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와 요미우리(讀賣)신문의 공동여론조사가 한일수교 50년을 맞은 올해 최악의 결과를 기록했다. 일본에 대한 한국민의 신뢰수준이 1995년 첫 조사 후 20년 만에 최저치를 경신(본보 9일자 18,19면)해 반일감정이 사상 최악인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을 신뢰할 수 없다’는 응답이 84.9%까지 올라간 데에 대한 반작용인 듯, 일본국민의 ‘한국을 신뢰할 수 없다’는 대답도 73%로 역대 최악이었다. 1995년 한일관계 평가는 ‘좋다’는 비율이 일본과 한국에서 각각 60%, 43%에 달했다. 그러던 게 한국에선 올해 처음 한 자리 수(7.7%)로 떨어졌고 일본은 13%로 곤두박질쳤다.

예상은 했지만 요미우리신문 기자와 데이터를 교환하는 순간 낙담한 표정에 쓴웃음을 주고 받았다. 상대국민에 대한 친밀도가 이 정도로 추락한 적은 없기 때문이다. 2002한일월드컵 기간을 포함해 일본에선 2007년 양국관계가 좋다는 의견이 최고(72%)로 올라간 적이 있다. 한류열풍에 따른 친근감, 일본 내 친한파 급성장이 뚜렷했던 시절이 추억처럼 남아있다.

요미우리는 2012년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과 일왕에 대한 사과요구로 일본인의 감정이 악화했고, 박근혜 대통령이 위안부문제 양보만 요구하는 것도 혐한을 부추겼다고 해석했다. 반면 한국에서는 일관되게 한국에 사과성 발언을 한 과거 일왕에 대해서도 그 진실성에 대한 의문을 쉽게 풀지 않고 있다.

양국간 불신이 심하다 보니 한국일보와 요미우리 신문간 공동 여론조사 준비과정에서도 늘 서로 물러설 수 없는 신경전이 빚어졌다. 질문의 세세한 표현을 놓고도 미묘한 줄다리기가 불가피했다. 올해는 아베 총리의 미 의회 연설 평가 포함여부가 그랬지만, 한일강제병합 100년을 맞은 2010년엔 “일본의 한국병합이 한국에 도움을 줬다고 생각합니까, 해를 끼쳤다고 생각합니까, 도움이나 해가 비슷하다고 생각합니까”란 질문을 놓고 협의를 거듭했다. 요미우리는 전문가검토를 거쳐 한일병합 관련질문이 많아 한국인에 불쾌감을 줄 수 있다는 지적이 있었다며, 우리 요구대로 이 문항을 제외하자고 요청해왔다.

반면 한일간 순풍이 돌던 때는 “당신의 가족이 일본인(한국인)과 결혼한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1.축하해준다 2.반대한다 3. 겉으로 반대하지 않지만 속으로 못마땅하게 여긴다 4.모르겠다”는 문항이 검토되기도 했다.

돌아보면 본보와 요미우리신문이 1960년이래 제휴ㆍ특약관계를 강화하며 양국의 상호이해를 높이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해온 가운데, 한국과 일본은 협력과 충돌을 끊임없이 반복했다. 냉탕과 온탕을 넘나든 거친 드라마였다. 40주년이던 2005년도 지금처럼 독도와 교과서 문제로 양국관계가 최악이란 소리를 듣고 있었다. 30주년은 무라야마 담화에도 불구하고 “한일합방은 합법” 같은 일본각료들의 망언이 잇따랐고, 김영삼 대통령은 “버르장머리를 고쳐주겠다”는 자극적 발언으로 응수했다. 더 멀리가 10주기이던 1975년을 앞두고는 1973년 김대중 납치사건과 1974년 박정희 대통령 저격미수사건이 줄줄이 터지면서 ‘단교’란 말이 횡행하기도 했다. 애증의 한일관계 이면엔 내셔널리즘을 부추기고 손쉬운 국민감정을 자극해 이득을 보려는 정치권력의 책임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한류와 같은 우호적 환경이 이렇게까지 추락할 수 있겠는가.

양 국민은 이제 국교정상화 50주년의 고비를 맞아 ‘맷집’을 키우며 냉정을 찾을 필요가 있다. 양국관계는 질적으로 달라진 내외적 요인에 따라 새로운 궤도를 향한 진통을 겪는 중이다. 오는 22일 수교50년 행사를 앞두고 양국정부가 막바지 수싸움을 벌이고 있다. 지금의 위기를 기회로 살려내야 더 가혹한 미래를 피할 수 있다. 서둘러야 한다. 내년 공동여론조사에는 양국민의 마음에서 반전이 확인되길 간절히 기대해본다.

도쿄=박석원특파원 s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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