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 시오랑은 이렇게 말합니다. “고통을 혼자 겪는다는 사실에는 큰 장점이 있다. 만약 인간의 정신적 고통이 얼굴에 충실하게 나타난다면, 즉 내부의 괴로움이 외부로 옮겨진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래도 대화를 나눌 수 있겠는가? 손으로 얼굴을 가리지 않고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는가? 만일 감정의 강도가 표정에서 그대로 읽힌다면, 사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질 것이다.”

감정이 얼굴에 그대로 나타난다면 아침의 거리가 어떻게 될까요? 간밤에 찢어진 마음을 헝겊인형처럼 얼기설기 기운 표정으로 사람들이 서로를 쳐다보겠지요. 아예 집밖으로 나설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면도하려고 들여다 본 세면거울에서 기괴하고 비극적인 얼굴을 발견하고서 어떻게 출근 준비를 할 수 있겠어요.

그런 이유로 우리의 얼굴은 마음의 불 난 집을 조금 멀리서 바라보는 구경꾼 같은 표정을 하고 있을 때가 많습니다. 마음과 얼굴 사이의 거리를 조용히 오가며 시인은 질문합니다. 혹시 내가, 감기약을 먹으라니까 서럽게 우는 조카처럼 서러운 것은 아닌지. 오늘 이 하루가 시린 손으로 꺼뜨리지 않고 들고 가야 하는 등잔불 같은 것은 아닌지. 그런데 얼마나 계속 가야 하는 걸까? 출근길에 내 속을 맴돌던 의문은 행군에 지친 어린 보병의 의문처럼 간절한 것은 아니었는지. 이런 고요한 물음이 생겨나려면 간결한 표정이 필요해요. 그래서 우리는 시인이 보여주는 간결함을 사랑합니다. 슬픔도 있고 의문도 있고 다정함도 있는데 과장은 전혀 없어요.

진은영 시인ㆍ한국상담대학원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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