜 있는 반면 젊은 세대는 미숙하다는 주장 모두 설득력이 높다고 보기 어렵다.

세대에 대한 인식이 이러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세대교체가 필요한 까닭은 정치가 갖는 본래의 특징에 있다. 정치란 대중의 지지를 불러내고 모으고 대표하는 행위다. 이러한 호명과 조직화에서 영원한 정치적 카리스마는 없다. 막스 베버가 강조하듯 새롭게 등장한 카리스마가 결국 일상화되며, 또 다른 열정과 비전을 가진 카리스마에 의해 대체되는 것은 정치의 자연스러운 진화과정이다.

내가 던지고 싶은 질문은 정치가의 시대적 소명과 그 역할의 역사적 한계다. 1987년 6월 민주화운동 이후 경쟁해온 산업화세력이든 민주화세력이든, 기성 직업정치가의 시대적 소명은 여전히 유효한 걸까. 아니면 이제 젊은 세대에게 그 역할을 넘겨야 하는 것은 아닐까. 민주주의의 핵심 중 하나가 다원적 상상력에 있다면, 젊은 세대가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세대적 대표성의 실현은 매우 중대한 과제다. 민주화 시대가 황혼에 놓인 만큼 보수세력이든 진보세력이든 새로운 시대정신을 담당할 리더십의 세대 교체 논쟁이 활성화돼야 할 이유다.

젊은 빌 클린턴 후보의 승리를 가능하게 했던 말은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였다. 지난해 세월호 참사에서 올해 메르스 사태에 이르기까지 가장 울림이 컸던 말은 ‘문제는 정치야’였다. 새로운 정치를 열기 위해선 무엇보다 ‘문제는 사람이야’가 중요하지 않을까. 익숙한 것으로부터 과감히 결별할 때 새로운 변화가 시작되는 법이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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