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한 당신] 폴 베이컨

재즈로 맺어진 디자인 인연, 12살 무렵에 재즈에 매료된 후

팬 클럽 가입하고 비평 게재, 거장들 만나 음반 커버 디자인도

1956년 범죄 심리 소설 디자인, 파격적 작품에 출판계 충격

"독자가 이해해야 성공한 표지"

스티븐 스필버그 영화 ‘죠스(1975년)’가 나온 지 올해로 만40년(한국선 78년 개봉)이 됐다. 이제 세세한 줄거리는 잊혔지만, 잊히지 않는 건 영화 포스터다. 시선을 압도하는 짙푸른 물, 거대한 아가리와 그 속의 어둠, 한가로운 먹이(한 여성)의 유영, 간당간당 숨막히게 내걸린 순백의 하늘. 음악의 존 윌리엄스와 더불어 유명해진 그 포스터의 제작자는 그래픽 디자이너 칩 키드(Chip Kidd)였다.

필립 로스의 ‘Portnoy’s Complaint’

하지만 키드의 포스터는 피터 벤츨리(Peter Benchley)의 원작 소설 ‘죠스(Jaws)’의 책 표지를 영화적으로 변형한 거였다. 어두운 무채색의 표지 바닥을 뚫고 치솟는 회백색 유선형 대가리, 수영하는 여자, 작가의 이름과 제목. 바다도 하늘도 파도도 없이 오직 포식과 피식의 관계로만 포착된 순간. 폴 베이컨(Paul Bacon)의 작품이었다. 선구적 미학과 도발적 자신감으로 책 표지가 그 자체로 작품임을 입증한 그가 6월 8일 별세했다. 향년 91세.

피터 벤츨리의 책 ‘Jaws’

주급 30달러를 받으며 뉴욕의 작은 디자인회사(Zamboni Associates)에 다니던 베이컨은 27살이던 1950년 한 친구 아버지의 부탁을 받는다. 책 삽화를 그려달라는 거였다. 윌리엄 웨스틀리의 아프리카 유인원 탐험기 ‘Chimp on My Shoulder 어깨 위의 침팬지’라는 책이었다. 그의 삽화가 인상적이었던지 출판사 E.P 듀튼(Dutton, 86년 펭귄북스에 합병)측은 아예 표지까지 만들어보라고 권했고, 베이컨은 사진과 활자로 디자인한 표지를 만든다. “무슨 명예의 전당에 들 만한 작품은 아니었어요. 하지만 어쨌건 그 일로 제 밥벌이가 시작됐죠.” 그는 회사에서 약병 상표 등을 그리는 한편 프리랜스 북디자이너로 한동안 살게 된다.

메이어 레빈의 ‘Compulsion’

출세작은 1956년 메이어 레빈(Meyer Levin)의 스릴러 ‘Compulsion 강박’이었다. 시카고대학을 졸업한 부유한 두 유대 청년이 한 소년을 ‘이유 없이’ 납치해 잔인하게 살해한 1924년 사건을 소재로 한 범죄 심리 소설. 출판사 사이먼 앤 슈스터(Simon & Schuster)측의 주문은 “선정적이지 않게 암시적이어야 하고, 클리세 없이 미스터리 느낌을 돋워달라’는 거였다고 한다. 베이컨은 손으로 직접 그린 커다란 서체로 상단에 제목을 얹고, 표지 대부분을 텅 빈 여백으로 채운다. 그리고 여백 위 모퉁이에 빨갛게 얹은, 쫓고 쫓기는 두 인간의 형상.

레빈의 책은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가 됐고, 미국 전역의 서점 쇼윈도와 진열대 전면에 깔렸다. 책의 상업적 성공에 베이컨의 표지가 얼마나 기여했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독자보다 먼저 출판인들이 그의 작품에 충격을 받은 것은 분명했다. 사진과 일러스트, 뻔한 타이포그래프의 조합으로 덕지덕지 했던 책(더구나 장르소설)의 표지로서는, 듣도보도 못한 파격과 기품이 거기 있었다. 그에게 디자인 주문이 쇄도했고, 그는 회사에 사표를 내고 전업 표지 디자이너가 된다.

‘compulsion’의 표지는 ‘Big Book Look’스타일의 효시로 꼽힌다. 대담한 활자의 제목과 작가 이름, 큰 여백과 개념적인 이미지. 베이컨의 60년 전 표지 디자인이 지금도 낡아 보이지 않는 까닭은 이후의 책들이 오랫동안, 그리고 지금도, 그 디자인 철학과 스타일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내로라하는 작가들의 생명력 있는 책 표지들이 우리의 시선에서 아직 떠나지 않은 까닭도 있을 것이다. 크노프, 랜덤하우스, 펭귄 할 것 없이 거의 모든 대형 출판사들이 그의 고객이었고, 아주 작은 출판사들도 야심작을 출간할 때면 그를 찾곤 했다.

켄 케이시(Ken Kesey)의 ‘One Flew Over the Cuckoo’s Nest 뻐꾸기 둥지위로 날아간 새’ 제임스 클라벨(James Clavell)의 ‘Shogun 장군’ 필립 로스(Philip Roth)의 ‘Portnoy’s Complaint 포트노이의 불평’ 조셉 헬러(Joseph Heller)의 ‘Catch 22’ 커트 보네거트(Kurt Vonnegut)의 ‘Slaughterhouse-Five 제5도살장’아이라 레빈(Ira Levin)의 ‘Rosemary’s Baby 로즈메리의 아기) 닥터로(E.L.Doctorow)의 ‘Ragtime 래그타임’…. 마지막 작품인 린제이 힐(Lindsay Hill)의 ‘Sea of Hooks(2013)’까지 그는 장르 불문 6,500여 점의 표지 디자인과 수많은 재즈 음반 재킷 디자인을 남겼다.

폴 베이컨은 1923년 12월 25일 미국 뉴욕에서 태어났다. 재즈 전문잡지 ‘Jazzwax’와의 2010년 인터뷰에서 그는 “29년 블랙먼데이 이후 우리 가족은 파산했다. 39년 뉴저지 뉴워크에 정착할 때까지, 당시에는 흔한 일이었는데, 숱하게 이사를 다녀야 했다”고 말했다.

조셉 헬러의 ‘Catch-22’

39년이면 16살 때다. 12살 무렵 라디오에서 베니 굿맨(클라리넷 스윙재즈의 대가, 1909~86)의 연주를 들은 뒤부터 재즈에 매료됐다는 그는 뉴워크의 10대 재즈 팬 모임인 ‘핫 클럽(Hot Club)’에 든다. “대부분 나보다 나이가 많고 재즈 흐름에도 밝은, ‘매직 마운틴’ 같은 전문 잡지를 읽는 이들이었다”고 그는 회고했다.

그는 명문 고교인 뉴욕음악예술학교 대신 학비가 싼 뉴워크아트스쿨에 진학한다. 그가 택한 전공은 음악이 아닌 그림이었다. 그는 그림에 재능이 있었다. 재능(그림)과 취향(재즈), 생계와 쾌락 사이의 줄타기는 그의 생애 내내 이어졌다. 그가 찾은 첫 접점은 ‘핫 클럽’의 소식지 디자인이었다.

고교 졸업 후인 41년 그는 대학을 포기하고 작은 광고회사(Scheck Advertising)에 취직했고, 거기서 그림과 타이포그래피를 익힌다. 광고에든 포스터에든 글을 쓰려면 모두 손으로 그려야 했던 시절이었다. 2년 뒤인 43년 그에게 징집 영장이 나왔고, 그는 집안 전통에 따라 해병대에 자원 입대한다. 태평양 전쟁이 살벌하던 때였고, 앞서 입대해 남태평양 전선에 배치됐던 그의 형은 이미 총상을 입고 군 병원에 실려온 뒤였다. 하지만 베이컨은, 아마 그의 그림솜씨 덕일 텐데, 44년까지 노스캐롤라이나 캠프에 머물게 된다. 그가 저 악명 높은 과달카날에 배치됐을 때는 미군이 점령한 뒤였다. 그는 “총소리 한 번 듣지 않고” 46년 4월 제대한다. 제대 군인에게 정부가 대학 등록금 등을 보조해주는 군인 원호법이 있었지만, 그는 대학 대신 다시 취업한다. 좋은 디자이너가 되려면 먼저 기술, 특히 타이포그래피와 레터링을 익혀야겠다는 게 그의 판단이었고, 그래서 택한 게 바우하우스 스타일의 디자인 회사 ‘잠보니 어소시에이츠(Zamboni Associates)’였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재즈인들과 만나고 듣고 연주하는 일상은 이어졌다. 40년대 말 ‘레코드 체인저(Record Changer)’라는 잡지를 창간한 빌 그로더를 알게 된 뒤 그 잡지에 재즈 비평을 썼고, 49년 게재한 비평 ‘The High Priest of Be-Bob’이란 글이 재즈 피아노 거장 셀로니어스 몽크(Thelonious Monk, 1917~82)의 마음을 사로잡아 그와 형제처럼 지내게 됐고, 그를 통해 당대의 재즈 거장들과 안면을 트게 됐고, 그 덕에 여러 재즈 명반 커버를 디자인하게 된다. 블루노트에서 취입한 몽크의 ‘The Genius of Modern Music, The Amazing Bud Powell’ 패츠 나바로의 ‘Memorial Album, James Moody and His Modernists’ 밀트 잭슨의 ‘Wizard of the Vibes and dozens of others’ 리버사이드에서 낸 랜디 웨스턴의 ‘Cole Porter in a Modern Mood’ 몽크의 ‘Brilliant Corners and Monk;s Music’쳇 베이커의 ‘It could happen to you’….

“심상에 분위기가 그려질 때까지 음반을 반복해서 듣죠. 연주자의 음악과 라이프스타일이 떠오르면 그걸 커버에 담곤 했어요.(…) 연주자는 다 다르고 저마다 특별하죠. 커버도 그 경지에 도달해야 해요.” 그로더가 리버사이드를 막 시작했던 54년 베이컨에게 처음 맡긴 앨범이 랜디 웨스턴의 ‘Cole Porter in a Modern Mood’였다. 그의 연주를 듣는 동안 베이컨은 심야 마천루의 스카이라인을 떠올렸다고 한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랜디의 음악을 들으며 그의 도시와 랜디의 세련미를 느끼게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소비자에게 이 위대한 음악을 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작업을 하곤 했다. 내 작업의 메시지를 한 마디로 말하자면 ‘당신이 알고 있고, 또 생각하는 모든 것을 잊어라. 그리고 일단 들어라’는 거였다.”(Jazzmax, 7.13)

그가 펜과 레터링 펜만 들고 객석과 작업장을 오가던 딜레탕트나 디자이너만은 아니었다. 그는 직접 재즈를 하고 싶어했고, 실제로 보컬리스트로, 연주자로 여러 다양한 무대에도 섰다. 그가 즐겨 들었던 악기는 ‘빗(comb)’이었다. 빗에 비닐을 떨림판처럼 덮어 하모니카나 피리처럼 부는 것으로 ‘Stanly’s Washboard Kings’’Hot Damn Jug Band’등 팀 맴버로 활동했고, 일본 호주 뉴잉글랜드 순회공연을 다니기도 했다. 재즈 뮤지션으로서 그의 절정은 아마 1976년 밥 그린(Bob Greene)과 함께 카네기홀에 섰던 ‘World of Helly Roll Morton’쇼였을 것이다. 그는 96년과 2002년 두 장의 연주 앨범도 냈다.

‘Compulsion’성공 직후 만 9년을 다닌 회사를 그만두고 본격적인 책 표지 디자인에 뛰어든 그가 고수했던 원칙 역시 음반 커버 디자인 때와 다르지 않았다. 그는 저자가 책 디자인에 깊이 간여하는 것을 경계했지만, 디자이너로서의 미적 자의식이 작품의 의도를 벗어나려는 것을 더 경계했다. “스스로에게 늘 말하곤 합니다. ‘넌 이 쇼의 주인공이 아냐. 작가는 이 작품에 3년 6개월을 매달렸을 테고, 출판사는 큰 돈을 걸었어. 그러니 넌 물러서’라고요.”(출판 격월간 LVI Visions, 2002.3)

랜디 웨스턴의 앨범 'Cole Porter in a Modern Mood'

조셉 헬러의 ‘캐치 22(62년)’ 표지 시안이 10차례나 퇴짜 맞고 11번째 채택된 이야기, 이후 헬러가 자신의 거의 모든 책 표지 디자인을 베이컨에게 의뢰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필립 로스의 ‘포트노이의 불평’표지는 노란색 바탕에 제목과 작가 이름밖에 없다. 그의 아이콘이라 할 만한 작은 이미지도 없다. 윌리엄 스타이런의 ‘소피의 선택’도 마찬가지다. 그는 “(작품이 워낙 깊고 복잡해서) 도드라진 하나의 이미지를 끝내 추출할 수 없었다. 다만 가장 단순한 (욕망의)색깔만으로 작품 모티브인 자위(masturbation)의 이미지를, 좋은 책이니 읽어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 물론 겁쟁이의 방식이고 바보 같은 소리라는 걸 안다. 하지만 그게 진심이었다”고 말했다. ‘래그타임’의 표지도 그의 ‘겁 먹은’ 디자인 가운데 하나였다. 작가 닥터로는 “아주 고전적이다. 단순하면서도 엄청난 영감을 불러일으킨다”라 평했다고, 저명한 디자이너 스티븐 헬러는 전했다. 하지만 ‘밤의 군대들’의 작가 노먼 메일러가 ‘An American Dream(65년)’표지 디자인을 의뢰하며, 굽실거리며, 자기 여자친구 사진을 표지 귀퉁이에라도 넣어줄 수 없겠느냐고 부탁했고, 베이컨이 그 청을 흔쾌히 들어준 일도 있었다.

노먼 메일러의 'An American Dream'

그는 2000년 은퇴한 뒤로도 의뢰가 들어오면 가끔 작품을 내놓곤 했다. 2002년 인터뷰에서 베이컨은 “이제 ‘Big Book Look’은 한물간 디자인 코드이고, 요즘 독자들은 변칙적인 스타일에 추상적이고 파편적인 그림들로 치장된 표지를 선호하는 것 같다”면서도 “하지만 독자가 책을 읽고도 표지의 디테일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성공한 표지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이런 멋진 말도 남겼다. “예술도 트랙경주와 닮아서 내가 100m를 10초에 뛰더라도 누군가 9.8초에 달리면 내 시대는 끝난 것이다.(…) 내 말년의 작품들이, 물론 내 마음에는 들지만, 요즘처럼 다채로운 방식으로 만들어지는 표지들과 경쟁하기에는 역부족일 것이다. 나 역시 (내 작품들처럼) 너무 늙었다.(…) 나와 나의 출판시대가 더불어 빛을 잃어 참 다행이다.”

최윤필기자 proos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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