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주함’에 대한 상상은 늘 살풋한 기대를 품게 한다. 마음 둔 대상을 향한 걸음에는 항상 설렘의 감정이 실리기 마련인 것이다.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의 에스파냐 광장. 지중해 기후 특유의 파란 하늘빛에 더해 훨씬 짙푸른 색을 띤 돈키호테 동상이 소설 속 모습 그대로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이곳에 세워져 있다. 17세기를 배경으로 과대망상에 빠진 채 무모한 기행을 일삼았던 이 늙은 몽상가가 지금은 자신의 꿈을 이루어가는 이상적 실천주의자의 모습으로 회자될 만큼 묘한 매력을 지닌 인물로 인식된 탓인지 동상 아래에는 기념사진을 찍는 여행객들이 끊이질 않는다.

그러나 내가 마주하고 싶었던 상상 속 대상은 사실 돈키호테가 아니었다. 어수룩하지만 심성이 깊어 주인인 돈키호테의 실질적인 보호자였던 ‘산초’ 또한 나의 상상 속의 ‘그’가 아니었다. 즐거운 상상 속의 주인공은 바로 ‘로시난테’다. 주인을 등에 업은 채 노구를 이끌고 쇠 빠지도록 돌아다녀야 했던 늙은 말 로시난테. 나는 몹시 반가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여전히 돈키호테 엉덩이 아래에 깔려있는 그를 ‘하염없이 안쓰러운’ 눈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가슴이 뜨겁게 끓던 시절(?)이라고 해야 할까, 어설픈 흉내를 부리며 실존인물인 체 게바라의 삶을 닮고 싶어 하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실상은 그의 멋진 외모를 흠모하면서 청년 시절 그가 몸을 의지했던 오토바이 ‘포데로사’의 매력에 푹 빠져있었지 싶다.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수평적 지위를 꿈꾸는 자유로운 영혼이라기보다는, 아무런 철학도 없이 치기어린 ‘무대뽀 정신’으로 가로막힌 벽을 향해 돌진하는 시간들로 가득하던 때였다.

얼마 되지 않아 알게 되었다. 내가 떠벌인 허풍과 무모함의 정도로 보아 게바라는커녕 돈키호테와 훨씬 닮아 있다는 것을 말이다. 민망함과 아쉬움을 거쳐 현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그러다 포데로사에게 느꼈던 매력과는 다른, 연민의 감정이 먼저이긴 했어도 돈키호테가 몸을 의지했던 늙은 말 ‘로시난테’에 시선이 끌리기 시작했다.

사실 주인장이야 자기 하고픈 대로 살았지만 이제 은퇴(?)해야 할 나이의 말은 어쩌다 늘그막에 그 고생을 하게 된 건지 생각할수록(비록 소설이 허구라 해도) 팔자가 안쓰럽기만 했다. 그러나 로시난테가 없었으면 천하의 돈키호테도 방구석을 벗어나지는 못했을 것이니 늙은 말의 느린 걸음이 그리 구박받을 일은 아니지 않았을까. 세상을 무대로 주연이든 조연이든 엑스트라든 중요하지 않은 존재는 없다는 진부한 궤변(?)에 다시 고개가 끄덕여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라는 생각에 슬쩍 웃음이 난다.

그런 마음으로 동상을 바라보다 보니 결코 늙어 보이거나 바싹 마른 몸도 아닌 듯 새로워 보인다. 축 처진 귀와 힘없이 구부정한 목 탓에 다소 힘겨워 보이기는 했지만 성큼 내딛는 형상으로 고정된 발걸음은 오히려 당당하고 나름의 품위까지 있어 보였다. 아래에서 위로 올려 찍는 앙각촬영(仰角撮影)으로 다시 동상을 바라보는데, 투명한 햇살 아래 드러난 로시난테의 자태가 어디에 내놔도 모자라지 않을 만큼 멋져 보였다. 위풍당당하게!

임종진 달팽이사진골방 대표

인기 기사

api_db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