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가 장기화 국면에 접어든 가운데 강북삼성병원의 의료진이 18일 오전 지원근무를 위해 서울 일원동 삼성서울병원으로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메르스 사태가 한 달 가까이 계속되고 있다. 많은 이들이 정부의 대응을 질타해온 터라 새롭게 이야기를 덧붙이기가 망설여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진행 중인 메르스 사태에 담긴 문제들을 다시 한 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사태는 우리 사회의 민낯을 생생히 드러내기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어느 한 시각만으로 이 예기치 못하고 불편하며 분노를 유발하는 사태를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첫째, 메르스 사태의 정치학. 사태가 이 지경까지 오게 된 데에는 정부의 책임이 가장 엄중하다. 전염병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선 민주적 정보 공개와 공유, 신속한 의사결정과 적절한 통제, 지자체ㆍ병원ㆍ시민사회와의 협력적 거버넌스가 요구됐음에도 정부는 초기 대응에 완전히 실패했다.

박근혜정부에겐 민주적 정부가 갖춰야 할 정보 공유와 이에 기반한 정부와 국민 간의 신뢰가 부재했고, 권위적 정부가 보여줄 수 있는 신속하고 강력한 중앙 통제마저도 이뤄지지 않았다. 적지 않은 국민들에게 정부는 문제 해결 능력이 없고 책임감을 결여한 국가로만 비춰졌다. 국가의 무능력과 무책임을 깨닫는 순간, 공동체로서의 사회는 해체의 길을 걷는다.

둘째, 메르스 사태의 의료사회학. 세계보건기구(WHO)와 한국 전문가로 이뤄진 합동평가단이 강조했듯 사태의 확산에는 메르스에 대한 정확한 인식 부족, 우리 특유의 의료 쇼핑, 병 문안 및 간병 관행 등 의료전달체계와 병원문화가 또 다른 원인을 제공했다. 현재의 보건 역량 및 체계로는 미래의 위험에 대처하기 어렵다는 합동평가단의 지적은 뼈아프게 받아들여야 한다.

메르스 확산의 결정적 진원지가 된 삼성서울병원의 책임 또한 결코 작지 않다. 미흡한 감염 추적 관리와 정보 공개 등을 포함한 삼성병원의 대응 조치는 영리를 목적으로 한 민영의료기관의 한계와 사회적 책임성을 우선시하는 공공의료기관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계몽한다.

셋째, 메르스 사태의 경제학. 메르스 사태가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정부의 선제적이고 투명한 대응만이 그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 신뢰가 약화되고 불안이 증대한 상황에서 경제의 활력을 기대하기란 어렵다. 대통령의 시장 방문과 같은 정치적 이벤트가 아니라 투명한 공적 시스템의 확립이야말로 경제 회복의 기본 조건이다.

넷째, 메르스 사태의 사회심리학. 어느 사회이든 괴담과 불안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기는 어렵다. 메르스는 ‘미지(未知)의 위험’이다. 자살ㆍ교통사고와 같은 ‘숙지(熟知)의 위험’과는 달리, 미지의 위험은 정확한 사실을 알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쉽게 불안과 공포로 전이된다. 미지의 위험에 대한 인간의 심리는 합리적 사고보다 신속한 정보를 선호한다. 투명한 정보 공유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괴담과 공포는 무한증식하기 마련이다.

다섯째, 메르스 사태의 미래학. 도시화, 교통수단 혁신, 과학기술 발전, 그리고 이런 변동들로 인한 ‘사회적 밀도’의 증가는 전염병과 같은 오래된 위험은 물론 원전과 같은 새로운 위험을 동시에 증대시킨다. 이제 위험은 도처에 널려 있을 뿐만 아니라 노인ㆍ어린이ㆍ비정규직 등의 사회적 약자들에겐 더욱 위태로운 비대칭적 영향을 미친다. 메르스 사태는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가 공존하는 불확실한 미래를 예고한다.

요컨대, 메르스 사태는 우리 사회의 선 자리를 있는 그대로 증거한다. 무능한 정부의 정보 독점과 부재하는 컨트롤타워, 안전ㆍ생명을 경시하는 경제제일주의, 원자화된 시민사회와 일상화된 공포는 메르스 사태를 통해 다시 한 번 마주한 우리 사회의 자화상이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통해 성취한 우리 현대성이 ‘껍데기만 모더니티(empty modernity)’였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예기치 못한 전염병의 출현과 치사율에 대한 불안 못지않게 무능한 권력과 무기력한 사회가 안겨주는 공포는 껍데기만 모더니티인 우리 사회의 그늘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어서 이 사태가 마무리되고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근본적인 성찰과 개혁이 이뤄지길 소망한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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