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가(raga)는 인간의 아홉 가지 감정을 표현하는 노래래요. 오래된 이야기에 따르면 인도의 전설적 가수 탄센은 황제의 명령으로 불의 라가를 부릅니다. 노래 부르는 마음의 온도에 따라 궁전 등불이 켜지고 몸도 점점 뜨거워져 탄센은 타 죽을 지경이 됩니다. 강물마저 끓어오르게 하는 노래를 식히러 연인이 멀리서 달려옵니다. 비의 라가를 불러 그의 뜨거운 마음을 가라앉히려 하죠. 노래를 부른 이가 연인이 아니라 딸이었다고도 전하지만 어느 쪽이든 비의 라가 덕분에 탄센이 목숨을 구하는 건 같아요. 그 대신 서툰 가수였던 연인은 노래를 부르다 피를 토하며 죽고 맙니다.

이 시가 전설보다 슬픈 건 다른 결말 때문. 시 속에서 불의 라가를 부른 이는 잿더미가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서툰 연인이 피를 토하는 걸 견딜 수 없어 소신공양을 결심했나 봐요. 아니면 시인이 모든 사랑은 제때 당도할 리가 없다고 믿는 듯. 찢어진 휘장 사이로 드러난 시인의 마음이 너무 쓸쓸해요. 아무 감정도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그런 날이 있습니다.

진은영 시인ㆍ한국상담대학원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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