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승의 편파적 육아일기] 41. 복직 한 달

복직해서 ‘직장인 아빠’로 생활한 지 한 달. 일정표를 보지 않고선 어떻게 시간이 흘렀는지 알 수 없다. 단순반복 일상이 변화무쌍해진 데 따른 ‘정신 없음’이 가장 큰 이유인 것 같다.

복직하더라도 열흘에 한번은 육아일기를 써야지 다짐했지만 그렇게 되진 않았다. 중간중간 끼적거리고 싶은 것들은, 이상하게도 정신 혼미한 마감시간(!)에 떠올랐다. 우선적으로 처리해야 할 일이 눈 앞에 있지만, 엉뚱한 생각이 드는 식이다. 두서없이 튀어나온 생각들은 웬만해선 뒤에 다시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도 온 몸으로 부딪힌 몇 가지는 아직도 기억이 또렷하다.

출근길 지하철 안. 지난 1년 동안 이쑤시개통 같은 지하철을 타본 적도 구경 해본 적이 없는 아빠다. 세상의 번잡함을 피해 다닐 수 있던 때가 벌써 그립다.

● 첫출근

복직하던 날. 그 날 출근길 발걸음은 15년도 더 지난, 군복무를 마치던 날의 그것과 비슷했다. 기저귀 가방보다 무거운 가방을 멨지만 발걸음은 가벼웠고 상쾌했다. 중간중간 휘파람도 불었던 것 같다. 이 이야기를 들은 아내는 ‘1년을 같이 한 아들을 두고 나가면서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구박했지만, 사실이 그랬다. 밖에서 사먹을 밥, 남이 차려주는 밥을 그 어떤 구속과 방해도 받지 않고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내키면 반주도 한잔 걸칠 수 있다는 생각에 대단히 설렜다.

어디 먹는 일 뿐인가. 화장실 가는 것도 아들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고, 아들놈에게 고정시켜야 했던 시선도 이리 저리 돌릴 수 있게 됐다. 직장이라는 새로운 곳에 얽매이긴 하겠지만, 구속 아닌 구속에서 벗어난다는 생각에 이 아빠는 그날 아침 한껏 부풀어 있었다.

● 복직신고

편집국을 돌면서 복직신고를 했다. 오랜만에 만난 회사 사람들로부터 다양한 종류의 인사를 받았다. ‘배가 많이 들어갔다’, ‘간이 싱싱해 보인다(?)’, ‘얼굴이 좋아졌다’ 등 신체 변화를 들어 하는 인사에서부터 ‘아들은 이제 누가 보냐’, ‘아들 보고 싶지 않냐’ 등 아들 관련 질문 인사까지….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이 인사였다. ‘복직 축하해!’

이 아빠가 해고됐다가 복직하는 것도 아닌데 축하는 무슨 축하,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곱씹어 보니 이게 과연 최고의 인사였다. 복직. 그러니까 낮 시간에 육아에서 해방(?)됐다는 것을, 주양육자라는 간판을 떼게 된 것을 축하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물론 일을 다시 시작하게 된 것을 축하한다는 의미였겠지만, 그 인사를 건넨 사람은 육아의 세계를 꿰뚫고 있는 사람일 것이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육아휴직에서 돌아온 사람에게 어떻게 ‘축하한다’는 말을 할 생각을 다 했을까. 생각하면 할수록 기가 막힌 인사다.

파주 금촌역 근처의 한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아들과 함께. 기차를 타고 싶어 하는 아들을 위해 비 내리던 어느 주말 경의선 열차에 올랐다.

● 아들 안 보고 싶냐고요?

이 못지않게 기억에 남는 인사는 ‘아들 보고 싶지 않냐’는 말. 아마도 가장 많은 사람들이 건넨 인사가 아닌가 싶다. 그들은 이 아빠로부터 ‘아들이 보고 싶어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는 식의 답을 기대하는 것 같았는데, (이게 엄마와 아빠의 차이일까) 그런 대답은 쉬 나오지 않았다. 손에 든 휴대폰에 아들 사진과 동영상이 가득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울컥한 적이 없는 건 아니다. 아내가 아들을 어린이집에서 픽업하는 과정에서 선생님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전화로 알려줄 때였다. “여보, 00(아들)가 오늘 어린이집에서 잘 놀다가 갑자기 선생님한테 ‘아빠 보고싶어요’, ‘아빠 보고싶어요’라고 이야기를 했댜!” 문장으로 의사 표현을 해 선생님이 깜짝 놀랐다는 것도 감격스러웠지만, 무엇보다 그 이야기를 하는 아들 모습을 상상하니 이 아빠의 마음은 굉장히 복잡해졌다. 바닥에 떨어진 볼펜 줍는 시늉을 하며 옆의 시선을 피했다.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다.

● 정글에서 살다 왔나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그들과의 보이지 않는 벽을 느꼈다. 사람들이 하는 말을 제대로 알아 들을 수가 없었다. 시끌벅적한 곳이어서 그러려니 했지만, 분명하게 듣고도 이해를 할 수 없는 대목들이 있었다. 그들이 다 웃을 때 이 아빠만 웃지 못했다. 말을 끊고 ‘그게 누구’ ‘그게 뭐냐’고 묻는 것도 한 두 번이지 계속 말을 끊고 물을 수는 없었다. 휴대폰을 테이블 밑으로 내려 부지런히 검색을 하면서 그들의 대화를 따라가는 수밖에 없었다. 깊은 산이나 정글에서 몇 년 혼자 살다가 세상에 나오면 이런 느낌일까.

그러고 보니 지난 1년 동안 아이 키우는 이야기만 했던 것 같다. 그 1년 중 초반에는 입에 거미줄이 생길 정도로 거의 말을 하지 않고 살았다. 아들 또래들의 엄마들과 이야기를 할 때도 육아에서 파생된 이야기를 주로 했지 TV서 뜨는 인물, 구설을 오른 연예인 이야기, 누구의 책 이야기는 거의 한 적이 없는 것 같다. 하루 아침에 확 달라진 대화 상대와, 주제…,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과의 자리는 즐거웠지만 낯설었다.

휴일 아침 동네 뒷산에서 산책을 하나 넘어진 아들. 수 많은 벌레와 새들에게 정신을 뺏긴 나머지 이렇게 넘어지기도 한다. 이 아빠는 아들을 일으켜 세우지 않았다.

● 아들의 너무 빠른 적응

1년 만에 복직해 새로 배치 받은 부서는 정치부. 한 부장 선배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이 아빠에게 말했다.

“정치부?? 거긴 술자리서 취재하는 데잖아?! 일 하면서 애 제대로 볼 수 있겠어? 저녁 약속 없다는 이야기는 곧 논다는 이야기로 통하는 곳인데….”

“뭐, 이제 아들놈도 적응해야죠….”

아들은 이 아빠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놀라운 속도로 아빠 없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했다. 어린이집에서도 ‘아빠 보고 싶어요’라는 말은 더 이상 하지 않으며, 아침에 출근하는 아빠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울어주지도 않는다. 무서운 꿈을 꾸다 놀라서 깼을 때도 아빠를 찾지 않는다. 엄마를 먼저 찾는다. 서운함은 물론이고 어린 아들에게 배신감까지 든다. 그래도 내색할 수는 없다. 나는 아빠다. 다시 일터로 돌아온 아빠.

ms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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