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주의 '청산별곡'] 3. 너럭바위 한상차림부터 눈물 젖은 두부까지

“야, 산에 가면 돌을 씹어 먹어도 맛있단다.”

등산을 망설이는 지인들을 설득하는 일종의 주문. 거짓말이 아니다. 산에 가면 무얼 먹든 평지보다는 약 3.5배는 맛있다는 게 내 지론이다. 무더운 여름 땀을 쭉 빼고 들이켜는 시원한 냉수는 과장을 조금 보태서 사막의 오아시스에도 빗댈 만 하다. 한겨울 살얼음이 낀 바위를 타다가 마시는 뜨거운 믹스 커피 한잔은 잔뜩 긴장한 몸을 단숨에 녹여주는 효험을 발휘한다. 하산 후 지친 몸에 걸치는 소주(삼겹살과 함께) 한 잔 역시 어떤 술보다 달더라. 산행이 고되면 고될수록 더욱 그러하다. 산에 가면 모든 음식이 ‘참 맛’을 낸다.

갈증을 달래주는 삼총사. 얼음 냉수와 얼린 아메리카노, 식혜 등은 도봉산 등산로 입구에서 구매할 수 있다.

입맛을 돋우려면 아무래도 얌전한 흙산보다는 우락부락한 돌산이 제격이다. 서울에서 지하철을 타고 갈 수 있는 돌산 중 바위 타는 맛이 일품인 산은 도봉산이다. 1983년 북한산과 함께 북한산국립공원으로 지정된 도봉산은 서울 도봉구, 경기 양주ㆍ의정부와 접해 있다. 최고봉인 자운봉이 739m다.

도봉산 만남의 광장에는 등산객을 반기는 먹거리 장터가 조성되어 있다. 녹색의 소주병과 막걸리들이 열 맞춰 서서 등산객들의 간택을 기다리고 있다. 떡갈비, 김치전, 도토리묵, 인삼튀김, 칡즙, 군밤, 후라이드치킨 등 온갖 음식을 파는 노점상들이 등산 입구에 빽빽하게 늘어서있다. 겉절이를 얹어 주는 김밥, 랩에 싼 오이 등 산행에 챙겨가야 할 메뉴들도 손쉽게 구할 수가 있다. 다만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기 때문에 산허리에서 파는 아이스크림, 막걸리와 술안주 등은 만날 수 없다.

기암괴석이 절경인 도봉산은 바위 타는 맛이 제대로다. 바위를 한참 오르내리다 보면 금세 배고픔이 찾아온다.

‘등산 먹방’의 메인 코스는 단연 정상 부근에서 먹는 점심이다. 모여 앉기 마땅한 너럭바위에 돗자리를 깔고 그 위에 김밥, 컵라면, 과일을 차려놓는다. 나무젓가락을 ‘딱’ 하고 쪼개면 그때부터 누구도 말릴 수 없는 게걸스러운 식사가 시작된다. 맑은 공기 사이로 강한 냄새를 흘리는 컵라면을 보며 지나가는 등산객들이 “아, 우리도 컵라면 가져올 걸!”이라며 한탄을 내뱉는다.

산행 중 점심 식사. 라면, 김밥 등 흔한 음식들이지만 산에서는 유독 귀하게 느껴진다.

하산 후에도 도봉산은 여전히 허기진 등산객들을 붙잡는다. 특히 등산로 부근에는 유난히 두부 전문점이 많다. ‘두부 골목’이라고 불리는 이곳에서는 두부김치, 모듬두부, 두부버섯전골, 포두부삼합, 포두부보쌈 등 각종 두부 요리를 즐길 수 있다. 두부와 푸짐한 밑반찬, 막걸리를 즐기는 데 1만원짜리 두 장이면 충분하다.

두부골목이 조성된 지는 약 20년의 세월이 흘렀다. IMF 사태로 하루 아침에 직장을 잃은 실업자들이 산을 찾으면서다. 양복과 구두를 신은 아버지들은 차마 해고당했다는 말을 전할 수 없었다. 대신 산을 한 바퀴 둘러보고 퇴근 시간에 맞춰 귀가하는 것으로 가족들을 속였다. 단돈 2,000~3,000원에 불과했던 두부가 그들에게는 한 끼 식사가 됐다.

이곳에서 두부 전문점을 운영하는 박노윤(66)씨는 “원래 주 메뉴는 빈대떡, 모듬전 등이었다. 그러던 중 IMF 시절 두부를 팔게 된 집이 대박을 터뜨린 이후 모두 메뉴를 두부로 팔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씨는 “당시 한국 경기는 바닥까지 추락했지만 도봉산 앞 음식점들의 매출은 도리어 올랐다”고 회고했다.

IMF 당시 실업자들의 마음을 적시던 도봉산 입구의 막걸리와 두부 요리.

등산 문화가 바뀌면서 두부를 파는 식당들이 등산복 매장으로 탈바꿈하기도 했다. 이름은 두부 골목이지만 지금은 식당보다 고가의 등산복을 파는 곳들이 더 많다. 더 이상 IMF 당시의 ‘눈물 젖은’ 두부는 없지만 여전히 많은 두부 전문점들이 산을 찾는 이들의 마음을 채워주고 있다.

이현주기자 memory@hankookilbo.com

인기 기사

api_db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스포츠 최신기사