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에서 보는 목덜미가

석양처럼 쓸쓸한 남자가 좋다

지독한 원시든가

아니면

지독한 근시인 남자가 좋다

구름 끝의 새 그림자를 응시하고

날아오르려 하는 남자

상냥함을 짊어지고

상냥함에 떠밀려나듯

이기지 못할 전쟁에 나가게 된

말 없는 남자

사랑하는 이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채

사랑스런 이에게 작별을 고하는

등에는 온통 문신을 새긴

혹은 웨스턴 해트를 쓴

혹은 꽃을 치켜든 젊고 거친 남자

뒤에서 보는 목덜미가

오카리나처럼 슬픈 남자가 좋다

요시하라 사치코

얼마 전에 북콘서트를 하러 간 적이 있어요. 함께 했던 평론가가 어떤 순간에 사람이 아름답게 보이냐고 물었어요. 제가 대답을 못하고 난감해하니까 어려워 말고 몸에서 가장 아름답게 느껴지는 부분을 이야기해도 된다고 상냥하게 말했어요. 이 물음에 목덜미라고 대답한 작가도 있다면서, 아마도 가장 위태로워 보이는 부분이라서 그랬을 거라고 덧붙였습니다. 그 말을 듣고도 대답이 떠오르지 않아 우물쭈물하다가 콘서트는 끝났어요.

그 질문에 왜 당황했을까요? 한참을 골몰한 뒤에, 사람은 아름다운 존재가 아니라 그냥 가엾고 서글픈 존재라고 생각해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인간이라는 거, 대체로는 한심하게 느껴지고 간혹은 혐오스럽기도 하죠. 나도 모르게 염세주의자가 되었나 싶었는데, 이 시를 읽으니 위로가 되네요.

전후에 시를 썼던 시인도 비슷했는지 누군가의 목덜미에서 아름다움보다는 쓸쓸하거나 슬픈 기운을 찾습니다. 문신을 하거나 서부 모자를 쓰고 골목을 어슬렁거리던 청년이든 상냥함만을 짊어진 청년이든 모두 원치 않은 전쟁에 떠밀려나갔으니 당연한 일이죠. 여전히 청년들은 전쟁터에서 죽어가고, 거기서 돌아온 소녀들의 지독하고 오래된 슬픔은 풀릴 기미가 없으니 인간이라는 거, 참 그래요.

진은영 시인ㆍ한국상담대학원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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