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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희 칼럼] 영웅은 맞되, 승전은 아니다

입력
2015.06.30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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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선영웅일 수 있던 연평해전 영웅들

‘승전’선언이 가리는 군 지휘부 문제

대한민국은 오직 병사가 지키는 나라

제2연평해전 13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한 한민구(맨 왼쪽) 국방장관과 최윤희(왼쪽 두번째) 합참의장 등이 29일 오전 경기 평택시 해군 2함대사령부 제2연평해전 기념비에 새겨진 전사자 흉상에 참배하고 있다. 한민구 국방장관은 기념식 추모사에서 제2연평해전을 '승전'으로 규정했다. 평택=배우한기자 bwh3140@hankookilbo.com
제2연평해전 13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한 한민구(맨 왼쪽) 국방장관과 최윤희(왼쪽 두번째) 합참의장 등이 29일 오전 경기 평택시 해군 2함대사령부 제2연평해전 기념비에 새겨진 전사자 흉상에 참배하고 있다. 한민구 국방장관은 기념식 추모사에서 제2연평해전을 '승전'으로 규정했다. 평택=배우한기자 bwh3140@hankookilbo.com

아직 연평해전 영화를 보진 못했다. 그러나 안다. 그 상황이 얼마나 처절했을 지를. 몇 년 전 군의관의 얘기를 읽고 이미 가슴을 앓았던 터였다.

‘내가 군에 온 이래 가장 많은 기계와 약병을 단 환자였다. “어쩌다…?” 옆 침상의 부정장에게 물었다. “우리 배의 의무병 녀석인데, 부상자들 처치하느라고 몸 아끼지 않고 뛰어다니다가….” 울컥했다.’ 스물 한 살 박동혁 병장은 그렇게 숨을 거뒀다.

현직 국방부장관이 13년 만에 참석한 기념식에서 제2연평해전을 ‘ 승전’으로 선언했다. 박 병장을 비롯한 ‘6용사’에겐 “이순신 장군의 후예로 필사즉생의 삶을 실천한 대한민국의 진정한 영웅”이라고 극상의 상찬을 올렸다. 맞다. 그들은 영웅이다.

참수리 357호는 코 앞 적에게서 느닷없이 85mm 주포 등의 집중사격을 받았다. 한 순간에 전투력을 잃었다. 그런데도 권기형 상병은 잘린 손을 방탄조끼 끈으로 묶고 탄창을 비웠고, 조천형 중사는 방아쇠를 당기는 자세로, 한상국 중사는 조타실에서 키를 잡은 모습으로 발견됐다. 전우들 살리려 탄막을 헤집던 박 병장 몸에선 파편 3kg이 적출됐다. 이들이 아니라면 누가 영웅일까.

그러나 승전으로 부르긴 어렵다. 아군 6명 전사, 적 13명 전사라서? 승패는 사상자 숫자로만 가름되지 않는다. 전략적 목표 달성 여부에 달렸다. 1905년 러일전쟁 뤼순(旅順)공방전에서 일본군은 무려 6만 병사를 잃었다. 러시아군은 그 절반에도 못 미쳤다. 그래도 역사는 러시아의 중국 진출로를 봉쇄한 일본의 승전으로 기록한다.

남북 해군 함정은 성능, 화력에서 애당초 비교불허 수준이다. 1999년 제1연평해전에서 북한은 이 근원적 열세를 절감하는 수모를 당했다. 그러나 제2연평해전에선 고물 배로도 전술적으로 대등하게 싸울 수 있음을 입증해 보였다. 우리의 충격은 패전만큼이나 컸다. 북한은 NLL 주변을 분쟁수역으로 확실히 각인시켰다. 햇볕정책에 불만인 보수층을 자극, 남남갈등의 부수효과도 얻었다. 어떻게 봐도 승전이랄 건 아니다.

남북관계 개선에 집착하던 당시 정부가 ‘선제사격금지 지침’으로 군의 손발을 묶은 탓이 컸다. (다른 얘기지만, 그 때 전사자들의 희생을 외면한 것은 용서키 어렵다. DJ 정부의 어떤 공으로도 이건 덮어지지 않는다. 두고두고 부끄러움으로 속죄할 일이다.)

허나 가장 큰 책임은 군 지휘부에 있었다. ‘근접 차단기동’ 지시를 받은 참수리 편대가 적 포구 앞에 무방비로 접근한 게 직접 화근이었다. 지휘계선은 국방부장관, 합참의장, 합참 작전본부장, … 2함대 상황실이었다. 이러고 장관과 합참의장은 장군진급자 축하연에 갔다. 부하 병사들이 죽어가는 그 시간에. (김종대의 서해교전 요약)

이뿐 아니다. “쏘겠습니다” “오늘은 아니다. 그냥 올라와라” 누가 봐도 기겁할 20일 전 북한해군 교신과, 이후 사나흘 간격으로 계속된 북 함정과 해안포의 특이동향들이 싸잡아 무시됐다. 그러므로 ‘6용사’를 개선용사 아닌, 죽은 영웅으로 만든 건 무능하고 무책임한 지휘부였다.

이후 천안함과 연평도 포격에서도 사전 징후 경시, 지휘 혼선, 합동전에 대한 무지, 책임 회피, 뒷북 호언 등이 되풀이됐다. (심지어 천안함 때도 합참의장은 만취로 근무이탈 상태였다) 그래도 이들 지휘계선의 책임자 대부분은 국방 요직을 거쳐가며 영광을 누렸다. 지금은 다를까? 병사의 생명을 지킬 무기 장비들을 돈과 바꾸기까지 하는 모습들을 보면 여전히 아닐 가능성이 높다.

제2연평해전은 실패한 전투, 최소한 이기지 못한 전투다. 어색하고 과도한 승전 자찬에서는 지휘부의 이런 과(過)와 허물을 덮으려는 불온한 의도마저 읽힌다. 국방부장관은 추모사에서 낡은 관용구를 또 읊었다. “북한이 다시 도발한다면 … 단호하게 응징해 도발의 대가를 뼈저리게 느끼게 하겠다.” 십 수년 잇단 실패에도 처절한 반성 없는 호언이 허망하다.

그래서 아직까지 대한민국은 오직 병사가 지키는 나라다. 다시, 숨진 젊은 영웅들의 명복을 빈다.

주필 jun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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